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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교황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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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6-27 ㅣ No.108

아시아 평신도대회를 준비한다 - 교황청 문헌 공부


교황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해설 (상) 복음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90년 12월 7일에 발표한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은 총 8장 92항으로 이뤄졌다.

 

회칙의 목적은 신앙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내적 쇄신을 위함이다. 선교활동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신앙과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며,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선교야말로 현대 세계의 모든 개인과 온 인류에게 교회가 해줄 수 있는 첫째가는 봉사이다(2항 참조).

 

교황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만민에게」(1965년) 반포 25주년, 바오로 6세 교황의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1975년) 반포 15주년을 맞아 발표하신 「교회의 선교사명」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그 어떤 그리스도교 신자도, 그 어떤 교회 기관도 그리스도를 모든 민족에게 선포할 이 지상 과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3항 참조).

 

 

그리스도 구원 계획에 동참

 

현대인들이 인간을 수평적 차원으로만 환원시키려는 경향이 있지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제1장)는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현대인들이 하느님 현존이 인간 존엄성에 방해된다고 생각해 하느님 없는 '새 인류'를 건설하고자 한 정치 체제나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고아처럼 만들어 더 큰 가련함에 빠지는 혼란과 어둠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8항).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세상 구원의 협력자로 삼으셨고, 당신 신부인 교회 안에 머무르시며 교회를 성장시키시고 교회를 통해 당신 사명을 수행하고 계신다.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고,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에 교회를 동참시키셨다(9항 참조).

 

우리는 "왜 선교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참 해방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기 자신을 여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소외와 의심에서 해방되고,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된다.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평화"(에페 2,14) 이시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치고"(2코린 5,14),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선교는 그리스도와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믿는 우리 믿음의 정확한 지표가 된다(11항).

 

"하느님 나라"는 구약에서 준비됐고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됐으며, 그 완성과 궁극적 실현을 위해 활동하고 기도하는 교회를 통해 만민에게 선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이나 행동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계신다(12~13항 참조).

 

예수께서는 당신 말씀과 행적과 인격으로 하느님 나라의 고유한 특성과 요구를 점진적으로 계시하셨고, 하느님 나라를 통해 이뤄지는 해방과 구원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 치유와 용서의 두 차원에서 이뤄진다(14항 참조).

 

또 하느님 나라는 인간관계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는 법을 배울 때 이 나라는 점진적으로 성장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율법을 사랑의 계명을 중심으로 요약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 15,12 참조)는 '새 계명'을 떠나시기 전 사도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모든 인간 사이 사랑의 관계와 하느님과 맺는 친교를 본성으로 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전한다(16항 참조).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이나 행적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앞서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드러난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섬기러 오셨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셨으므로"(마르 10,45 참조) 하느님 나라는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개념이나 교리나 계획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신 나자렛 예수님의 모습과 이름을 지닌 한 위격이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도구

 

이 하느님 나라는 교회와 분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싹이고 표징이며 도구로서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인 교회에 충만한 은총과 구원의 수단들을 베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 안에 머무르시며, 다양한 선물과 은사로 교회에 활력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인도하시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19항 참조).

 

그리고 대화와 인간 증진, 정의와 평화에 대한 투신, 교육과 병자 간호, 가난한 이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 등 자선활동과 증언을 통해 하느님의 계획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순례에 이바지한다(20항 참조). [평화신문, 2010년 6월 27일,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

 

 

아시아 평신도대회를 준비한다 - 교황청 문헌 공부


교황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해설 (중) 성령께서는 선교 사명의 주역

 

 

성령께서는 교회 사명의 으뜸이고 주역이시다. 성령의 활동을 통해 기쁜 소식은 인간의 양심과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가고, 역사 안으로 퍼져 나간다. 이 모든 일을 통해 성령께서는 생명을 주신다(21항 참조). 복음사가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만나시는 장면을 묘사할 때 모두 '선교 명령'으로 끝을 맺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성부께서 성자를 파견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고, 이 목적을 위해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다(22항 참조).

 

성령 안에서 사도들이 받은 명령에는 보편적 성격이 있다. 사도들은 "모든 민족에게"(마태 28,19), "모든 피조물에게"(마르 16,15), "모든 사람에게"(루카 24,47), "땅끝까지"(사도 1,8) 파견됐다.

 

또한 사도들이 그들의 사명을 수행할 때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힘과 도움을 받을 것을 보장하셨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20).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 선포

 

복음사가들의 고유한 파견 명령을 볼 수 있다. 마르코는 선교를 복음 선포로 봤다. "기쁜 소식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그의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하고 말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되풀이하도록 이끌고 있다.

 

루카에 의하면 선교는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는 말씀처럼 증언하는 것, 특별히 예수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다(사도 1,22 참조).

 

 

형제적 친교 이루고 기도

 

요한복음의 선교 사명의 의미는 예수의 '사제적 기도'에 표현돼 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선교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교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특히 우리가 사랑으로 깊이 일치돼 살아가는 하나의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과 행위로 선교사가 되기 이전에 이미 선교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22항 참조).

 

선교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복음을 듣고 형제적 친교를 이루고, 기도하며 성찬례를 거행하도록 백성을 모으는 것이었다. '형제적 친교'로 산다는 것은 인간적ㆍ정신적ㆍ물질적으로 친교를 이뤄 '한마음 한뜻'(사도 4,32)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현세의 재화를 나누는 일에도 전념함으로써 모두 "저마다 필요한 만큼"(사도 2,45; 4,35) 재화를 가질 수 있었다(26항 참조).

 

성령께서는 종교적 활동들을 포함한 인간의 활동들 안에, 그리고 진리와 선과 하느님께 이르려는 인간의 노력 안에서 발견되는 '말씀의 씨앗'을 통해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작용하고 계심을 상기시켰다. 이 세상의 좋고 선하며 아름답고, 진실하고, 거룩한 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이런 좋은 요소들은 하나의 작은 씨앗처럼 비옥한 땅과 수분, 햇볕 등을 만나면 싹이 솟아나고 자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므로 '말씀의 씨앗'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28-29항 참조).

 

「교회의 선교사명」은 오늘날 교회가 외방선교나 이미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민족들의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새로운 경계로 나아가면서 또 다른 도전들을 받고 있음을 천명했다.

 

새로운 복음화는 첫째, 아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거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민족과 집단, 그리고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교회가 선교활동을 전개하는 경우를 말한다.

 

 

홍보매체 선용할 줄 알아야

 

둘째, 견고한 교회 구조를 갖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그들의 신앙과 생활에 열성적이고 자기 주변에 복음을 증언하며 보편선교의 책임을 느끼는 교회 공동체를 말한다. 셋째는 앞에 말한 두 상황의 중간 상황으로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속했었지만 지금은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냉담교우'를 뜻한다. 바로 이들에 대한 새로운 복음화 또는 재복음화가 필요하다(33항 참조).

 

현대 세계의 신속하고 중대한 변화에 직면하면서 급속한 도시화와 특히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들의 팽창을 생각하며 복음선교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선택'을 기억하고, 젊은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홍보매체들을 잘 선용할 줄 알아야 한다(37항 참조). [평화신문, 2010년 7월 4일,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

 

 

아시아 평신도대회를 준비한다 - 교황청 문헌 공부


교황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해설 (하) 사랑은 선교 출발점이자 귀착점

 

 

선교의 첫째 형태는 증거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스승보다 증거를, 주장보다 경험을, 이론보다 실천을 더 믿는다. 첫째가는 증거의 모양은 새로운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선교사와 그리스도교 가정과 교회 공동체의 생활 자체다. 특별히 인간을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이러한 너그러운 태도와 행동은 이기주의와는 아주 대조적이다(42항 참조).

 

교회는 정치ㆍ경제적 세력의 부패에 대해 용감하게 예언자적으로 대항하고, 영광이나 현세적 이득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화를 사용하고, 그리스도의 순박한 생애를 따름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부름 받았다. 교회와 선교사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들 스스로 겸손의 증거를 보여야 한다(43항 참조).

 

복음화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은 악과 죄와 죽음에서 참으로 완전히 해방됐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새롭고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바로 이것이 인간과 역사를 변혁시키는 '기쁜 소식'이다.

 

 

순교는 최고의 신앙 증거

 

기쁜 소식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개인과 백성의 생활환경에 맞도록 전하는데,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순교는 최고의 증거다. 한국의 많은 순교자들은 영웅적 모습으로 신앙 증거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고, 뛰어난 선교사들이며 지금도 선교하고 계신다(44~45항 참조).

 

신앙은 역동적이고 지속적 동향을 일으켜 "육체를 따르는 생활에서, 성령을 따르는 생활에로"의 전향을 요구한다(로마 8,3-13 참조). 그러므로 회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격적 결단으로 승복하고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힘을 입은 사도들은 모든 사람이 생활을 바꾸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세례는 성령에 의한 재생을 의미하고 실현시키는 성사이며, 성삼위와 실질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일치를 이루고, 사람을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가 되도록 한다. 회개한 사람은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며 교회 안에서 중대한 책임도 지고 있다.

 

 

교회는 하느님 현존의 표지

 

회개와 세례는 사람을 기존의 교회에 가입시키거나 구세주 예수님을 고백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것을 요구한다. 외방 선교의 목적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과 성숙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례로 교회 구성원이 됐으므로 세상에서 하느님 현존의 표지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건설해 교회로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교회의 부식'(扶植)을 계속해야 한다(46~49항 참조).

 

교회의 기초 공동체는 소수의 가정이나 주위 신자들이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생활을 나누면서 공동체를 이룸을 말한다. 한국교회 소공동체 운동과 흡사하며,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에 활력을 주고, 신자 양성과 복음화의 도구이며 특별히 '사랑의 문화'를 퍼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51항 참조).

 

교회가 우리 형제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복음화'이다. 이를 통해 인간에게 돈이나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발전의 주역이 되도록 돕는다. 특별히 사랑이신 하느님을 사랑의 구체적 행위를 통해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선교의 원동력'이다. 사랑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요 귀착점이라야 하며, 사랑을 위해 또 사랑을 따라서 진실하게 이뤄진 것은 아무 것도 잘못될 수가 없다(58~60항 참조).

 

선교사 없이 선교 활동이 없는 것처럼 증거자 없이 증거가 있을 수 없다. 열두 사도들은 교회의 보편적 선교 사명의 첫 선교사들이었고,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 공동체이다. 교회의 하느님 백성 전체는 선교의 임무를 가진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처지에 맞게 선교 활동을 하고 가능하면 외방 선교에도 나서야 한다.

 

비오 12세 교황님의 회칙 「신앙의 선물」에서 예언자적 혜안으로 주교들에게 일부 소속 사제들을 아프리카교회에서 한시적으로 봉사하도록 파견할 것을 권고했고, 현재까지 많은 교구 사제들이 선교 지역에서 외방 선교를 계속하고 있다(61~68항 참조). 특별히 이 시대에 성령의 특별한 선물로 태어난 '교회 운동들'이 선교 활동에 나서도록 교회는 적극 도와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72항 참조).

 

세례성사의 힘으로 교회의 지체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선교 사업의 일꾼들이다. 신자들과 교회 공동체는 선교의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모든 신자들은 선교사들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또한 선교 활동을 위해 너그럽게 경제적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특별히 선교 협력은 정치, 경제, 문화, 언론계의 지도자들과 여러 국제기구 전문가들에게도 의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77~82항 참조).

 

 

선교사는 '사랑의 사람'

 

선교 영성은 성령께 대한 완전한 순응의 생활로 표현된다. 이러한 생활은 자신의 소유물을 기꺼이 포기하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만든다. 선교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교회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다(87~89항 참조).

 

모든 신자는 성덕과 선교에로 부르심을 받았고, 외방 선교를 위해 거룩한 선교사를 요구한다. 선교사는 '행동하면서 관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선교사는 복음적 행복의 사람이며, 성인은 참된 선교사이다(90~91항 참조). [평화신문, 2010년 7월 11일,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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