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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43: 낙태와 영적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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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43) 낙태와 영적 싸움 ‘딱 한 번만 낙태하자’는 악의 유혹… 영적 식별로 극복해야
더 큰 악과 고통을 불러들이는 낙태
“여자친구가 미친 것 같습니다. 저희는 5년을 사귄 장수커플입니다. 1년 전 제 실수로 임신하게 됐습니다. 여자친구는 아이를 낳고 싶어 했지만, 저는 당장 엄두가 나지 않았고, 어차피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인생을 책임질 거라는 생각에 아이를 지우자고 설득했습니다. 낙태했고, 그때부터 여자친구가 이상해졌습니다. 처음엔 매일 눈물 흘리고 후회된다는 소리를 하더군요. 방긋방긋 잘 웃던 여자친구는 어느새 어두운 표정만 짓고 예민해졌으며 죄책감에 죽고 싶다는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제 나름대로 위로를 했지만, 증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더군요. 저는 점점 여자친구에게 짜증이 났습니다.
그 후로 싸움이 잦아졌고 싸울 때마다 여자친구는 수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만 꺼내면 진절머리가 나서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러면 여자친구는 죽고 싶다고 울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니 눈물은 잦아들었지만, 집착이 심해졌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술 마실 땐 어디서 뭘 하는지 꼭 말해야 했고, 연락이 끊기면 불안해했습니다. 예전에 잘도 보내주던 클럽도 못 가게 하더군요. 몰래 클럽 간 게 걸렸고 여자친구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런 여자친구를 계속 보니 정이 뚝 떨어집니다. ‘이 여자와 결혼해도 될까’라는 생각도 들고,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네요.
제 여자친구는 많이 망가진 상태입니다. 이제는 꿈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고 하네요. 여자친구 부모님은 딸이 왜 변했는지 이유를 모르시니 그저 답답해 하고 속상해하십니다. 정신이 피폐해진 여자친구를 두고 헤어지자니 마음이 아프긴 하네요. 제가 헤어지자고 해도 될까요?”
익명으로 운영되는 대학교 페이스북에 공유된 글이다. 전형적으로 악에 속아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진 경우다. 남자는 결혼해서 인생을 책임질테니, 이번만 낙태하자고 여자친구를 설득했다. 그러나 책임감을 느낀다는 초반과 달리 자신에게 집착하는 여자친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남자에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출산을 원했던 여자친구는 낙태하자는 남자친구의 설득에 휘말려 들어갔고, 상실감과 후회로 일상을 보낼 수 없는 지경이다. 남자도 이성적으로는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는 견디기 어렵게 됐다.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는데, 전에 없었던 편집적 집착은 왜 생긴 걸까? 결별을 원하는 남자친구의 속내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원치 않았지만 배 속의 생명을 내쳤고, 이번에는 원치 않지만 자신도 남자친구에게서 내쳐지는 것이다. 내치고 내침받는 것, 이것이 전형적인 악의 속성인데 낙태를 함으로써 여자 안에서 강화된 이 악이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시켰고, 여성을 파멸로 몰고 갔다. 이것이 낙태의 실상이다.
낙태와 인간 내면의 악
‘결혼해서 여자 인생 책임질 거니까 지금 한 번만 낙태하자’는 생각은 이익과 편리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고 지적하셨던, 내면 깊이 숨어 있는 악과 같다. 이 악은 낙태만 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게 내 뜻이라고 착각하고 낙태하면 더 심각한 문제가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진리 편에 서본 적이 없는 거짓의 아비’(요한 8,44)라는 자신의 속성대로 악마가 사람을 끌고 갔기 때문인데, 영적 안목이 없으면 이를 식별하지 못하고 휘말린다.
20대 초반에 낙태하고 10년 가까이 죄책감 속에서 냉담하다가 서른이 넘어서 성당에 다시 나오는 여성들이 종종 있다. 남자친구와 대체로 결별하고, 어렵사리 하느님께 다시 나온 경우다. “죄를 짓기 전에 사탄은 죄가 아무런 결과를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하고, 죄를 지은 후에 사탄은 그 죄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풀턴 쉰 주교)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친 소수의 용기 있는 여성들이다. 하지만 낙태 경험을 한 대다수 여성은 가슴에 상처와 한을 품고서 “낙태는 죄가 아니다.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낙태가 해결책이 아니라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출발점임에도, 일부는 낙태는 죄가 아니며 낙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 주체는 누굴까? 그건 여성들이 아니라, 여성을 거짓과 살인이라는 자기 속성대로 끌고 가는 내면에 숨어 있는 악이다. 인간 내면에는 나만을 주장하는 악이 잠복해 있는데, 인격체인 악이 나로 위장해서 내게 생각을 넣어주기 때문에 사람은 나와 이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따라가기 쉽다. 이 악은 성체 훼손까지 하기에 이른다. 이는 낙태 합법화 주장의 주체가 태초부터 하느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악임을 스스로 인증하는 사건이다. 이 낙태 논쟁이 영적인 싸움이라는 의미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하시며 사람과 그 안의 악을 구별하셨고, 당신의 뜻과 목숨을 포기함으로써 이들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셨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악에 물들어 있는 내 뜻을 예수님처럼 포기해야 한다. “남자친구는 제발 낙태하라고 강요했다. 임신 사실을 안 어머니도 조심스레 낙태를 권했다. 대학생인 나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배우고 알았던 것, 그리고 모성으로 느끼는 것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결정은 옳았다. 나는 지금 내 딸과 행복한 길을 걷고 있다.”(낙태반대운동연합 소식지 2017년 8월호)
출산과 양육이 현실적으로 고통스럽고 불가능해 보여도, 이 책임의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낙태는 늘 최악의 선택이다. 다른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낙태보다 훨씬 좋은 선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0월 7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0 1,42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