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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71: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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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0 ㅣ No.849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1)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④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사랑을 머금고 자란다

 

 

-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예배하도록 가르치신 예수님. 그림은 사마리아 여인과 만남.

 

 

가난한 피조물에게 숙이시는 성부 하느님

 

“오, 성부여, 이렇듯 작고 가난한 당신 피조물에게 숙이시어 당신 그늘로 감싸 주소서. 그에게서 당신의 모든 기쁨을 두는 지극히 사랑하는 임만을 바라보소서.” 

 

이는 성녀 엘리사벳의 유명한 기도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로, 엘리사벳이 성부 하느님과 맺었던 관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성부께서 우리를 영원으로부터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셨음(로마 5,1)을 알아들었습니다. 또한 성부께서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심으로써, 우리 내면에 당신이 사랑하고 흡족해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새기고 완성하는 가운데 당신의 기쁨을 우리와 함께 나누길 원하셨습니다(콜로 1,12). 그래서 엘리사벳은 성부께서 우리에게 이 일을 이루시도록, 그러기 위해 성부께서 작고 가난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에게 숙이시어 우리를 당신 은총의 그늘로 감싸주실 수 있도록, 그분께 우리 마음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성부께 예배드림

 

그리고 성녀는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는 구절을 통해 성부를 흠숭하는 위대한 영혼들이 되도록 독려했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아버지를 영(靈)으로 흠숭하는 것은, 곧 그분께 온전히 고정된 마음과 생각을 갖는 것이며, 믿음의 빛을 통해 그분을 충만하게 아는 영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분을 진리 안에서 흠숭한다는 것은 우리의 행동, 즉 진실한 우리의 행동을 통해 그분을 흠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언제나 성부께서 기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걸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녀 엘리사벳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더불어 예배를 드리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과 진리 안에서 진실로 하느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림

 

성녀는 이렇듯 우리가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을 흠숭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해” 그렇게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내면에 품고 있는 열망과 원의, 감정을 비롯해 일상 중에 하게 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사랑에 뿌리내리고 그것을 기초로”(에페 3,16) 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우리 심장의 매 박동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뛸 때,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를 흠숭하고 예배하는 그분의 진정한 자녀로 거듭나게 되리라는 겁니다. 

 

성녀에 따르면, 성부에 대한 흠숭은 우리를 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끌어올려 주는 ‘사랑의 황홀경’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 보여주는 그 위대하심과 광대하심 그리고 아름다움을 관상하며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는 사랑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충만하고 깊은 침묵 속에서 일종의 실신과 같습니다.…침묵은 아름다운 찬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고요한 삼위(三位)의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히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흠숭하는 이는 지상에서 미리 천국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걱정일세

 

엘리사벳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언제나 우리가 성장하길 바라신다는 점을 상기하시며, 그렇게 성장하기 위한 비결은 다름 아닌 ‘사랑’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상기시킵니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 영혼이 자라는 것을 보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이 하느님과 동등해질 만큼 우리를 들어 올리고 성장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베푸신 당신 사랑의 대가를 요구하신다고 합니다. 사랑의 고유한 특성은 사랑하는 이가 사랑받는 이와 동등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우리가 이런 사랑에 이르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통째로 하느님께 내어드려야 하며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녹아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걱정은 사랑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전하며, 성녀는 그분을 향한 사랑의 길로 내달리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6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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