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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변화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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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는 교회] 변화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1986년 4월 26일 구소련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실험 중이던 원자로가 조작자의 실수로 연쇄 반응을 일으켜 폭발했다. 이 사고로 최소 20만 명이 사망했고, 방사능에 피폭된 이도 러시아가 145만 명, 우크라이나가 350만 명에 이르렀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그리고 한빛 1호기
사고 이후 체르노빌 원전 30km 주변에 살던 수많은 사람이 대피했고, 30년이 지났음에도 이곳은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폭발 당시 피폭을입은 부모들의 자녀들도 방사능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태어난다. 그 당시 소련은 응급 복구의 한 방법으로 석관을 만들어 원자로를 격리했지만, 방사능은 지금도 여전히 방출되고 있다. 더 심각한 일은 지금도 체르노빌 원자로의 방사능 유출을 완전히 폐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2011년 3월에는 대지진과 함께 쓰나미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이로 말미암아 3개의 원자로에서 원자로의 밑바닥을 녹이는 ‘노심 용융’을 일으켰고, 연료봉에서 발생한 수소 가스가 4개의 원전 건물을 폭발시켰다. 다수의 원자로가 동시에 녹아내린 최초의 사고였다. 체르노빌과 마찬가지로 사고 지역의 반경 30km는 격리되었으며, 일본 전역과 태평양 일대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지금도 원자로는 완벽히 폐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 방사능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될 것이다.
2019년 5월 영광 한빛 1호기가 제어봉의 제어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하는 중 열 출력 제한치인 5%를 초과했음에도 원자로를 중지하지 않고 12시간 가까이 가동했다. 더욱이 조종 면허가 없는 직원이 제어봉을 조작했으며, 시험 시작 1분 만에 원자로의 출력이 18%까지 올라갔지만, 정지하지 않고 12시간 가까이 방치했다가 뒤늦게야 수동 중지했다. 만일 원자로 붕괴로 이어졌다면 체르노빌 때보다 더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핵 발전소는 안전하지 않다
핵 발전소는 절대 안전하지 않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본 것처럼 원자력발전소는 한 번의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일으킨다. 한국의 원전 밀집도는 99기를 보유한 미국보다 20배 이상, 36기를 보유한 러시아보다 100배 이상 높다. 전 세계에는 450개의 원전이 188개 부지에 있다. 평균적으로 부지 당 원전 개수는 2.4개이다.
6개 이상의 원전이 한곳에 밀집한 ‘초대형 원전 단지’는 지구상에 11곳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고리 원전이 10기로 밀집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고, 울진이 8기, 영광과 월성이 6기이다. 전 세계 초대형 원전 단지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모든 원전 단지에 6개 이상의 원전이 밀집된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에서 원전이 6개 이상 밀집된 원전 단지 가운데 우리나라 4개의 원전 단지를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30km 반경에 46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산다. 그렇지만 고리 원전 인근 30km 이내에 해당하는 부산, 울산, 양산에는 38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어, 이 부분도 전 세계에서 1위이다. 8개의 원전이 밀집한 캐나다 브루스 원전의 경우는 같은 범위에 3만 명의 시민들이 살 뿐이다.
고리 원전 주변에는 사람만 많이 사는 것이 아니다. 부산항(32km),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26km),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25km), 울산 석유 화학 단지(18km), 해운대(21km) 등, 우리 경제의 여러 핵심 시설들이 고리 원전 단지 30km 부근에 위치한다.
‘30km’의 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들이 사고 지점 30km 내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참사의 경우 모두 30km의 피난 구역이 설정된 바 있다.
핵 발전소는 경제적이지 않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지금까지도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민가와 도로에 인접한 반경 20m 내의 흙을 모두 걷어 내어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한다. 이 저준위 핵폐기물을 모아 보관한 장소만도 14만 6천 곳에 달한다.
아직 숲속에 남은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땅은 다시 방사능에 오염된다.
비교적 짧다는 세슘의 경우만 해도 반감기는 30년이다. 이것이 열 번의 반감기를 거쳐야만 인체에 무해한 수치가 된다고 한다. 오염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핵 발전소의 수명은 30-40년이다. 연료인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400년에서 길게는 100만 년이라고 한다. 사용하고 폐기된 연료봉은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물과 전기가 보관 중에 절대로 끊기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체르노빌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열이 발생해서 폭발할 위험이 커진다.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또한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
후쿠시마 참사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발전 설비를 재생이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자연에서 만들어진 에너지로 태양과 바람, 물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것을 말한다.
2017년 이후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용량의 55.3%가 재생 가능 에너지였고, 세계 총생산 전력의 11.3%를 차지한다.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네팔, 몽골 등 48개 개발 도상국은 2050년까지 100% 재생 에너지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선진국만이 값비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BMW 등 세계 102개 기업이 모든 에너지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기로 약속했다. 애플은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데이터센터와 매장 등 자사 사업장의 96%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운영한다. 삼성 또한 이들 기업과 발맞춰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2017년 전 세계 발전 시설 신규 투자금의 63%인 약 277조원이 재생 가능 에너지를 택했고, 재생 가능 에너지의 보급 목표를 세운 국가는 176개국이나 된다.
이처럼 세계는 일찌감치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40년 뒤 원자력 제로를 목표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수립하였다. 노후 원전 폐쇄와 신규 건설 중단은 물론, 재생 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20%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탈핵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우리도 재생 가능 에너지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면 다음 세대에 깨끗하고 안전한 자연과 삶을 물려줄 수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렇게 말했다. “변화가 힘든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변화해야 한다.
[경향잡지, 2019년 7월호, 송년홍 타대오(전주교구 호성만수성당 주임 신부)] 0 851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