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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신앙의 여정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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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1 ㅣ No.285

[레지오 영성] “신앙의 여정” 재발견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 소개된 우화를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나는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가상의 어떤 인도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젊은이는 진정한 자아, 참된 행복을 찾아 나선 주인공의 처지에 비유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영원한 행복을 찾아 나선 우리 “신앙의 여정”에 적용시켜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습니다. 그 젊은이는 사십일 동안 사막을 걸어 산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습니다. 그곳 저택에는 젊은이가 찾는 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자의 저택, 큼직한 거실에서는 아주 정신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장사꾼들이 들락거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그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현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젊은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현자는 젊은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지켜야 할 일이 있소.’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넸습니다. ‘이곳에서 걸어 다니는 동안 이 찻숟가락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두 시간 후에 그는 다시 현자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년 걸려 가꿔온 아름다운 정원,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현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는 법이라오.’ 이제 젊은이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습니다.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여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현자를 찾은 젊은이는 자기가 본 것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습니다. 그제야 숟가락을 살핀 젊은이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오.’ 현자는 다시 덧붙였습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습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습니다.” 현자의 이 마지막 말을 다시 한 번 곰곰이 마음에 새겨 봅시다.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은 무엇이며,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행복을 위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진정한 자아”이며,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은 “참 행복”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간직하며 누리는 것이 참 행복의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금술사 저자가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자 한 우화의 의미입니다.

이 우화의 의미를 우리 “신앙의 여정”에 적용시켜 생각해 봅시다. 먼저 우리 각자가 신앙인으로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신앙인의 정체성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인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잊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신앙인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던’(창세 1,4.13.19.21.25.31참조) 세상을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부터 자기 신앙의 행복과 기쁨을 이미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 이것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신앙의 해’(2012.10.11-2013.11.24)를 선포하시면서, 우리 모두를 “믿음의 문”(사도 14,27)으로 초대하십니다. 이 문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 곧 영원한 행복에 이르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은 우리 신앙의 목표이며 목적지입니다. 신앙인의 이러한 여정이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여정 중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감각마저 상실한 체 “하느님 없이”(에페 2,12) 살아도 괜찮다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오늘날의 이러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신앙의 참 기쁨을 함께 누리기 위해, 교황님께서는 “신앙의 여정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믿음의 문」 2항 참조) ‘신앙의 여정을 재발견한다는 것’은 자기 신앙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삶”(로마 6,4)의 여정을 살게 된다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온전히 자유롭게 전인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분을 우리 삶의 첫 자리에 두며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분과 하나 되어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가지셨던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와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우리 신앙의 척도가 됩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충실히 살려고 노력할 때, 예수님처럼 살고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 커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신앙의 여정”이란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그분을 통해 아버지께 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러한 “신앙의 여정”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신앙의 기쁨을 누리며 삽니다.

사랑하는 레지오 마리애 형제자매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쁘게 봉사해주심에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이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12월호,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주교, 안동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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