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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하느님과 그 백성의 집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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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10 ㅣ No.85

하느님과 그 백성의 집으로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찬란한 성장에 비해 가톨릭 문화의 표상인 교회 건축은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과 문화를 드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과 자성의 소리가 높다. 바람직한 현대 교회 건축은 어떤 모습인가? 신부님이나 신자들한테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종교 건축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사회의 새로운 요구와 변화에 부응하며, 우리의 전통문화와 조화되는 건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이 되지 못한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들 이상적인 교회 건축상을 이야기할 때 개념이나 원칙보다는 가시적인 형태를 이야기하는데, 다원적인 시대의 현대 건축에서는 이상적인 모델이나 양식을 말하기 힘들다. 따라서 여기서는 현대 성당 건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대안을 생각해 봄으로써 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본당의 거대화 현상

 

도시의 높은 지가, 인구집중, 급속한 교세확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본당의 거대화는 사제와 일반 신자들 사이에 인간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공동체적 유대감과 소속감의 결여를 낳게 하며 기계적이고 냉랭한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고, 본당운영 자체가 사목의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지역교회로서 사명을 소홀히 하기 쉽다. 신자들한테 사제는 교회의 관리자로 비치고 결국은 관료적, 권위주의적, 폐쇄주의적인 공동체로 기울어진다. 또한 교회재정의 상당 부분이 오랫동안 건축과 건물관리에 소요됨으로써 사회복지나 선교사업 등에 소홀하게 된다. “성전을 짓다 보면 마음의 성전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듯이 무리한 재정확보의 과정에서 가난한 신자들의 상대적 빈곤감, 소외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대지에 비해 최대한의 용적을 추구함으로써 주변환경과 어우러지지 않는 부조화, 기능과 동선의 혼란, 성(聖)과 속(俗)의 불분명, 공간성의 상실 등 건축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대형구조는 전례에 합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천년대 복음화의 요체인 소공동체 운동에 역행하는 것이다. 무조건 크게 지어놓고 보자는 생각에서 많은 공간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낭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교구 안의 본당 사이에도 관할구역과 규모, 크기의 격차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본당 분할의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세워서 부지를 확보해야 하며. 둘째, 한 본당의 적절한 신자수나 관할구역, 시설공간의 구성비율, 성당의 입지 등을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정하거나 획일적인 기준보다는 지역의 특수성에 따른 몇 개의 유형을 설정하여 시행하면 좋을 것이다. 셋째, 도저히 분당이 불가능할 경우는 도시공소를 둠으로써 거대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본당의 규모는 되도록 작아져야 하며 이를 위해 모(母)본당이 자(子)본당을 많이 두어 공동사목 대책을 강구함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세속화 문제

 

다원화한 현대사회에서 교회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은 교회건축의 비성역화, 민주화, 인간화, 다용도화 현상을 낳았다. 즉 교회 공간과 일상공간의 동질성을 도모하고 교회 안의 위계적인 구분을 배제하여 신앙 공동체에 누구나 똑같이 참여한다는 느낌을 제고해 줄 수 있는 교회 건축 개념이다. 그러나 사회참여가 너무 중시되어 인간의 존재의미와 하느님과 재연합이라는 종교의 근본문제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현대 한국교회는 이와 같이 교회의 위계적이고 희생적인 면을 무시하고 교회의 친교, 사회적인 면을 부당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당의 세속화로 나타난다. 성당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느님의 집(Domus Dei)’인 동시에 또한 ‘하느님 백성의 집(Domus Ecclesia)’이라는 성당의 개념은 변할 수 없다.

 

 

물질주의 경향

 

종교 건축은 그것이 목표로 하는 성스러운 것의 구현을 비물질화에 두고 있다. 종교 건축의 주된 개념인 통일성, 질서성, 초월성, 투명성 등은 그 대상으로 형태나 질료보다는 공간을 더 우위에 두어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교회 건축을 볼 때 값비싼 재료로 필요 이상의 치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종교 건축의 정수가 공간에 있지 않고 형태와 장식에 있다는 잘못된 인식과, 물질로써 신앙심을 표현하려고 하는 그릇된 자세에서 기인한다. 물론 정성 들인 장식이 종교성의 표현이 맞지 않는다든가 교회 건축은 비싼 자재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니다. 무분별한 장식의 남용이 오히려 종교 건축의 진실성과 성실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교회 건축은 구조와 기능, 공간과 장식이 일치해야 하는데 건축설계 따로, 장식 따로, 성미술 따로 하는 식으로서는 항상 부조화와 상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건축가, 성직자, 미술가 사이에 긴밀한 협조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며 이는 설계단계에서부터 고려되어야 한다.

 

 

토착화 문제

 

교회 건축, 토착화한 우리다운 교회 건축을 찾기 힘들다. 사실 역사를 통해서 본 교회 건축은 항상 국제적이면서도 토착적이었다. 우리도 초기 교회에는 토착적인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나 건축가들은 토착화를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토착화는 건축만이 아니라 전례형식에서 그리고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도 발휘되어야 한다. 교회 건물을 토착화한 형태로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토착화의 표현이 건물의 공간이나 내용보다는 외양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붕형태나 고건축 의장요소, 전통재료에 따른 전통의 추구는 스케일상의 문제, 주변환경과 부조화, 재료와 구법상의 불일치 등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아직도 절두산성당(1967년)을 능가하는 토착화한 성당은 보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양의 교회 건축사에 견주어볼 때 불과 백 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는 아직 유아기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우리 것을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구상에서 우리처럼 교회 건축이 활발한 나라도 없다. 그 수많은 성당들이 토착화의 확고한 이념이나 원칙 없이 마구 지어진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토착화의 진정한 의미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국 문화 속으로 들어와 성장하는 것이므로 이 시대에 합당한 교회 건축이 되기 위해서는 고건축 복고형이나 모방형이 아닌 현대 건축이어야 하고 지역의 인문적 자연적 여건에 적합하여야 한다. 전통의 계승은 형태나 양식이 아닌 공간구성과 이념 등 내면적인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교회 건축의 기본

 

최근 실험적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성당이 계획되고 지어지고 있다. 진부한 형태의 성당에 비해 설계자의 의도가 뚜렷이 읽혀지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전례의 기능이나 건축적인 요구에 충실하지 못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유희에 불과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반짝이는 작가의 재능과 순간적인 감동은 보이나 모든 이한테 편안한, 조용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성당은 아닌 것이다. 성직자들한테 받는 불신의 반은 건축 전문가의 책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 건축은 무엇보다 건축의 보편적인 계획원론에 충실하여야 한다.

 

우리 교회 건축을 위해 마지막으로 제언한다면 교회 건축을 주도하는 성직자와 건축가, 지도급 신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언어와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 신학교 교과과정에 교회 건축, 미술에 대한 기초교육이 있어야 하고, 건축가는 전례와 교회미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기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교구 교회건축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등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끝으로 교회 건축의 기본개념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교회는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 영원함과 무상함, 그리스도교 문화와 전통문화가 함께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는 전례를 위한 장려한 예배공간일 뿐만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기도와 묵상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교회는 하느님 앞에서 갖게 되는 기쁨, 슬픔, 곤란과 고통의 인간적인 모든 관심사의 고향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건축은 전체로서도 또 부분부분 안에서도 그리고 도구에서도 거룩하게 정열되고 정당화하여야 한다.

 

교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한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기여하는 것이다.

 

* 김정신 스테파노 단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종교건축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한국 가톨릭 성당 건축의 수용과 변천에 관한 연구’ ‘한국 건축사 및 건축 색채에 관한 논문’ 외 여러 편이 있으며 건축설계로는 ‘영암성당’과 ‘석촌성당’ 등이 있다.

 

[경향잡지, 1996년 7월호, 김정신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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