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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48: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기도생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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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08 ㅣ No.640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48)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기도생활 ②


“언제 어디서든 주님과 소통하고 대화하십시오”



기도의 초석인 선한 양심

기도 생활을 떠받치는 또 다른 주춧돌로 ‘선한 양심’을 들 수 있습니다. 양심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지성소(至聖所)로 하느님께서 내밀한 당신의 음성을 속삭여 주시는 곳입니다. 그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도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평소에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경청하고 삶으로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녀 데레사도 이렇게 가르치곤 했습니다.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그 첫째 주춧돌은 바른 양심입니다. 즉, 온 힘을 기울여 소죄를 피하고 가장 완전한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완덕의 길」 5장 3절).

그러므로 제대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양심을 통해 듣게 되는 자기 신분에 요구되는 모든 것을 충실히 실천하는 삶이 전제됩니다. 십계명을 어기는 사람, 죄를 짓는 사람, 남을 헐뜯고 미워하며 거짓말하는 사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제대로 기도할 리 만무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삶의 회심을 전제로 하며 기도 그 자체가 회심으로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안일함은 기도의 적

또한 성녀 데레사가 말하는 기도는 복음의 메시지가 초대하는 대로 주님의 구원 메시지를 전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기존에 안주하던 편안한 삶, 자신의 아성(牙城)을 포기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기도는 그 자체로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입니다. 그것은 ‘거짓 나’를 죽임으로써 하느님의 빛 안에서 ‘참된 나’를 발견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결코 나태, 안일함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기도 생활에 전념하던 수도자들은 나태하지 않고 깨어 있기 위해 끊임없이 화살기도를 바치고 성경 구절을 암송했으며 노동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성녀 데레사 역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안일과 기도는 서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완덕의 길」 4장 2절). 그 사람이 제대로 기도하는지 신앙 안에서 제대로 수덕(修德) 생활을 하는지는 그가 평소에 부지런한지 나태한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속이 주는 즐거움을 적당히 누리며 대충 살아선 제대로 된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헛된 집착에서 벗어날 것


또한 성녀는 현세의 물질적, 영적 보화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마음이 기도에 큰 걸림돌이 된다며 그런 것에 애착하지 말도록 권했습니다. 물론 현세를 살아가며 그런 것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재산, 명예, 사람, 지식 등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것을 우상으로 삼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느님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당연히 기도에도 진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일갈합니다. “명예욕과 재산욕이 있는 한, 아무리 기도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하더라도 절대로 크게 진보하지 못할 것이고, 기도의 진미를 맛보지도 못할 것입니다”(「완덕의 길」 12장 5절).

은행에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이라 할지라도 죽을 때 1원 한 푼 가져갈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발아래 두고 호령하는 최고 권력자라도 임기가 끝나면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뒷방 노인네일 뿐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역시 주님을 향한 여정에서 함께 걷는 벗일 뿐입니다.

인간 아무개가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착각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헛된 것에 두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사랑을 옭아매는 헛된 미망(迷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그분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연장된 기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는 숨 돌릴 여유조차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세계화로 인한 무한경쟁에 노출됨으로써 매일 일터에서 생존을 위한 피나는 전투를 치러야 합니다. 과연 그런 오늘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 성녀 데레사가, 아니 교회가 가르치는 기도가 설 자리가 있을까요?

기도를 가르치는 영성 서적들은, 제대로 된 기도를 하려면 적어도 한 번에 30분에서 1시간은 고요한 곳에 앉아 집중해서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게 과연 현대인의 삶에서 가능할까요? 그럴 수 없다면 기도를 포기해야 합니까? 기도는 주님과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덧없는 우리의 삶을 의미로 바꾸어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방향타입니다. 기도가 없다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무의미하고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참된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진득하게 앉아서 기도할 수 없다면,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가운데 기도하십시오.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며 그 일을 봉헌하고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님을 향한 사랑이자 세상 구원을 위한 수고가 되게 하겠다는 지향으로 그 일을 하십시오. 걸으며 밥을 먹으며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상 모든 것이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여러분은 어디서든 주님과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의 삶에 참된 의미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8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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