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변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1 ㅣ No.858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변화

 

 

성체성사 때마다 우리는 변화를 기념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변화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빵에 우리의 일상을 담아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상처 입히고 깨트리는 모든 것을 생명의 빵으로 변화시켜 돌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포도주 잔에 우리의 고통, 쓰라림, 슬픔, 혼탁한 사랑을 담아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고통의 잔을 치유의 잔으로, 쓴 잔을 달콤한 잔으로, 슬픔의 잔을 위로의 잔으로, (의심, 질투, 시기, 실망이 섞인) 혼탁한 사랑의 잔을 순수한 사랑의 잔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요즘은 뭐든지 변하는 게 유행입니다.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변화 관리’(change-management)에 공을 들이고, 거듭해서 새롭게 조직을 구성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저는 브라질에서 『당신이 일주일 안에 완전히 바뀔 수 있는 방법』이라는 미국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그런 책은 좌절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람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바뀐다는 것에는 공격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웁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변화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대답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화(루카 9,28-36)는 우리에게 변화의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 줍니다. ‘변화’는 ‘바뀌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더 다정다감합니다. 변화는 말합니다. “내 안의 모든 것을 그대로 허용하라.” 그러나 저는 하느님께서 주신 원래 내 모습 그대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유일무이한 나만의 모습이 아직 분명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이 저에게 뒤집어 씌운 너무 많은 모습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변모의 산에서 제자들은 갑자기 예수님의 얼굴이 변화되고 환히 빛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의복도 하얗게 번쩍였습니다. 순식간에 예수님이 정말로 누구인지 제자들에게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입니다. 그분에게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빛이 비춰 나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그분을 통해 확실해집니다.

 

변화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신 근원적인 빛, 우리의 얼굴에서, 우리의 온 존재에서 그 빛이 드러나야 합니다. 바뀐다는 것의 목표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변화의 목표는 늘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그 변화의 길을 가리켜 줍니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하는 와중에 변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도 중에 나의 현존재가 하느님을 대면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내 안으로 뚫고 들어와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변화는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대면할 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도에 있어 하느님과 대화가 우선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분의 빛으로 비추어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만남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앗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진실을 대면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한 여성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침묵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거기서는 내 안의 화산이 폭발해요.” 그래서 그녀는 늘 날이 서 있고, 결코 평온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언젠가 화산이 폭발할까 봐 늘 두려워하며 삽니다. 변화는 내 안에 있는 화산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빛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관통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빛이 내 안에 닿으면 내 안에 있는 것들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습니다. 내 안의 모든 것은 하느님이 빛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에페소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에페 5,13-14). 변화는 내 안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빛으로 밝혀지는 것입니다. 나의 약한 부분에도 하느님께서 들어오시겠지요. 그러면 하느님의 빛과 하느님의 사랑이 나의 약한 부분을 통과해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 빛이 나에게서 약한 부분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가져갈 겁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화산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약한 부분이나 어두운 면을 밀쳐놓거나 억누르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며 그런 것들을 그저 하느님께 바치면 됩니다. 그러면 내 영혼과 육체의 모든 부분에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고 변화를 체험할 것입니다.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에게 이러한 체험은 그분의 영적 여정에서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성녀는 어떤 이미지를 발견하지요. “물은 항상 낮은 지점을 찾는다.” 성녀는 동료 수녀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이제 성녀는 자신의 예민함과 그 예민함을 억누르는 연약함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성녀는 자신의 예민함, 고독, 연약함, 의심의 가장 깊은 곳까지 하느님 사랑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제 성녀는 하느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성녀는 바로 자신의 약한 부분에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합니다. 성녀는 자신의 상처를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관문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적 변화는 자기 자신과 주위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는 인간의 병적 욕망에 대한 해답입니다. 성체성사 때마다 우리는 변화를 기념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변화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빵에 우리의 일상을 담아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상처 입히고 깨트리는 모든 것을 생명의 빵으로 변화시켜 돌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포도주 잔에 우리의 고통, 쓰라림, 슬픔, 혼탁한 사랑을 담아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고통의 잔을 치유의 잔으로, 쓴 잔을 달콤한 잔으로, 슬픔의 잔을 위로의 잔으로, (의심, 질투, 시기, 실망이 섞인) 혼탁한 사랑의 잔을 순수한 사랑의 잔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변모의 산 위 예수님처럼 변화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선명해지기를, 하느님께서 당신 안에 심어 두신 순수하고 근원적인 이미지가 늘 여러분 안에서 빛나고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5년 여름호(Vol. 30), 안셀름 그륀 신부(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번역 김혜진 글라라(분도출판사)]



2,17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