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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21: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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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29 ㅣ No.715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21)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①


20세기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여성 운동가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수녀

가르멜 수도회의 성인들 중에는 20세기 현대 철학사에서 대표적인 여성 철학자이자 여성 운동가로 한 획을 그은 분이 있습니다. 성녀 에디트 슈타인이 바로 그분입니다.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은 이분의 속명(俗名)이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받은 세례명은 ‘데레사 베네딕타’입니다. 성녀는 독일의 쾰른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다음, “일생 동안 이렇게 살겠다”라는 뜻이 담긴 ‘현의(玄義)’를 ‘십자가’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정식 수도명(修道名)은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입니다. 통상 한국 교회에는 성녀 에디트 슈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 민족을 위해 순교한 유다인

사실, 성녀 에디트 슈타인이 한국 교회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필자가 로마에서 한창 유학하던 1998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셨으니, 시성되신지 18년 남짓 지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은 현대의 성인, 성녀 중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분으로 손꼽힙니다. 이분은 교회 역사상 유다인으로서는 처음 시성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역시 유다인 혈통입니다. 그러나 시성될 당시 사람들은 이분들을 순수 스페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디트 슈타인은 유다인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조직적으로 학살하던 독일 나치 정권 하에 살았고 그로 인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독가스실에서 숨을 거둔 순수 유다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2000년 교회 역사상, 예수님을 살해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끊임없는 핍박의 대상이 됐던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속죄 제물로 바쳐진 성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에디트 슈타인 자신도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이런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철학을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한 구도자

에디트 슈타인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현대를 대표하는 여성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무신론(無神論)에서부터 출발해서 철학이라는 학문을 바탕으로 진리 추구를 통해 가톨릭 신앙에 귀의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가톨릭 교회의 대표적인 성인 중 한 분인 성녀 데레사의 영성에 귀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디트 슈타인을 통해 한 인간이 본성적으로 받은 지적 능력을 통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고 발견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 진리를 위해 투신하고 목숨 바쳐 살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철학을 바탕으로 신앙과 영성을 통합하다

특히 이분의 위상이 중요한 데에는 현대 철학자이면서 가톨릭 교회의 대표적인 영성의 줄기 가운데 하나인 가르멜 수도회의 수도자가 됐고, 그런 현대 철학의 흐름을 가톨릭 신학, 더 나아가 가르멜 영성이라고 하는 수준 높은 차원에서 통합해냈기 때문입니다. 성녀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자세히 짚어보겠지만, 그 이름이 현대 철학사에도 거명될 만큼 이분은 철학사에 그 나름의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성녀는 ‘현상학(現象學)’이라는 분야를 통해 현대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 에드문트 후설의 제자였습니다. 성녀 역시 그의 문하에서 현상학자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더욱이 20세기 초반에 발전한 ‘철학적 인간학’이라는 분야에서도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인간학자였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으로 인해, 가톨릭 신앙과 가르멜 영성은 에디트 슈타인이라고 하는 현대 철학의 거목(巨木)과 더불어 현대인의 사고방식에 맞게 재해석되고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맞게 됩니다. 이 사건은 교회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위해 투신한 여성 운동가

또한 에디트 슈타인이 현대의 성인, 성녀 가운데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20세기 초반 아직도 여성의 인권이 세계적으로 한참 낮았던 시절, 여성의 인권과 교육, 그리고 여성의 존엄성을 신장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였으며 이를 궁극적으로 가톨릭 신앙 안에서 통합하고 풀어낸 보기 드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살고 자랐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은 아직도 유럽 전역에서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여성의 사회 참여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성녀는 모든 편견과 차별 속에서 철학자의 길을 걸어갔고 독일 역사상 최초로 정식 대학 교과 과정을 거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가르멜 수녀원 입회 전까지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음 호부터는 성녀 에디트 슈타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어떻게 진리의 여정을 걸어갔는지,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고 성녀가 됐는지 그 생애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30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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