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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23: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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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6 ㅣ No.719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23)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③

 

‘인류를 위한 봉사’에서 새로운 가치 발견

 

 

에디트 슈타인이 2년간 심리학을 공부한 독일의 브레슬라우 대학(지금은 폴란드 브로츠와프 대학).


여인들의 고통에 대한 자각

사춘기로 접어든 16세의 에디트 슈타인은 인생에 대한 깊은 실존적 고민에 빠져 학업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함부르크에 사는 큰언니 엘사의 집에서 약 10개월을 함께 지냈습니다. 당시 형부는 그곳에서 피부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디트는 진료를 받으러 오는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할 기회를 갖곤 했습니다. 특히 진료를 받으러 오는 여성들 중에 성병에 걸린 여인들을 알게 됐는데, 에디트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남성들의 이중적인 생활을 보게 됐습니다. 가정생활을 하면서 외도하는 남편의 모습과 그로 인해 성병에 걸려 고통받는 여인들을 보면서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던 남성들의 위선과 이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에디트로 하여금 여성들의 아픔에 대한 자각,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새로운 자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에디트는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를 갖게 됩니다.


인류를 위한 봉사에서 삶의 의미 발견

당시 에디트가 발견한 새로운 가치는 ‘인류를 위한 봉사’였습니다. 이에 대해 에디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체험을 전합니다. “우리는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에디트 슈타인이 그 이후 실존적인 결단을 내리고 자신을 투신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됐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에디트는 삶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 원천을 발견했습니다. 에디트는 자신이 받은 능력을 잘 계발하면서 인류를 위해 봉사하면, 분명 거기서 삶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때부터 에디트는 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성녀는 대학 진학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그동안 쉬면서 잃어버렸던 시간을 집에서 보충하며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잘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브레슬라우 대학에서의 심리학 전공

대학에 진학할 무렵, 에디트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언니와 오빠들은 영민한 막내 에디트가 의학이나 법학을 공부하길 바랐습니다. 당시에도 의사나 판사, 변호사는 사회적 명예와 부를 차지할 수 있는 안정된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에디트의 결정을 존중하며 그가 대학에서 마음껏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에디트가 대학에 진학하려 했던 것은 사회적 명예나 부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가 고민했던 것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어떤 직업을 가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봉사와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에디트는 이러한 동기를 바탕으로 브레슬라우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에디트의 주된 관심은 인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심리학, 역사학, 철학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독일 사회에서 대학 교육은 남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됐으며 특히 에디트가 선택한 인문학 분야는 더욱더 남성 중심적인 보수 집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디트는 당시 심리학과에서 홍일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위해 활동

에디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비롯해 철학, 역사학을 공부하는 한편,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 여성의 투표권을 얻기 위해 운동을 했고, 타 대학과 연계한 여성 운동에도 참여했으며 여인들을 위해 무료로 개인 교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육 관련 자선 단체를 통해 다양한 봉사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에디트 슈타인의 모습은 성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줍니다. 성녀는 단순히 지적인 활동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했습니다. 즉, 에디트 슈타인의 지적 추구는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실존적인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괴팅겐 대학으로 옮겨 철학 공부

에디트 슈타인은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2년간 심리학을 공부하고 난 후 괴팅겐 대학으로 옮길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간의 공부가 에디트에게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에디트가 그 대학에서 공부했던 분야는 주로 심리학이었는데, 그것은 성녀가 추구했던 인간에 대한 물음에 적절한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심리학은 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상당히 유물론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런 심리학적 전망은 성녀가 추구하던 학문적인 방향과 맞지 않았습니다. 당시 심리학의 주된 화두 중에 하나는 인간이 지닌 동물적인 본능에 대한 실험을 통해 보편적인 심리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디트는 그런 심리학이 궁극적으로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에디트는 브레슬라우 대학에서의 캠퍼스 생활을 뒤로하고 괴팅겐 대학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습니다. 거기서 에디트는 진리 추구의 여정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평화신문, 2015년 9월 13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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