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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지구의 온도를 낮춰라: 그리스도인의 생태 영성과 생태적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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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돋보기 - 지구의 온도를 낮춰라] 그리스도인의 생태 영성과 생태적 삶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대 산업 문명으로 말미암은 환경 파괴일 것이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태계를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대기와 물의 오염,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과 관련한 뉴스는 인류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6월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선포하며 지금의 극단적인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 세계에 호소했다. 같은 해 12월 ‘파리 기후 협정’을 앞두고 선포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결과적으로 기후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세계 지도자들, 특히 부유한 나라들에게 압력을 행사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제 선정부터 선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한 첫 회칙이기도 한 「찬미받으소서」는 ‘공동의 집’인 우리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교회의 새로운 가르침을 총망라하였다. 인류의 잘못된 삶의 방식으로 말미암은 오늘날의 생태 위기 시대에 반포된 회칙이기에 그 의의가 크다.
그리스도인의 생태 영성
‘회칙’(回勅)은 ‘돌려 보는 칙령’이라는 뜻으로 교황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권위 있고 중요한 내용을 담은 문서를 말한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표현하고자 진화와 우주적 친교, 생태 영성, 생태적 회개, 환경 교육, 생태 교육, 생태 윤리, 생태 시민 의식, 생태적 사명과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였다. 이런 표현들은 그동안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들이었다.
회칙에서 언급하는 ‘생태 영성’은 ‘생태’(ecology)와 ‘영성’(spirituality)의 합성어이다. 회칙은 생태 영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지는 않으므로 생태 영성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회칙의 한 부분만이 아닌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영성은 ‘하느님의 영’을 나타낸 것으로 교회의 오래된 개념이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숨’이라고 언급하였고, 신약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하느님의 영’이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한다. 그 뒤 영성은 그 의미가 여러 차원으로 심화되고 확대되었으며, 오늘날 생태 영성이라는 개념까지 이르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영성을 “우리의 개인적 공동체적 활동에 자극과 동기와 용기와 의미를 주는 어떤 내적인 힘”(216항)이라고 밝힌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생태 영성을 세 단계에 걸쳐 설명한다. 첫째, 회칙은 우주에 대한 현대 과학적 이해인 진화론을 수용한다. 회칙은 창세기가 전하는 ‘창조론’과 현대 자연과학이 제시하는 ‘진화론적 우주론’이 서로 상충하기보다는 ‘상호 보완하는 관계’라고 가르친다. 곧, 교회는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창조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진화적 창조’ 또는 ‘창조적 진화’라고 본다. 이런 통합적 관점은 과학 주도의 현대 세계에서 신앙의 진리를 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둘째, ‘하느님께서는 성경만이 아니라 피조물을 통해서도 계시하신다.’는 것을 회칙은 강조한다. “하느님께서는 소중한 책을 쓰셨는데, 이 책의 글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피조물”이라고 밝힌다(85항). 곧 하느님의 계시는 ‘성경’과 ‘피조물’이라는 두 권의 책에 담겼기에, 하느님의 뜻을 알려면 성경과 자연 세계를 같이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오래된 가르침이지만 생태 위기 시대인 오늘날 거듭 강조되어야 할 내용이다.
셋째, 회칙은 ‘인간과 생태계가 보편적 친교로 연결되었다.’고 가르치며,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일 것”(49항)을 호소한다. 인간에 대한 온유와 연민, 배려가 없다면 자연 생태계와도 깊은 친교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 정의는 사회 정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생태계에 관한 관심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연결되어야 한다.”(91항)고 밝힌다.
회칙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생태 영성이란 진화하는 생태계 속에서 하느님의 신성한 숨결과 손길을 느끼며, 더불어 생태계와도 일체감을 느끼는 내적인 감수성이다. 또한 생태 영성은 생태계가 파괴되고 이웃이 고통당할 때, 그 고통도 같이 느끼며 파괴된 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회복시키고자 투신하는 결단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태적 삶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어떻게 생태적으로 살아야 할지 제시하며 우리를 생태적인 삶으로 이끈다.
첫째, ‘생태적 회개’를 요청한다. 생태적 회개란 나의 무분별한 소비 생활이 생태계를 파괴하였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뉘우치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중독되어 소비 지향적인 삶을 살았던 생활 습관을 탈피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나,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고 결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질책하였다(217항 참조).
소비주의에 물들었던 삶에서 탈피하여, 물질적으로는 검소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황폐해진 피조물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회칙은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 방식을 독려한다.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가진 것이 적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다(223항 참조).
둘째, 생태 영성에 근거한 새 교리와 새 신앙생활을 제시한다. 회칙은 삼위일체와 성체성사 같은 전통적인 교리를 피조물과 연결해서 재해석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모든 실체 안에 그 표징을 남겨 두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그 안에 고유한 삼위일체 구조를 담고 있다.”(239항)고 가르침으로써, 삼위일체를 저 너머에 계시는 초월적 존재로 상정하기보다는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는 내재적 존재로 설명했다. 또한 성찬례는 우리가 “환경에 대해 관심을 두도록 하는 빛의 원천이며 동기로 우리가 모두 피조물의 관리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236항)고 일깨운다. 곧, 성사 생활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셋째, 생태적 회개의 삶을 영위하며 검소하지만 풍요로운 삶이 교회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마을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 그리고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 나가야 한다고 권고한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와 연대 의식을 가지고 공동선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때,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전한다(231항 참조).
교회의 과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내용은 그동안 교회에서 행해 왔던 가르침과 비교했을 때 분명히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회칙의 가르침과 신자들의 기존 신앙생활과는 적지 않은 간격이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된 지 4년이 지났으나, 이 사실 자체도 모르는 신자가 많고, 본당에서의 회칙에 대한 실천도 요원한 상태이다. 이러한 교회의 여건에서 이 회칙을 실천으로 옮기려면 두 가지 과제를 충족해야 할 것이다.
첫째,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제시하는 가르침과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교리와의 간격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는가이다. 「찬미받으소서」가 가르치는 사회 문제와 생태 위기에 대한 분석과 대안, 새로운 생태적 교리를 신자들이 배우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러려면 예비 신자 교리와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에서 「찬미받으소서」를 가르쳐야 한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한 뒤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하여 모든 신자가 피조물 보호를 위해 기도하기를 권하였다. 이는 피조물 보호가 신앙생활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본당에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거행하지 않는다. 이 기도의 날을 많은 본당에서 거행하여 신자들을 교육하고 의식화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생태 환경 사목을 위해 교구와 본당 간에 체계적인 연결이 필요하다. 교구 차원에서는 생태 사목을 전담할 부서의 설립과 전담 사제의 임명이 필요하다. 더불어 본당 차원에서는 사목 협의회 안에 환경 분과를 신설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생태 환경 사도직 단체인 ‘하늘땅물벗’을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또 지속해서 자신의 본당 안에 설립해 나가는 것이다.
‘하늘땅물벗’은 1991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되고 난 뒤 2016년 10월 4일 비로소 서울대교구에서 공식적으로 창립된 생태 사도직 단체이다. 본당에 이 ‘하늘땅물벗’ 단체가 창설된다면 본당에서의 교회의 생태적 가르침을 효과적이며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기후 변화를 포함한 오늘날의 총체적인 생태 위기 상황에서 교회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실천해서 가난한 이웃을 돕고 황폐해진 지구를 살리는 데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우리가 생태적 회개를 바탕으로 함께 기도하고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투쟁을 함께 실천해 나갈 때,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이기심과 오만으로 파괴된 우리 사회와 생태계도 치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이재돈 세례자 요한 - 서울대교구 신부.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연구 위원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6월호, 이재돈 세례자 요한] 0 1,755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