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28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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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10-10 ㅣ No.154

연중 28 주일 ( 가해 )

        이사야 25,6-10ㄱ 필립비 4,12-14.19-20  마태오 22,1-14

     1999. 10. 10.

주제 :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시는 고양동 교우 여러분,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는 아침저녁의 날씨도 선선해졌고, 여름을 마치고 겨울을 준비하는 듯 합니다.  이럴 때 하는 계절 인사는 우리에게 반갑다고 찾아오는 감기 녀석을 친구로 받아주지 말고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몇 사람을 만났는데 벌써 감기에 걸린 몇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삶을 돌이켜 보며 늘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이 다짐을 잘 실천하고 올바른 결실을 맺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바람이 불어도 열매를 맺는 이삭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우리도 미래 어느 날엔가 웃음을 머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실제 생활에서 웃음을 지니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주제는 ’인간만사 새옹지마’입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 뜻대로 실현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반드시 사람과 관련이 있기에 내 뜻만을 고집하다가는 실패하기 쉬운 일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타협과정을 거쳐야만 슬퍼하지 않을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삶에서 어떤 타협의 방법이 좋은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는 때와 장소, 그리고 삶의 목적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방적인 판단은 힘듭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듯 하다가도 다음 순간이면 잘못된 일로 드러나는 것이 사람의 세계인지도 모릅니다.  같은 뜻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옹지마’의 뜻이 아닐까합니다.

 

연중 시기는 34주간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연중 28주일입니다.  이제 한달 보름 정도가 지나면, 미사 전례를 통해서 기억하는 한해도 마감하게 됩니다.  전례력의 한해를 마감하는 이 때에 성서의 말씀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과 일치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지를 자주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그 중의 한가지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현실 생활에서 잔치 초대를 받으면 부담스럽게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받은 은혜도 다 갚지 못했는데, 이번에 받은 초대에는 또 어떤 것으로 보답해야 한담?"  우리가 갖는 첫 번째 부담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나라를 생각하고 그 초대에도 같은 조건을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생겨도 아주 크게 생긴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누가 갈 수 있고, 어떤 삶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가를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삶에서 부담이 없는 초대라면 흔쾌히 응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어떤 일에도 부담 없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인사를 받으면 언제가 되돌려 갚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면 두고두고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혼인 잔치 집에 축하해 주는 하객들이 없으면 아들의 혼인잔치가 쓸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임금은 억지로 사람들로 그 잔치 집을 채웁니다. 그 자리에는 정말 오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던 임금은 참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 하나를 발견하자 내어쫓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엄청난 선언을 내립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는 원하지도 않은 자리에 억지로 와서 자리를 채웠다가 애매하게 분풀이하는 임금의 제물이 되었다는 데 우리의 생각이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도 인간의 생각을 앞세우기에 생기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정성으로 준비하고 참여한 이 미사도 잔치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안겨주시는 잔치입니다.  항상 완벽한 마음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이 미사에 예복을 갖춘 사람으로 왔는지, 아니면 말 그대로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억지로 잔치 집에 불려와서 자리를 채우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통하여 다른 길을 간 그 사람에 대해 안타깝고 딱하게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의도입니다.

 

하느님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간다면, 세상에 남는 소리는 세상의 끝을 재촉하는 소리밖에 없는 법입니다. 그럴 때에 사람이 세운 도시의 수명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결과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하느님이 준비하고 초대하시는 잔치에 참여할 희망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악인이 설치는 세상, 옳은 길을 걷지 않는 사람들이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자꾸만 울려 퍼진다면 세상이 지금은 아름답고 황홀하게 보여도 뻔한 결과를 맺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정해진 일은 없습니다. 20세기의 1999년을 보내면 마치도 세상이 끝날 것처럼 떠드는 소리도 그 외침대로 실현될지 실현되지 않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다섯 개의 행성들이 한 줄로 늘어선다는 위협도, 지진이 자꾸만 일어나서 우리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일도, 두렵고 무서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은 사람의 생각과 태도가 경직되고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그 미래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모르는 미래가 불안하기에 미래의 바탕이 될 현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그 자세를 올바로 갖추기 위해서는 오늘 두 번째 독서에 나오는 삶의 자세를 갖추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큰 소리 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준비하시고 우리를 초대하는 축제에 우리는 하느님께 청원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역경의 현장에서 이루는 삶이 더 풍요로워지려면 여러분들은 하느님께 어떤 도움을 청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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