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나의 성화 통해 하느님 영광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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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1 ㅣ No.280

[레지오의 영성] “나의 성화(聖化) 통해 하느님 영광 드러내기”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다(교본 27쪽). 이는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매 주일 회합하고 활동할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성화시킬 수 있는가? 교회는 매년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마태오 복음 6장 1-6절, 16-18절을 들려준다. 이 복음은 단식과 기도, 자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단식, 기도 그리고 자선에서 우리는 성화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단식(斷食)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항상 바쁘다고 이야기 한다. 물건을 사느라 바쁘고,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고,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다. 하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이 중요한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 없다. 그러면서 시간이 된다면, 할 수만 있다면 피정이나 휴식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단식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단식은 말 그대로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 끊는 것’이다. 이 단식은 교회는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단식을 명한다. 이 단식을 우리의 삶 안으로 좀 더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왜냐면 단식은 그저 음식을 끊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단식은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휴대폰, 인터넷, 텔레비전 드라마, 커피나 음료수 등 우리를 둘러싼 물건들에 대해 끊어보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의 처리나, 매일 일을 밤늦게까지 처리하거나, 토요일이나 주일도 없이 일에 빠져 있다면 그 일을 끊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동창회나 기타 여러 모임 등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무언가 허전함이 있다면 이 사람들과의 관계도 한 번 끊어 보는 것이다. 이 끊어보는 것으로 우리는 그 물건이나, 일, 사람들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의 노예로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 안에 파묻혀 있는 동안에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 끊어봄으로 해서, 그것들로부터 떨어져 봄으로써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노예로 살고 있는지,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말이다. 만약에 그것들의 노예로 살고 있다면 다시 그 물건의, 일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자리인 내 삶의 주인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때 우리는 그 물건, 그 일, 그 사람들을 뛰어넘는 저 너머의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기도(祈禱)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 물건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 이 물건은 모두 다 가질 수 없기에 상처를 입는다. 또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는데, 이때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도 하지만, 슬픔과 분노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관계 속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입기도 한다. 이렇게 상처받고 속상해 할 때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이 생기면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무디어 진다. 이렇게 무디어진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관계가 악화된다.

이럴 때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먼저 속상하고, 화나고, 아파하는 그것을 가지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느님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표현하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해야 한다. 끝까지라는 것은 내가 변하던지, 하느님이 변할 때까지 기도한다는 자세로 어느 순간 마음의 평화를 찾을 때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끝까지 기도했을 때 하느님과 나와의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만남 안에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시게 될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이것이 기도이다.


자선(慈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한 생각은 자기 자신만 옳고 다른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전부이고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 또한 우리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하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그런 눈으로 항상 바라본다. 이러하기에 타인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자선을 한다는 것은 불쌍한 사람을 보고는 동정심이 생겨 겨우 내 주머니에서 동전 몇 푼을 끄집어내어 던져주는 것이 아니다. 자선을 한다는 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임을 다시 보게 되었다면, 자선은 타인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즉 타인을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로 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5,45) 하느님은 항상 새로운 눈으로 사람을 보듯이 우리도 ‘어제의 너’가 아니라 ‘오늘의 너’로,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 딸’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선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적선하듯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내가 귀한 사람이듯이 당신도 귀한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11,45)’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베드로 1,16)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끊고 기도하고 자선함으로써 자신을 성화시켜 나가야하며, 이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레지오 단원이 되어야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9월호,
서철 바울로(신부, 청주교구 천주의 모친 레지아 담당사제, 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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