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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독지남: 올바른 성독의 열두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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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2-04 ㅣ No.313

[聖讀指南] 올바른 성독의 열두 조건

 

 

이즈음 나는 빛이 들어오는 조그마한 수도원 독방에 앉아 분도지 겨울 호에 나눌 내용을 생각하고 있다. 창밖을 내다보니, 얼마 전 그렇게 아름답게 수도원을 물들게 했던 나뭇잎들이 이미 수도원 정원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새로운 계절의 길목에 서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또한 들판 역시 이미 많은 곳이 수확을 마치고 황량하게 남아 있다. 농부는 가을 수확의 기쁨 때문에 그 오랜 인고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선은 좋은 씨를 뿌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쁜 씨를 가지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둘째는 좋은 땅, 좋은 텃밭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씨라도 좋은 땅을 만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오랜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빨리! 빨리!”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요구일수도 있다. 그러나 인내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는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의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느님과 깊은 일치인 관상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서서히 그분과 더 깊은 일치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아무튼 좋은 씨가 좋은 땅을 만나고 농부의 오랜 인내의 시간들이 잘 어우러질 때, 비로소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은 좋은 씨와도 같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 말씀은 우리 마음의 텃밭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열매를 풍성히 맺기도 하고, 아니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 안에 잘 열매 맺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텃밭을 잘 가꾸고 다듬을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말씀 수행이 잘 열매 맺기 위해 더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말씀의 중요성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 신앙의 최고 규범 가운데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깨닫고 말씀에 기초한 영성생활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성경을 직접 그리고 자주 찾아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요즈음 가톨릭 신자들은 주일날 미사에 가면서 간단히 “매일미사”만 가지고 가니 성경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실제적으로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이 점에서 모든 신자들은 성당에 갈 때마다 항상 자기의 성경을 직접 들고 가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또한 집에서도 자주 성경을 직접 찾아서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셋째, 고정된 렉시오 디비나 시간을 갖는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말씀에 더 깊이 나아가려면 성독을 위해 고정되고 여유로운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분을 찾고 그분과 직접 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을 위해 고정되고 자유로운 시간을 기꺼이 내어드리는데 있어 인색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자유로운 시간들 안에서 우리는 말씀에 더 깊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위해서는, 하루 중 아무 시간이나 혹은 자투리 시간을 마련하기보다는 오히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말씀 수행을 해 나가는 것이 영성생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점에 있어 본인은 최소한 매일 고정적으로 30분씩 성경독서와 성경묵상의 시간을 갖고 충실히 수행해 나가기를 권한다. 특별히 이러한 시간들을 하느님께 봉헌된 시간으로 그분께 내어드림이 중요하다.

 

 

넷째, 렉시오 디비나를 위해 고요한 기도의 장소를 갖는다.

 

성경을 어디에서 읽고 묵상해야 하는가? 이것 또한 중요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 시끄럽고 번잡한 장소나 위험이 상존한 곳은 렉시오 디비나를 위해 적합한 곳이 아니다. 이러한 장소에서 말씀을 집중해서 깊이 독서하고 묵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 받지 않는 조용하고 평온한 장소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소는 더 깊은 영적인 차원을 함축하고 있다. 즉, 말씀을 대하는 그러한 장소는 바로 영적 투쟁의 장소이며 동시에 예언자 호세아가 말했던 빈들과도 같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친히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그러한 장소로 불러내어 당신의 넘치는 사랑을 속삭여 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성독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요한 장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섯째, 전 존재로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한다.

 

고대나 중세의 수도승들에게 렉시오 디비나 수행은 단순히 오늘날과 같이 눈으로만 재빨리 본문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전 존재를 사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그것을 입으로 작게 소리 내어 읽고, 귀로는 그것을 직접 듣고, 그리고 기억과 마음에 그 말씀을 깊이깊이 간직하였다. 비록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수행의 모습이 많이 사라져 버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인간 전 존재로 집중해서 능동적으로 성경 독서를 한다면 평소 놓쳐버린 말씀의 심오한 신비들을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이다.

 

 

여섯째, 성경독서를 할 때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 집중하지 않거나 또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재빨리 읽고 해치워 버려서는 하느님 말씀에서 깊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데 어려움이 있게 된다. 우리는 결코 많은 부분을 읽으려고 욕심을 부리거나 혹은 정해진 분량을 어느 시간까지 다 끝내려고 과욕을 부려서도 안 된다. 그리고 어떤 본문을 완전히 다 읽기도 전에, 또 다른 본문을 읽으려는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읽은 본문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그대로 행하는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독서에서는 오히려 더 천천히 그 의미들을 음미하면서 온 마음으로 읽어가야 한다. 이것은 마치 시집을 읽는 것과 같이 한마디 한마디 음미하면서 천천히 소리내어 읽고 들어야 한다.

 

 

일곱 째, 성경독서가 끝날 때는 저마다 마음에 다가오는 한 말씀을 선택하고 그것을 기억이나 쪽지에 간직한다.

 

바로 그 말씀을 하루의 영적 양식으로 삼고 말씀과 함께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그 한 말씀을 되뇌이는 수행을 통해서 말씀의 참된 맛을 맛보아야 한다. 사실 옛 수도승들에게 있어 묵상(meditatio)은 오늘날과 같이 머리로 숙고하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반복하고 끊임없이 되뇌이는 수행이었다. 이것은 마치 소가 되새김(ruminatio) 함으로써 음식물을 철저히 자기의 살과 피가 되게 하는 것과 같다. 바로 이러한 고대의 묵상 수행을 본인은 반추기도(Ruminating Prayer)라고 오래전에 명하였다.

 

 

여덟째, 하느님의 말씀에 접근할 때 지적이고 추론적인 접근 방법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로 다가감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있어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은 고대의 중요한 수행이었던 렉시오 디비나의 중요한 조건으로써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였다. 성독은 여타의 독서와는 다르다. 즉, 그것은 머리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순수한 마음 안에 당신을 온전히 드러내시기 때문이다(마태 5,8).

 

 

아홉째, 렉시오 디비나를 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내와 항구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 없이는 우리의 영성생활에서 참된 열매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성독은 인스턴트식품처럼 금세 어떤 효과를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삶을 통해 꾸준히 공급되는 원천이기에 더욱 충실하고 항구하게 정진해야만 한다. 마치 우리가 육체적인 필요를 위해 매일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듯이, 영적인 필요를 위해서 우리는 충실하게 성독 수행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오랜 인내와 항구함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성경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고 말씀과 인격적인 만남도 가능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 번째, 성령께 도움을 간절히 청해야 한다.

 

렉시오 디비나 안에서 참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그분 없이는 성경의 문자 너머 더 깊은 영적인 의미들을 우리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뜻을 밝혀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진리에로 인도할 사명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6,13). 그러므로 성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도움을 간절히 청하는 겸손한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겸손한 마음을 지닐 때, 그분께서는 손수 우리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어 깊은 영적인 신비의 문턱에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열한 번째,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의 삶으로 응답해야 한다.

 

성독은 단지 마음의 수양만을 강조하는 뉴에이지 운동이나 유사 영성운동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에, 그분의 전적인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분께서 우리를 손수 인도하시도록 우리를 내어 놓고 그분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때 성독은 우리의 모든 생활 안에서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된다.

 


열두 번째, 하느님의 말씀이 일상과 분리되지 않도록 함이 중요하다.

 

즉 일상 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말씀과 동행해야 한다. 이렇듯 일상의 삶 안에서 말씀과 분리되지 않고 말씀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수행이 바로 성독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서 말씀과 일상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될 때, 비로소 그 말씀은 우리 삶 안에 깊이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분도, 2010년 겨울호,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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