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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19: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열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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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8-18 ㅣ No.710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19)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 - 열정이란 무엇인가


열정, 기쁨 · 고통 · 희망 · 두려움의 네 가지 심리 현상



서양판 칠정(七情)인 열정

십자가 성 요한의 작품을 읽다 보면 현대인들에게는 좀 생소하다 싶은 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열정’ 또는 ‘격정’으로 번역되는 ‘pasin’이란 말입니다. 성인은 「가르멜의 산길」 3권 17-45장에서 내내 이 개념에 대해 설명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실 이 용어의 공식적인 한국어 번역은 ‘열정’이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 보다 정확한 말은 ‘감정’입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과 일곱 가지 감정을 일컬어 사단칠정(四端七情)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칠정(七情)은 인간이 외부 사물에 접하면서 여러 가지 정(情)이 표현되는 심리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전하는 ‘열정’ 역시 인간이 사물 또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일으키는 네 가지 심리 현상, 즉 기쁨, 고통, 희망, 두려움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인이 가르치는 열정은 쉽게 말해 서양판 ‘칠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 토마스가 가르치는 열정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하는 이 개념은 사실 성 토마스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성 토마스는 인간의 욕구를 욕구되는 대상에 따라 ‘지성적 욕구’와 ‘감각적 욕구’로 나눴는데 전자를 ‘의지’라고 불렀으며 후자를 그 대상에 따라 다시 ‘탐욕적 욕구’와 ‘분노적 욕구’로 나눴습니다. 탐욕적 욕구가 향하는 대상은 욕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善)으로서, 이 욕구는 인간에게 좋은 것으로 판단된 대상을 원합니다. 이 욕구가 사랑, 바람, 기쁨, 미움, 도피, 고통이라는 6가지 감정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성 토마스는 이를 탐욕적 욕구에서 유래했다 하여 ‘탐욕적 열정’이라 불렀습니다.

반면,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그 장애물을 없애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분노적 욕구’는 이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하는 열망을 말하며 이 욕구가 장애물과 관계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감정들, 즉 희망, 대담(大膽), 분노, 절망, 두려움 이 5가지 감정을 ‘분노적 열정’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 토마스는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에서 사물이나 사람과 관계하는 가운데 총 11가지의 열정, 즉 감정이 일어난다고 보았으며 이 가운데 기쁨, 고통, 희망, 두려움을 인간의 대표적인 감정으로 꼽았습니다. 16세기 중반 성 토마스의 신학이 대세로 자리 잡은 스페인의 살라망카 대학에서 그의 신학을 공부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성 토마스가 가르친 이 대표적인 4가지 감정을 받아들여 인간에 대한 감각적 정화 과정과 접목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가르치는 열정의 정화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4가지 감정이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정화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온갖 번뇌가 잘못된 집착에서 오며 이 번뇌들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괴롭히고 어지럽혀 더럽힌다고 가르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느님 아닌 사라져 없어지고 말 사물과 사람에게 집착함으로써 갖게 되는 번뇌가 성인이 말하는 감정입니다. 이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인간이 간직한 사랑의 에너지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종래에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정놀이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허망한 것에 집착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단속해야 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물과 사건을 접하며 살아가는 피와 살을 지닌 인간에게 감정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감성적 동물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희망하십시오

문제는 그러한 감정에 휘말려 헛된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우리가 갖게 되는 이런 감정을 하느님이라는 기준 아래 질서 지우도록 권고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쁜 일이 있으면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슬픈 일이 있으면 주님과 함께 아파하며 그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바라보고 마음을 들어 올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뭔가를 희망한다면, 거기에 마음을 다 주지 말고 우리의 궁극적 희망이신 주님께 그 마음을 들어 높이고, 두려운 일이 있을 때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현존과 동반을 기억하고 온전히 의탁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영혼이 이 감정들을 하느님을 위하여 이성적으로 사용하면서 오로지 순수하게 하느님의 영광과 영예만을 기뻐하고, 하느님 외에는 다른 것에 희망을 두지 않고, 이런 것을 다뤄야 하는 것을 슬퍼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두려워한다면, 영혼의 힘과 그 재능을 하느님을 위해 분명하게 간직할 수 있다”(「가르멜의 산길」 3권 16장 2항). 그러므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장 4-7절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그분께 모든 걱정을 내어 맡기며 어떤 경우든 감사하고 우리의 소원을 청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고 참된 평화를 선사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굳건한 반석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16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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