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조윤호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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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44

성 조윤호 요셉(1848-1866, 농부, 병인박해 때 참수)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1864년 아버지를 따라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여 교우 처녀인 이 루치아와 결혼했다. 1866년 12월 5일 아버지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아버지와 함께 6, 7차의 심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아버지가 순교한 지 10일 후인 12월 2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곤장 16도를 맞은 후 1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 성 조화서 베드로는 아버지.

- 성 조화서 베드로,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정원지 베드로와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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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년 한 해도 저물어 가는 12월, 박해의 불길은 더욱 거세지면서 지방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병인년의 박해는 이렇게 꺼질 줄 모르고 있었다. 찬 기운이 도는 새벽녘, 조화서 베드로는 교우들을 돌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들 요셉 집으로 향하던 베드로는 막 돌아서던 골목 어귀에서 천주교인을 잡으러 다니는 포졸들과 맞딱드리게 되었다. 교우들임을 순순히 밝히고 포졸들에게 포박되어 집으로 되돌아온 그는 아들만은 살아서 집을 지키고 계속 전교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어서 피하라는 전갈을 아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체포되었다는 전갈을 받은 아들 요셉은 그 길로 달여와서는 오히려 "아버지, 저더러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이제껏 믿어온 믿음이 헛되지 않게 함께 가기가 소원입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며 애원하였다. 이에 조화서도 아들의 뜻을 갸륵하게 여겨 포졸들에게 "우리 부자는 결코 변하지 않는 신심이 두터운 신자들입니다" 하며 앞장서 갔다. 이렇게 해서 조화서와 윤호 부자는 같은 오리에 묶여 전주 감영으로 가면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조화서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곧 홀어머니를 모시고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1864년에는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를 가 농사를 지으며 전교에 힘쓰며 살았다.

 

조 베드로는 아내 한 막달레나가 아들 요셉을 낳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자 김수산나와 재혼했다. 그는 언제나 순교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 주님의 섬기는데 전념하였고, 신자의 도리를 충실하게 지켰다. 그의 아들 요셉 또한 아버지 못지 않은 깊은 신심과 성실한 수계생활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전주 감영에 도착한 조 베드로는 곧바로 심문을 받았다. 이때 포장은 "네가 아들과 함께 죽는다면 대(代)가 끓어짐은 물론 재산을 빼앗기며 가족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배교하여 떳떳이 살아감이 어떻겠느냐?"며 배교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내 비록 세상에서는 죽더라도 죽은 뒤 곧 새 세상에 가서 살게 될 것이오"라고 의연하게 응수하였다. 며칠 후 조 요셉도 문초를 받는 중에 '아버지가 배교하였으니 너도 어서 배교하여 나가라'는 유혹을 받았다.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가 처리하실 줄 압니다. 저로서는 관여할 바 아니옵고 저는 결코 배교할 수 없습니다"고 꿋꿋하게 말하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혹한 채찍과 고문뿐이었다.

 

이들 부자는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요셉아, 우리는 기왕 주님 곁에 가는 몸, 결코 형리들의 채찍 앞에 마음을 굽히지 말자. 관장 앞에 가서도 우리 성교의 진리만을 대답할 뿐 어떤 가혹한 형벌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서로를 격려하며 마음을 평온하게 가졌다.

 

이윽고 조화서 베드로에게 참수형이 내려졌다. 1866년 12월 13일, 베드로는 형장에 이르러 밝은 표정을 지으며 정중히 긋고 희광이에게 "진실된 삶을 가지려거든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하늘나라에 갈 것이오" 하며 머리를 내밀었다.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당한 그는 그때 나이 쉰둘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에 죽을 수 없다는 국법에 따라 아들 조윤호 요셉은 열흘 뒤인 12월 23일 같은 장소에서 곤장 16도를 맞은 뒤 열아홉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렇게 해서 조씨 가문은 삼대에 걸쳐 순교자를 내게 되었다. [경향잡지, 199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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