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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우리 삶의 중심에 있는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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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0 ㅣ No.253

[레지오의 영성] Allocutio - May, 2011


우리 삶의 중심에 있는 미사



최근에 저는 어느 ‘거듭난’ 그리스도인 단체에 초대받았다는 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그 단체에 소속된 회원들이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성가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우리 가톨릭 신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주장하는 매우 많은 단체들과 우리를 구별시켜 주는 것은 우리 삶의 중심에 미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사는 다른 많은 것에 비해 훨씬 더 귀중합니다. 왜냐하면 미사의 본질에는 어떤 인간도 할 수 없었던 가장 위대한 행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갈바리아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스스로 택하셨으며 치욕적으로 비난받았던 그분의 행위는 인류의 역사상에서 볼 수 없는 최상의 사랑을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그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스스로 그 입장이 돼보면 그 일의 위대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마태 27,54)라고 말했던 것이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 성모님과 사도 성 요한도 함께 그 끔찍한 순간에 잠겨 서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 일이 그들에게 어떠한 일이었겠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정신적 외상trauma(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 손상)을 초래했다는 현대적 용어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정신적)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수년간 그 상처를 남깁니다. 성 요한이 자신의 복음을 4 복음서 중 맨 마지막에 저술했다는 것은 그가 본 것을 극복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예수님이 참혹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본 것은 어쨌든 매우 젊었을 때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성 요한을 성모님께, 성모님을 성 요한에게 맡긴 것은 당신 자신의 고통 중에서도 그들의 괴로움을 아셨기에 그렇게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드디어 성 요한이 복음의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나서 내린 단 하나의 결론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사야가 예언했던 그 분, 전 세계의 죄를 없애주실 새로운 희생양이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한 숭고한 행위, 당신에게 가해진 모든 잘못에 대한 총체적인 용서, 그런 심한 고통을 참으시며 도리어 정반대로 십자가에서 하신 선한 말씀으로 인해 완고한 백인대장조차도 감명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행위로 우리 모두를 천벌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그 위대한 행위를 거행합니다. 이는 어떤 신비한 방법에 의해 우리가 현존하는 그 행위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 거룩한 미사를 거행하는 모든 사제는 마음으로 그곳, 그 시간으로 되돌아갑니다.”(Ecclesia de Eucharistia/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 2003년 4월 7일 회칙 4) 그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끝없이 바치는 하나의 영원한 희생이 되었고 더 이상 공간과 시간의 한계라는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스스로의 계획에 따라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에서 나누어 주셨듯이 당신의 사제들에게도 그 행위를 우리에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우리가 그 행위의 은총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가 당신의 말씀과 최후의 만찬에서의 행위를 재현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또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우리도 당신의 행위의 일부가 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육신을 버리며 우리의 피를 흘리는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미사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봉헌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약속하며 그분의 영웅적인 사랑을 본받는 곳입니다. 미사는 교회의 모든 보화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보화가 단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도전 의식과 힘을 북돋아주는 숭고한 희생의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계속 바치시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미사는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랑의 원천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과의 동질화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그분을 우리 삶에 받아들여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상생활을 하도록 강화시키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소명이 아내와 어머니의 소명이기도 하신 성모님은 미사에서 평신도 참여의 표본입니다. 여러분이 성경과 예수님의 교회를 조소하는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어떤 정신적 외상의 어려움을 나누고 비극을 겪은 사람들과 고통스러워하며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서 있다면 그 때가 여러분이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 밑에 서 있는 것입니다. 미사보다 이를 더 잘 거행하거나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있는 그곳에서 여러분은 또한 삶을 봉헌으로 바치고, “그가 그리스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마태 27,42 참조)라는 구절을 현대적 말투로 비꼬는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과 경멸을 포함하여 그분을 따르는데 들어가는 노고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는 것처럼 죄를 용서하는데 따르는 고통을 바칠 수 있습니다.

오늘 성소 주일에 여러분의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예수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제들에게 준 대단한 격려에 대해 제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또 제가 이 말씀을 하는 동안 도처에 있는 많은 사제들도 저와 같은 감정에 동조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소 주일은 교회의 다른 소명보다 중요합니다. 이는 단지 사람들을 그들의 성소를 듣고 그것을 따르게 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들의 성소를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즈음 계속하여 단지 사제가 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이미 사제가 된 분들을 위해서도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그들이 성소 안에서 성숙되고 계속 성소를 지킬 것입니다.

갈바리아에서 마리아와 요한은 예수님과 결합되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도 그들과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미사도 우리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성모님의 아드님인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여러 그리스도인 소명 안에서 상부상조를 실행하는 결합의 장소가 되기를 빕니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1년 8월호, 글 폴 처칠(더블린 프레젠타타 Cu. 영적 지도신부), 역 하성환(서울 se. 국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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