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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사랑의 이중 계명이 분리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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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20 ㅣ No.731

[기억, 아남네시스] 사랑의 이중 계명이 분리되지 않는 삶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물질만능주의와 경제제일주의 등 세속화에 빠져든 오늘날 지구촌 가족에게 여러 가지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 오신 교황님은 한국방문의 짧은 일정 중에도 현대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사랑’에 대한 가르침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교황님이 우리나라에서 하신 강론을 중심으로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되새기고자 한다.


사랑에 관한 이중 계명의 본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 22,37-39).

이 말씀은 이른바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고 불리는 복음의 핵심이다. 이 말씀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는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될 수 없다.’는 분리 불가능한 이중 계명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는 요한 1서 4장 16절의 말씀“(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을 중심으로 복음의 핵심인 사랑과 사랑의 이중 계명이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나의 모든 삶에서 오로지 ‘열심해지려고’, 또 ‘종교적 의무’를 다하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면, 나와 하느님의 관계 또한 메말라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사랑이 없는 관계입니다. 기꺼이 내 이웃을 만나 사랑을 드러내고자 할 때에만 나는 하느님께도 마음을 쓸 수 있습니다. 내가 이웃에게 봉사할 때에만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시는지,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외부의 ‘계명’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부에서 얻는 사랑의 체험에서 생겨납니다. 이 사랑은 본질상 다른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 사랑은 우리의 분열을 뛰어넘어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것, 바로 ‘우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1코린 15,28)이 되십니다”(18항).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이웃 사랑에 대한 교회공동체의 본분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하셨다.


이중 계명의 분리를 거부한 순교자들의 삶

프란치스코 교황님 또한 시복식 강론에서 이중 계명의 분리를 거부한 순교자들의 삶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한 이웃에게 ‘다가가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지난해 8월 16일 거행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성장한 한국교회를 치하하셨다. 그리고 한국의 천주교인인 우리가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며, 우리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하셨다. 그중에서도 순교자들의 삶, 특히 사랑의 이중 계명을 목숨으로 증언한 그분들의 삶에 대해 힘주어 강조하셨다.

교황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역설하셨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사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부닥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웃을 왜 사랑해야 하는가

우리가 도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은, 「복음의 기쁨」을 비롯하여 그분이 발표한 회칙이나 여러 강론에서 일관되게 우리에게 건네시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를테면 사순시기에 교황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의 말씀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교회 구조는 우리가 한 몸의 지체임을 체험하도록 해줍니까?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받고 나누는 한 몸입니까? 교회의 가장 약하고 가장 가난하며 가장 작은 지체들을 살펴보고 돌보는 몸입니까? 아니면 온 세상을 두루 사랑한다는 구실로 우리의 닫힌 문 앞에 앉아있는 라자로를 보지 못합니까?”

교황님은 우리의 지체인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도록 강조하셨다. 「복음의 기쁨」 274항에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사람은 지극히 거룩하고 우리 사랑과 헌신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 272항에서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켜주는 영적인 힘”이라고 강조하셨다. 이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 사랑은 결국 어둠에 싸인 세상을 언제나 밝혀주고 우리에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유일한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 우리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교황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웃을 왜 사랑해야 하는지 그 까닭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교황님은 8월 15일 솔뫼 성지에서 가진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에서도 이러한 이웃 사랑에 대해 청년들에게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 자리에서는 한 청년의 행복에 관한 질문을 받으시고 “돈으로 사는 행복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사랑의 행복만이 지속되는 행복입니다!”라고 답하셨다.

이런 말씀도 덧붙이셨다. “사랑의 길은 단순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 여러분의 형제, 여러분 가까이 있는 사람, 사랑을 필요로 하고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 이웃을 사랑한다면, 미워하지 않는다면, 마음 안에 미움이 없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웃 사랑의 이유를 어떻게 이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8월 17일 해미 성지에서 행하신 아시아 주교들에 대한 연설문에서도 이웃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셨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정체성이 다른 아시아의 이웃들에 대해 강조한 말씀이긴 하지만, 어떻게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될만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말로 하지는 않지만 전달되는 그들의 경험, 그들의 희망, 그들의 열망, 그들의 고난과 걱정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려 깊은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여는 것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곧, 받아들여야 합니다.

… 아버지는 우리 모두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같은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이러한 공감의 능력은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진정한 만남을 이끌어냅니다. … 이것이 대화의 핵심입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려면 우리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 교황님은 우리가 도와야 하는 이웃들에게 직접 다가가 먼저 대화할 것을 촉구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황님은 방한 중 아시아 지역의 주교들과 청년들, 한국 주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 대표들 등 여러 사람을 만나셨다. 그리고 꽃동네 가족들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 곳곳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려고 동분서주하셨다. 다양한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웃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도록 강력하게 요청하셨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물론이고 평신도인 우리 모두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셨던 것이다.

이를테면, 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에서는, 주교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인 사도시대의 이상을 본받아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셨다.

8월 16일 시복식 집전 뒤 충북 음성 꽃동네에 모인 153명의 평신도 대표들에게는, “하느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 전해지고 자라나는(교회헌장 33항 참조) 성찬의 희생제사에서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끊임없는 영감과 힘을 이끌어내라.”고 당부하셨다.

한국에 모인 아시아의 청년들에게도 이렇게 호소하셨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 절규에 우리가 응답합시다. 마치 곤궁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주님과 더 가까이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을 밀쳐내지 마십시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에 연민과 자비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랑의 이중 계명이 분리되는 일 없이 함께 실천하라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이 땅에 남기셨다. 곧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말할 나위 없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함을 우리가 과제로 받은 셈이다.

교황님이 이 땅에서 몸소 보여주신 행동에서도 그 메시지를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신변의 위험에도 큰 차를 마다하시고, 아이들과 장애인들에게 직접 다가가 안아주신 모습 등에서 우리가 가난한 이웃에게 어떤 모습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양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자명한 셈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변두리로 나아가’ 가난한 이웃을 만나고 마음을 열어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일 게다.

사랑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기부를 통해서, 각종 봉사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아시아의 주교들에게 강조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다가가 진정으로 그들과 대화하며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형제적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우리도 순교 선조들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서로 분리되는 일 없이 실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나부터, ‘마음과 목숨, 그리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함으로써 참된 신앙인의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 하창식 프란치스코 -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으로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교수이다.

[경향잡지, 2015년 10월호, 하창식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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