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25: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5)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11 ㅣ No.727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25)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⑤


‘감정이입’ 연구…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철학박사



성녀 에디트가 독일 역사상 여성으로는 처음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프라이부르크 대학.


전쟁 이후의 실존적 좌절과 극복

에디트는 1915년, 6개월간 간호사로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습니다. 그 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괴팅겐 대학에서 학업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자신의 한계,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며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자신이 직면했던 삶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에디트는 좌절했고 삶의 의미도 상실했으며 심지어는 죽고 싶은 충동도 느끼며 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 에디트가 이 위기를 넘어서는 데에는 후설의 조교인 라이나흐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는 에디트로 하여금 그동안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결국, 에디트는 그의 도움을 통해 그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 라이나흐의 도움으로 에디트는 슬럼프에서 나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논문을 잘 진행시키고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적 인간학과의 만남

이렇듯 진리에 대해 그리고 인간 실존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왔던 에디트에게 사실 신앙의 세계는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현상학을 파고들면서 점차 신앙의 길목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당시 현상학을 바탕으로 철학적 인간학 분야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던 막스 쉘러의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에디트는 신앙의 현상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적지 않은 친구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을 보면서 신앙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

그러던 와중, 1916년 논문 지도교수였던 후설이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전임되자 에디트는 논문을 마무리 짓기 위해 그를 따라 프라이부르크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8월 3일 마침내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에디트가 발표한 논문은 「감정이입 문제에 관하여」라는 주제였습니다. 당시 에디트는 최고 점수로 학위 논문을 승인받았으며 이로써 독일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경당의 ‘에디트 슈타인’ 스테인드 글라스화.


철학박사 학위 논문 「감정이입 문제에 관하여」

에디트는 이 논문을 통해 인격 대 인격 간의 관계에서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깊이 성찰했습니다.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입장 속으로 들어가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에디트가 이 능력에 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것이야말로 인격과 인격 간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 관계성 안에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이입’은 인간 인격의 정체성을 파악함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디트가 ‘감정이입’에 관한 연구를 통해 도달했던 것은 인간의 인격적 품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인간은 ‘감정이입’을 통해 상대방을 또 다른 인격체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상대방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게 됩니다. 내가 상대방의 감정에 이입(移入)되어 그와 관계를 맺을 때, 나는 그를 인격적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에디트는 인간 인격을 파악함에 있어 ‘감정이입’을 중요한 요소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신비를 열어젖히는 감정이입

에디트는 ‘감정이입’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인간 존재의 영적인 차원, 인간과 인간 간의 상호 관계성 안에서 타인이 갖는 존엄성과 품위가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녀의 전망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는 나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있을 수 없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체험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나와는 다른 요소를 내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각자는 고유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각 사람이 지닌 체험이야말로 내가 아닌 또 다른 주체의 세계를 내게 보여줍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통해 비로소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에 대한 이해, 상대방과의 관계 맺음은 상대방의 입장이 돼서, 더 나아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에디트가 말하는 ‘감정이입’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10월 11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1,45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