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22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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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8-26 ㅣ No.146

연 중   제  22  주 일  ( 가 해 )

         

          예레 20,7-9 로마 12,1-2 마태 16,21-27

       

       1999. 8. 29.

주제 : 세상일의 순리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릅니다. 또한 세상에서 흔히 통하는 명령은 권력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이 같은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엄숙한 체하고 큰소리칠 때에 나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보는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것은 세상에서 통하는 순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일의 순리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제 무더운 여름도 대충 지난 8월 하순입니다.

이 복잡하고 무더운 여름을 지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셨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리처드 바크의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그날그날 먹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보통의 갈매기로 남을 것인지, 당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 자신의 한계가 얼만큼이나 되는지 깨달아 알려고 노력하는 조나단 갈매기처럼 탐구하고 결국에는 유명한 진리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당연한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평소의 우리 삶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22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사랑한 몇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의 독서와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지나치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옳고 지당한 진리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조금 달리 움직일 수 있는 아량도 필요하다는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받은 뒤,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한 몫을 하던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제자들중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가리켜 ’메시아’라고 고백하여 믿음의 본보기를 세우기도 했고, 빵을 많게 한 기적을 보고 난 다음 무리한 요구인 것을 알면서도 도전했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을 뻔한 일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경력을 가졌던 시몬 베드로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꾸중 듣습니다.  그것도 ’사탄이며, 당신의 장애물’이라는 엄청난 폭탄선언을 듣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늘이 무너진다면 그런 것을 두고 하는지 했을 것입니다.  첫째 독서에 나오는 예레미야 예언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움직였기에 그 말씀에 따라서 자신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향하여 자신의 삶을 변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무척이나 사랑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그는 하느님을 향하여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푸념을 하고 항의를 하려면 예레미야만큼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삶의 절규이기도 합니다.

 

오늘 전례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의 공통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충실하는 자세로 말입니다.  그랬기에 하느님께 푸념하고 장애물이라는 엄청난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신앙의 모범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세상의 순리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일의 순리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경험이 많아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갖고 있는 돈이 많아야만 그 깨달음에 빨리 가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닐 지도 모릅니다.  어떤 것이 정도(正道)요 어떤 것이 올바른 길인지는 사람이 처한 입장과 환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오늘 베드로 사도와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 방법의 한 가지를 깨달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즐겨 받으실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말씀의 뜻을 알아듣고 자신의 생을 살아간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살았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삶의 본보기를 남기지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받아주실 진정한 제물, 우리가 정성을 모아서 할 수 있는 진정한 제사, 그것은 우리가 우리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태풍의 두려움과 비바람으로 시작했던 8월도 이제는 끝을 향해 갑니다.  세상일의 모든 것에는 이처럼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 끝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그 끝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데에 꼭 필요한 하느님의 힘도 함께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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