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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10: 십자가 성 요한의 작품 - 영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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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5 ㅣ No.680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10) 십자가 성 요한의 작품 ③ 영혼의 노래


인간 영혼이 하느님 찾아 떠나는 ‘사랑의 노래’



‘영혼의 노래’ 전체 39연을 묘사한 이콘(세고비아 가르멜 수도원 성당).


성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 중에는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처럼 영적 여정에서 인간이 해야 할 수덕적인 노력이나 고행처럼 딱딱하고 어려운 권고가 아닌,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영혼의 노래」 또는 「영가」(靈歌)라 불리는 작품이 바로 그렇습니다. 보통 앞의 두 작품 때문에 십자가 성 요한의 책은 아주 어렵고 실천하기 힘든 고행 서적 같다고 오해들을 하십니다만, 그건 말 그대로 오해입니다. 성인이 가르치고자 하는 영성적 메시지의 핵심은 고행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성인은 ‘사랑’에 대해 강조하고 또 강조한, 사랑의 사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해 노래한 작품이 바로 「영혼의 노래」입니다.

「가르멜의 산길」과 「어두운 밤」에서 인간이 끊고 벗고 비워야 하며 어떻게 그 수덕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가르친다면, 「영혼의 노래」에서는 왜 인간이 그렇게 수덕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란 다름 아닌 사랑에 있습니다. 진실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임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할 것입니다. 그래서 순서적으로 볼 때, 이탈과 고행에 관해 이야기하는 앞의 두 작품 이전에 먼저 인간의 영적 여정의 모티브가 되어주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랑의 완성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인간에 대해 전하는 「영혼의 노래」를 읽어야 합니다.


「영혼의 노래」의 집필 배경

「영혼의 노래」가 집필된 데에는 그 나름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톨레도의 감옥에서 탈출한 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활동할 당시, 성인은 엘갈바리오라는 수도원의 원장으로 소임을 하며 걸어서 한나절 되는 거리의 베아스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에 미사 집전과 강의를 통해 수녀님들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1578년 어느 날 그곳에 ‘예수의 안나’라는 원장 수녀님이 성인께서 직접 지은 ‘영혼의 노래’라는 시에 대한 해설을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성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작품이 산문으로 된 「영혼의 노래」입니다.

이 작품은 「아가」를 모티브로 하되 성인이 톨레도의 감옥에서 겪었던 어두운 밤에 대한 체험과 동시에 그 모든 고통과 어두움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에 대한 체험 그리고 그 임을 찾아 떠나는 자신의 여정을 빗대어 쓴 시(詩)와 그에 대한 영적 해설을 담고 있는 성인의 독창적인 작품입니다.


「영혼의 노래」의 전체적인 구조

「영혼의 노래」는 39개 연으로 된 기나긴 서정시에 대한 영성적인 해설서입니다. 해설서의 바탕이 되는 39개 연 가운데 1-31연은 성인이 톨레도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며 몰래 썼고 탈출할 때 갖고 나온 부분입니다. 32-34연은 성인이 탈출 후 바에사에서 지내며 쓴 것이고 35-39연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대해 물었던 어느 수녀에게 써주면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시의 전체적 흐름은 ‘신부’로 상징되는 인간 영혼이 ‘신랑’이신 하느님을 찾아 여행을 떠나 유랑을 하며 느낀 사랑의 애절함이 깊어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임을 만나 그분과 사랑을 나누며 만끽하는 사랑의 기쁨과 평화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내용 전개에 따라 시는 다음과 같이 6개의 블록으로 나뉩니다. ① 신랑이신 임을 찾아 떠남(1-11연); ② 사랑하는 두 연인 간의 만남(12-16연); ③ 두 연인 간의 신비적인 합일(17-26연); ④ 영적 결혼(27-31연); ⑤ 영적 결혼을 통해 두 연인이 나누는 내밀한 사랑의 삶(32-34연); ⑥ 하느님 안에서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원의와 그 징조(35-39연).

우리에게 전해오는 「영혼의 노래」에는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흔히 「영혼의 노래 A」(전체 39연)로 표기되는 작품은 앞서 설명한, 성인의 톨레도 원체험을 중심으로 후에 추가된 부분을 소개하는 작품인데 반해, 「영혼의 노래 B」(전체 40연)는 그 후 성인이 여러 지역에서 사목하는 가운데 신자들에게 좀 더 체계적이고 정리된 작품을 보여줄 필요를 느끼며 사목적 배려의 차원에서 시 전체를 재편집하고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영혼의 노래」 1연에서 성인은 다음과 같이 운을 떼며 사랑을 찾아 떠나는 영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숨으셨나요? 신랑이여, 내게 탄식을 남기시고…내게 상처를 남기시고, 소리치며 따랐으나, 당신은 가버리셨네요.” 이어서 영혼은 애절한 심정으로 목동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혹시라도 그분을 보았거든 말해다오. 나는 앓고 아프고 죽어간다고”(2연). 그 영혼은 오직 임만을 그리워하며 길가의 꽃도 꺾지 않고 외곬의 길을 간다고 전합니다(3연). 그분을 향한 그리움은 사무치다 못해 깊은 상처가 되고 영혼은 그 상처 속에서 죽어갑니다. 그의 유일한 소원은 임을 뵙는 것입니다(10연). 그렇게 죽어가던 영혼은 마침내 그 임을 만나 사랑을 나누며 소원을 풀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은 오직 혼신을 다해 당신을 섬기는 일에 전념했다네. 오직 사랑만이 나의 일이라오”(19연).

여러분도 십자가 성 요한의 안내를 받으며 여러분의 최고 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겠습니까?

[평화신문, 2015년 6월 1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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