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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 청각언어장애인 사목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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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437

[경향 돋보기] 청각언어장애인 사목의 현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많은 사람이 한국 교회에서도 노력하기만 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함께 생활할 수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애의 특성과 현실적 여건을 배려한 신앙 공동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청각언어장애인들도 그렇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그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강론을 듣고 교리공부를 할 수 있는 공동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해를 돕고자 서울대교구 청각언어장애인 사목 전담사제(137쪽 사진)의 글을 싣는다.

 

 

청각언어장애인은 해외동포와 다름없습니다

 

청각언어장애인 사목을 일반신자 사목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시각, 지적, 지체 장애인 사목과 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청각언어장애인 사목을 베트남인, 필리핀인 등 외국인 노동자 사목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필리핀 노동자와 베트남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문제로 어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청각언어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잘 안 되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언어인 수화를 모르면서 꼭 청각언어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보아야 합니까? 수화에 능통한 비장애인들은 청각언어장애인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면서 그들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날 해외동포들은 외국 사람들이 다니는 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해도 낯선 외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해하거나 포기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이 교포사목에 임할, 한국어에 능통한 한인 신부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한인 사제들을 외국으로 파견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청각언어장애인들도 해외동포들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미사 때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위한 수화통역을 마련해 주는 성당에 갈 수 있지만, 통역자가 전하는 사제의 말씀을 거의 알아듣기 어려워 오래 가지 못하고 그만둔 청각언어장애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각언어장애 신자들은 그들과 막힘없이 대화하고 신앙을 나눌 수 있는 청각언어장애 사제나 평생 동안 청각언어장애인 사목에 몸바칠 사제를 간절히 원합니다.

 

 

신자와 사목자의 대화가 곧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에는 청각언어장애 목사 100여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백 명의 청각언어장애인이 목사가 되려고 신학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청각언어장애 목사들이 능숙한 수화로 설교하는 것을 보면서 벅찬 감동을 받아 개신교로 개종한 청각언어장애 가톨릭 신자가 우리나라에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청각장애인을 위한 가톨릭계 학교에서 체계적인 교리교육을 받아 영세를 한 학생들이 졸업하여 사회에 나가면서 청각언어장애 사제와 수도자를 만나보지 못하고 대신 수많은 청각언어장애 목사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 대부분은 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 가운데 몇몇 사람은 목사가 되어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해 사목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비장애인 사제들은 오래 전부터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 성사를 주면서 영적 아버지로서 그들을 돌보아 왔습니다. 패트릭 매커힐 몬시뇰은 뉴욕 대교구에서 청각언어장애인 사목을 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시카고 대교구에서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하여 20년 동안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사제가 있고, 워싱턴 대교구에서 30년 이상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영적 아버지로 활동하는 사제도 있습니다. 청각언어장애 사목을 전담으로 하는 사제들의 사랑과 관심 안에서 수많은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선교사, 말씀의 봉사자, 교리교사, 성체분배자 등 다양한 직분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는 지금까지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전담’사제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부분적으로나마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사제들은 교구 사회복지회나 특수사목 담당사제들입니다. 그들 중에 몇몇 사제들은 수많은 사회복지회 산하단체들을 돌보느라 바쁘기 때문에 수화를 배우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들은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미사를 수화통역자의 도움에 힘입어 집전합니다. 몇몇 다른 사제들은 사회복지회 담당을 맡고 나서 청각언어장애인에게 수화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서툰 수화로 미사를 집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통 2-3년 뒤 그들은 새 임지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 온 사제는 수화를 모르기 때문에 수화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청각언어장애인의 마음이 부담스럽고 서운하다고 합니다. 일반 본당으로 옮긴 전임 사제들은 그 뒤로 수화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잊어버렸고, 그들을 오랜만에 만난 청각언애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제 인사이동이 너무 잦아 사목이 잘 되지 않자 청각언어장애인들은 결국 냉담자가 되거나 개신교회로 가버렸습니다.

 

 

같은 언어로 강론을, 같은 언어로 고해성사를

 

서울대교구에는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서울 중심부가 아닌 북쪽 끝자락(강북구 수유동)에 있습니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은 그 성당이 너무 멀어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울 가톨릭 농아선교회에서는 성당과 너무 먼 곳에 사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사목적으로 배려하여 서울시내 3개 본당(낙성대, 상도동, 성산동)에 수화통역 미사를 개설하였습니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이 3개의 본당에 다니다보니, 수화통역으로 강론을 들어도 사제의 말씀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수화를 모르는 본당 신자들과 의사소통하는 것도 잘 안 되어 소외를 느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의 어려움이 수화통역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너무 멀다고 할지라도 다시 서울가톨릭 농아선교회 성당에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경기도 파주, 부천, 안산, 심지어 충남 천안에 사는 청각언어장애인들도 매주일 서울강북구 농아선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청각언어장애인끼리 모여 청각장애 사제나 수화할 줄 아는 사제와 함께 미사 드리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제지망생들은 장애인 사목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신학생들이 장애인을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떤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나중에 사제가 되어 장애인 사목을 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신학생은 군복무를 마치고 두 달 동안 서울 가톨릭 농아선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수화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청각언어장애인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었고 수화로 강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학교에서 장애인에 대한인식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휴학기간(모라토리움)에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몸소 장애인들과 함께 살며 장애인들의 삶이 어떤지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에 사제품을 받고 나서 여러 곳에 다니면서 청각언어장애인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해 왔습니다. 그들이 타지에서 원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원어민처럼 강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한없이 기뻐하고 잔잔한 감동을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화가 통하지 않아 오랫동안 고해성사를 보지 못한 지방의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참회하며 제게 깊게 고백한 뒤 기쁨을 감출 길 없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여러 번 겪으면서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는 그들의 말과 정서를 온전히 이해할 청각언어장애 사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국 가톨릭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저에게 그들이 사는 곳에 와서 미사와 강의를 자주 해달라고 합니다. 제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전국에 있는 청각언어장애 신자들을 모두 사목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사제로 양성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미국 교회에서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사제로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내년에 그들 가운데 몇 명이 사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청각언어장애인을 사제로 양성하는 데 더욱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 수화에는 ‘문장식 수화’와 ‘자연 수화’(농식 수화) 가 있다고 합니다. 건청인(청각언어장애가 없는 사람) 수화통역자들이 국어 문법에 충실한 ‘문장식 수화’를 배워 사용하는 반면, 청각언어장애인 대부분은 농아인 특유의 관용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자연 수화’로 대화합니다. 이처럼 수화통역자와 농아인이 사용하는 어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청각언어장애인이 통역봉사자의 수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기도문과 강론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니까 자연히 신앙생활도 어려운 것이지요(도움말 : 서울 성산동성당 수화봉사회 ‘자캐오나무’ 대표 권정수 마르가리타).

 

* 박민서 베네딕토 - 서울대교구 청각언어장애인 사목 전담사제. 2007년 7월 6일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당시 아시아 최초의 청각언어장애인 사제로 교회와 사회의 큰 관심과 격려를 받았으며, 이러한 관심이 더욱 적극적인 노력과 실천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경향잡지, 2008년 4월호, 박민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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