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대림 4 주일-나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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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12-18 ㅣ No.168

대림 4 주일 (나해)

          2사무 7,1-5.8b-12.14a.16    로마 16,25-27     루가 1,26-38

     1999. 12. 19.

주제 : 사람의 의지와 하느님의 뜻

 

세상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가끔씩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변할 수 없는 사실은 바로 그것입니다.  고양동 성당이라는 작은 공간을 채우는 여러분이 보여주시는 지금의 모습도 그 사실을 보여주는 한가지이고, 마음과 생각을 모아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와 감사를 봉헌하는 미사 시간도 세상은 살아갈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가지 일입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낸 시간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봉헌하며,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분의 뜻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이 갖는 마음은 어떤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까?  잔잔한 상태인가요?  아니면 파랑이 이는 상태인가요?  그 물결의 높이는 우리가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어떻게 봉헌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 네 번째 주일입니다.

인류가 구세주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교회가 설정한 대림 시기는 이번 주간으로 마칩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에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구원자가 우리와 같은 모습의 인간으로 태어남을 기념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축제를 지낼 것입니다. 그 축제가 정성이 깃든 우리의 마음을 담는 축제는 2000년을 맞는 대림시기 마지막 주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질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 사물에 대해서 갖는 우리 사람들의 의지와 하느님이 세상을 향해서 갖는 의지의 조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 부족에 속한 한 여인으로서 당시의 사람들이 기다렸던 것처럼,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분에 차별을 두는 사회가 늘 그렇듯이 그 일이 자신을 통해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난데없이 천사가 찾아와서, 처녀이지만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아기는 아들이며, 그 아기의 이름은 ’예수’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고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서 왕위에 올라 자신의 뜻대로 백성을 다스리던 다윗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행복을 누리며 편하게 지은 궁궐에서 살고 있는데, 내가 이런 곳에 살 수 있도록 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하느님의 ’계약 궤’는 아직도 허름한 천막에 머물러 있다니...... 이 부조화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가?"

 

놀라운 현실을 깨닫고 몸 둘 바를 몰랐던 것은 마리아나 다윗이나 같은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데, 하느님과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판단과 행동을 달리합니다. 두려움이 앞선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그들이 보였던 자세는 우리가 삶에서도 꼭 본받아야 할 모습일 것입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그리고 조용한 자세로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나단 예언자의 뜻을 들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느님의 소리라고 느낄만한 충격이 섞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놀라운 체험과 마음의 소리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상당수 사람들은 같은 체험을 했더라도 개인적인 성화(聖化)에 머물고 말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업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탓일 것입니다.

 

좋은 일은 광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좋은 결과를 혼자 독점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어차피 모든 것을 나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좋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도 좋은 삶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긴 사람이 해야할 일의 순서는 먼저 감사하는 마음과 그것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의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고, 오로지 나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르기는 해도 ’욕을 먹고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독단적인 사람들입니다.  

 

만일 다윗이 독단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하느님의 성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을 혼자 누리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는 말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다음 뒤늦은 판단이기는 해도 그들의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날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림 4 주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다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가올 그 기적 같은 일에 우리가 정성 깃든 마음으로 함께 방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래 전에 이루어진 사건과 기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참다운 기쁨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그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된 가르침과 사랑의 정신을 되찾는 일이고, 그렇게 되찾은 마음을 자신과 가까운 이웃에게 실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1999년의 대림절 시기를 보내며,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삶의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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