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06 주일-다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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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2-11 ㅣ No.270

연중 제 6 주일 (다해)

 

        예레미야 17,5-8       1고린 15,12.16-20      루가 6,17.20-26

    2001. 2. 11.

주제 : 참된 행복-신앙인의 삶

 

하늘의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계절입니다. 봄이 된 것처럼 따뜻해졌다가, 다시 추워지기를 반복하는 이런 때일수록 자칫하면 게을러지기 쉬운 때입니다. 그 게으름을 피한다고 무리하게 운동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적당한 움직임은 필요한 계절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건강하게 살자는 것이고 행복을 우리 곁에 가까이 두자는 것입니다.

 

지난주간 수요일은 대보름이었습니다. 방송에서 몇 차례 나오기를 한해에 가장 크게 보이는 달을 보면서 한해의 소원을 빌 수 있는 때이고, 올해는 어디서나 달을 볼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찾아왔던 달을 보시면서 어떤 소원을 빌었습니까?  마음의 바람을 기도하셨다면 그 바람이 실현되기 위해서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신 일 없다면 무계획이 더 나은 계획일 수도 있겠지요.  혹시 바쁜 삶에 달을 볼 시간이 없으신 분도 있으셨을 분이 있을 것 같아 인터넷 본당 홈페이지에 달 사진을 한장 게재했습니다. 뒤늦게라도 정월 보름달을 보시고 마음의 바람을 말씀하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늘 같아 보이는 세월을 지내면서 절기를 생각하고 그 시기를 지내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주기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보고 묵은 시간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자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사정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그대로 실천할 일이고, 그렇게 하면 우리 삶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6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에 대한 평가와 그 행복을 어떻게 하면 얻고 지킬 수 있는지 하느님의 시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을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행복을 가까운 곳에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법과는 다른 차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이란 단어를 돈과 연관시켜 생각합니다. 많은 돈을 벌어 모으거나 커다란 집을 사거나 좋은 차를 마련하고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기준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생각할 때,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분명 손해보는 일, 행복과는 반대되는 일을 선택하신 분들입니다.  성당에 오셨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여러분은 성당에 돈을 내고 갑니다. 행복의 길과는 반대이죠.  차를 사용하신다면 행복과는 반대되는 곳에 휘발유를 쓰시는 것이고, 식도락가라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준에 따른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행복의 기준은 '부유하고, 배불리 먹고, 웃고 지내며,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선언하시며,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행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갖는 생각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각이 충돌할 때, 싸울 필요는 없지만 뭔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노력하는 일도 중요합니다만, 우리가 우리 몸 밖에서 가져다 쌓는 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행복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지, 진정한 행복은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복잡하게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신앙인들, 예수님이 왜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을까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신앙인이 갖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준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하는 삶의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멀리하고 사람을 믿는 사람들이 살아갈 곳은 소금이 깔려있는 땅,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땅이라고 선언하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곳을 옥토로 바꾸겠다고 생각하고 하느님을 멀리하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내게 무엇을 베풀어주셨느냐고 묻는 사람들이라면 아직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개울가에 뿌리내린 나무와 같다고 예언자는 선언하지만 '누가 튼튼한 뿌리를 거기에 내리고 사는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올바른 신앙인의 삶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가능성이 없는 듯한 곳에 삶의 희망을 두고 삽니다. 이 세상과 연결된 하느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부활이후의 삶은 아무도 우리에게 증명해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지내는 우리는 그 희망으로 우리의 현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작은 일들이 결코 단 한번에 사라지는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기에 우리는 힘든 현실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연중 6주일에 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힘으로 다가옵니까?  잠시 우리 안에 울리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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