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가톨릭 교리

풍수 지리와 무덤 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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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13 ㅣ No.407

풍수 지리와 무덤 축성

 

 

가까운 친지가 병으로 죽어서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치르고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하였습니다. 미사를 주례하셨던 신부님께서 장지까지 오셨는데 관을 묻기 전 신부님께서 무덤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신이 묻힐 무덤을 강복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도 사람을 묻을 때 풍수(風水)를 따져 길지(吉地)를 고르고,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무덤을 잘못 써서 그런다고 무덤을 옮기곤 합니다. 천주교에서의 무덤 축성과 풍수 지리에서 길지를 택하는 것은 그 성격이 같은 것이 아닌지요.

 

 

요즘 TV나 신문, 잡지를 보면 풍수에 대한 기사를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잡지는 유명 인사들의 조상들 무덤을 풍수 지리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조상묘를 잘 썼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잘되었다는 식의 글을 싣기도 했습니다. 어떤 역학가는 북한의 김일성의 조상 묏자리를 풍수적으로 해석하면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 대한 운명을 예언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주위에서 풍수에 대한 신비스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조상 묏자리와 관련된 풍수 이야기가 후손의 길흉화복과 연계되어 많이 퍼져 있는데, 어떤 면에서 이러한 풍수 이야기는 일종의 신앙으로까지 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풍수 지리를 과학적 차원에서 분석하면서 풍수 지리가 미신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고, 나아가서 조상의 묏자리에 따라 후손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풍수가 아님을 강조하는 이들도 많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풍수 지리는 후손의 복과 연계되어 이해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손이 잘되기 위해선 묏자리를 옮겨라?

 

언젠가 한 신자가 제게 찾아와 말하길, 집안 일이 왠지 잘 풀리지 않고 아이들의 학교 문제도 자꾸 꼬이기만 하여 답답한 마음에 점치는 사람에게 갔답니다. 그 점장이는 이분의 말을 들은 다음 단호하게, "어허, 시부모님 묘를 잘못 써서 그렇구먼. 묘를 옮겨요. 그러면 모든 게 다 잘될 거요" 하더랍니다. 신자로서 점장이를 찾아간 것 자체가 마음에 꺼림칙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풍수를 잘 본다는 신부님을 방문하였답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 역시 "시부모님 관 밑으로 수맥이 흘러요. 조금만 관을 옮기면 지금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될 겁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신부님까지 그렇게 말하니 시부모님 무덤을 열고 관을 옮기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부모님 무덤 위치와 우리 가족의 길흉화복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과연 천주교 신자로서 떳떳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라 조언을 구하러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저는 풍수 지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조상의 묏자리에 따라 후손의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일반 믿음이 풍수 지리에 근거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과 전례에 비추어볼 때, 묏자리에 대한 민간 신앙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느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함을 가르치며, 따라서 조상 묏자리를 잘 씀으로써 복을 얻고자 하는 기복신앙의 흔적을 성서와 교회 가르침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묘지 축성은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천주교에서는 신자가 죽으면 그가 묻힐 묘지를 성수와 향으로써 축복합니다. 어떤 이는 이러한 축복 행위를 보고, 이것이 마치 풍수 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을 만들기 위한 것인 양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묘지 축성은 기복신앙과는 아무런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성수를 묘지에 뿌리는 것은 죽은 이가 받았던 세례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신자의 몸은 세례로써 그리스도의 지체이자 성령의 거처로 변모하는데, 향은 바로 이러한 육신의 품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부수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묻힐 땅을 그에 걸맞게 정화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묘지를 축성하는 것은 거기에 묻힐 신자의 육신을 존중해서 그러지 땅 자체에 대한 축복이 아닙니다. 이러한 본래의 뜻을 되새겨본다면, 묘지 축성을 풍수 지리에서 말하는 명당 선택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이 바로 참된 명당

 

그리스도교 장례식을 잘 살펴보면 죽은 이에 대한 존경과 하느님의 자비에 그를 맡긴다는 신앙, 부활에 대한 믿음만을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여기서 후손의 복과 관련된 그 어떤 믿음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죽은 이가 묻힐 묏자리에 따라 후손이 잘되고 잘못된다는 사상은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죽은 이와 산 이가 죽음으로써 완전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서로 통교하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죽은 이는 천상 교회를 이루고 산 이는 지상 교회를 이루면서 한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산 이가 죽은 이에게 기도할 때 죽은 이가 어떤 신적인 힘으로 복을 내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천상 교회에 합류한 그가 산 이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는 뜻입니다. 결국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며,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교 또한 바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우리 신앙에 비추어볼 때, 묏자리에 따라서 길흉화복이 정해진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며, 따라서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의 명당 개념도 우리 신앙 안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살기 좋은 곳, 지하의 수맥으로 인해 관이 이동되거나 묘가 파손될 염려가 없는 곳으로서의 명당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복을 내려줄 명당을 찾는 미신적 행위를 배척할 뿐입니다. 우리의 참된 복은 재물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된 삶일진대, 그러한 복을 내려 주는 것은 외적 물질이나 조상의 묏자리가 아니라 우리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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