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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교회: 깊고 진실한 신앙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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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2-10 ㅣ No.159

[세계 교회 동향] 폴란드 교회 - 깊고 진실한 신앙의 힘으로

 

 

선교사라고 하면 흔히 아프리카나 아마존 근처 또는 남아메리카의 순수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이를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천년의 가톨릭 역사를 지닌 폴란드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가톨릭 국가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고?’ 의아해들 한다.

 

바오로 사도처럼 ‘복음 때문이라면 어디라도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어느새 7년이 지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어렵다는 폴란드어를 배우던 첫해는 깜깜함 그 자체였다. 하루아침에 ‘바보’가 된 느낌, 무력감, 언어의 한계에서 오는 대화의 단절, 교류할 수 없는 답답함을 체험해야 했다.

 

필자가 이 문화의 충격에 휘둘리고 있는 동안 세속화의 물결은 급속도로 폴란드 땅에 상륙하고 있었다. 전 유럽이 세속화에 자리를 내어주는 동안 폴란드는 깊은 전통과 신심으로 이 거만한 침입자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느린 감이 있지만 지난해 남녀 폴란드 수도회 - 활동수도회, 관상수도회 - 모든 장상이 한자리에 모여 열띤 심포지엄을 해야 할 만큼 세속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세대가 바뀌면서 전통보다는 변화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점점 커지고 교회와 신앙을 거부하는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 앞에서 폴란드 교회는 전통과 변화를 지혜롭게 조화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역사적 시련 속에서도

 

지리상 유럽의 중심, 완만한 평야 지대에 자리한 폴란드는 우리나라보다 한 배 반이 큰 나라이다. 북으로는 발틱 해와 만나고 남으로는 웅장한 수데트, 카르파트 산맥을 거느리고 있다. 베스키드 산맥이 낳은 비수와 강은 폴란드의 옛 도읍인 크라쿠프를 거쳐 산도미에즈 그리고 수도인 바르샤바를 가르며 발틱 해에 이른다. 11월부터 4월까지의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며, 동유럽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폴란드는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체코와 슬로바키아, 독일 등 다양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역사적 시련이 많았다. 14세기 말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합 왕조 때부터 16세기까지는 폴란드의 전성기였다. 그 뒤 귀족 공화정이 들어서고, 터키, 스웨덴과 전쟁을 거치면서 국력이 쇠퇴하였으며, 마침내 1795년 주변 강국이었던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어 123년 동안 세계지도에서 사라지는 비극을 맞았다.

 

폴란드는 1918년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독립을 되찾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양이 되었다. 히틀러의 잔인한 인종 청소 <폴란드 남쪽에는 나치 수용소 중 유명한 아우슈비츠(폴란드 명: 오시비엥침)가 있다>, 독일의 바르샤바 대폭격 그리고 소련연방 공산주의에 의해 1989년 그 역사적인 자유노조(바웬사에 의해 창립)의 승리가 있기까지 폴란드의 역사는 피와 고통으로 물들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수용소와 시베리아로 보내지고 스탈린에 의해 2만 명의 장교들이 카틴(최근 폴란드 대통령 부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곳)에서 비밀리에 살해당했다.

 

이처럼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는 슬픈 역사가 이어진 반면 폴란드의 과학과 문학, 음악계에서는 세계적인 인물들이 탄생하였다.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 세계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 ‘쿼바디스’의 작가 헨리 시엥키에비츠, 피아노의 천재 쇼팽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인류역사에 남긴 업적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밟을수록 강인해지는 금잔디처럼

 

폴란드인들은 밟을수록 강인해지는 금잔디처럼 숱한 역사적 어려움을 꿋꿋이 견뎌왔다. 그들을 지켜준 것은 신앙이었다. 966년 피아스트 왕조의 미에슈코 1세가 세례를 받으면서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인 이래 하느님의 현존과 성모님의 도움은 폴란드인들의 희망이자 든든한 배경이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왕들은 조국을 성모님께 봉헌하였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이러한 의탁과 기적 체험이 반복되는 가운데 폴란드인들의 신앙은 더욱 탄탄해졌고 마침내 우리 시대의 위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탄생시켰다.

 

천년의 역사답게 현재 폴란드에는 14개의 대교구, 27개의 교구, 10,114개의 본당이 있으며, 주교 133명, 사제 22,200명, 수도회 사제 6,300명, 수녀 23,300명, 수사 1,500명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각 교구 그리고 큰 수도회들은 신학교, 출판사, 라디오 방송국을 갖고 있고, 몇몇 교구는 텔레비전 방송국까지 운영하고 있다. 200개가 넘는 가톨릭 출판사들은 다달이 다양한 서적들을 출간하고, 특히 전 교황님에 대한 영성, 논문, 화보집, 음반 등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교황님 회칙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인데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회칙들이 출간되었을 때 하루 만에 100여 권이 판매되었다. 교회의 새로운 가르침에 이처럼 열려있는 일반 신자들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폴란드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가정과 학교, 본당에서 신앙교육을 받는다. 적어도 1년 동안 교리를 받아야 첫 영성체를 할 수 있을 만큼 신앙교육이 철저하다. 이들에게 첫 영성체는 대단히 큰 축제이다. 그런 만큼 온 가족, 친지,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하를 나눈다. 이런 축제 분위기 안에서 아이들은 자기 생애에 참으로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음을 느낀다.

 

부활과 성탄은 폴란드의 가장 큰 축제이고 이외에도 많은 국경일이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정해져 있다. 주일에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전례에 참례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왔다(그러나 최근 들어 24시간 운영하는 자본주의형 상가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교회의 비판이 커지고 ‘주일의 의미’를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또한 첫 금요일, 첫 토요일에 대한 신심이 특별하고 오후 3시에는 자비의 예수님께 호칭기도를 바친다.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나타나셨던 자비의 예수님에 대한 신심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전례시기에 따라 다양한 가톨릭 전통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대림시기의 로라테(대림시기 동안 초를 밝히면서 참례하는 새벽미사. 미사가 끝나면 초를 밝힌 채 집으로 돌아간다.)와 오푸아텍(밀떡처럼 얇은 빵. 성탄 전야에 가족, 학교, 단체의 동료들과 감사와 용서를 청하고 복된 새해를 기원하며 오푸아텍을 나눈다.)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검은 성모님과 요한 바오로 2세

 

성모님에 대한 신심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각 교구마다 고유한 성모님 성지와 신심이 있고 그 가운데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님’은 폴란드를 대표하는 성모님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만의 순례자들이 이 성지를 찾는다. 성모님을 사랑하고 어머니처럼 의탁하는 폴란드인들의 신심은 그 역사만큼이나 깊고 진실하다.

 

성모님 다음으로 폴란드인들에게 사랑받는 이가 있다면 바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다. 아직 폴란드가 공산주의 아래 있을 때 그는 슬라브계 첫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 소식은 온 세계를 놀라게 했고 폴란드인들은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성을 올렸다.  그가 추기경으로 활동하던 크라쿠프 시에는 지그문트 종(국가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만 울리는 종)이 힘차게 울려 퍼졌다. 여느 폴란드인들처럼 두 번의 세계 전쟁, 나치와 공산주의의 폭력을 체험한 교황은 인간의 고통과 존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5년 전 이 위대한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폴란드에는 애도의 물결이 가득했다. 수천 명의 폴란드인들이 마지막으로 그들의 교황을 만나려고 바티칸을 향했다. 교황의 장례식에서 ‘바로 성인으로(Santo subito)!’를 외치던 이들의 바람대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서거 4년 만에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그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폴란드인들은 들뜨지 않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하얀 망토의 친근한 미소, 요한 바오로 2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 김영미 마리루치아 -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수녀.

 

[경향잡지, 2010년 10월호, 김영미 마리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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