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아카데미: 공동선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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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18 ㅣ No.1667

[사회교리 아카데미] 공동선의 원리


모든 이를 살리는 죽음의 길

 

 

'한 농민의 죽음'과 '죽음의 시대'

 

지난 9월 25일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가 서울대병원 병상에서 317일간의 사투 끝에 선종(善終)하였습니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억울한 죽음이지만 굳이 선종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젊은 시절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고 귀향 후 평생 농부로서 생명을 보듬었던 그의 삶의 이력과 이 땅의 죽어가는 농민과 농업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다 살인적인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작년 11월 14일 이후 죽음의 여정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끝날 수도 없고 끝나서도 안 되는 고귀한 삶의 여정이 불의한 이들에 의해 유린되었기에, 임마누엘 형제의 죽음은 악종(惡終)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선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은 물대포를 직사 살수하여 한 농민을 쓰러뜨려 중태에 빠뜨렸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여 이미 농민과 농업 살리기를 포기한 국가 권력은 이렇게 자신의 민낯을 부끄럼 없이 드러냈습니다. 임마누엘 형제의 죽음 이후 벌어진 양상은 더욱 가관입니다. 임마누엘 형제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죽음에 이르렀음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 측은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했고, 검찰과 경찰은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부검영장을 청구했으며, 법원은 ‘조건부’라는 단서를 붙인 해괴한 영장을 발급했습니다. 생명을 돌보아야 할 의료인의 양심은 죽고 정의에 입각한 법치는 사라졌습니다.

 

 

‘살리기 위한 죽음’과 ‘살기 위한 죽임’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벗들을 보듬는 삶의 여정은 곧 십자가를 향한 죽음의 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모든 이를 살리기 위한 죽음의 길’을 걸으라는 간절한 초대입니다. ‘제 살기 위한 죽임의 길’을 포기하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더불어 함께 삶’을 위한 ‘공동선의 원리’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한 교회는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한 공동선의 원리를 줄기차게 가르칩니다. 공동선의 원리는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 일치, 평등에서 나오는 것”(간추린 사회 교리, 164항)입니다. 

 

여기에서 공동선이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사목헌장, 26항)를 가리킵니다. 

 

곧 공동선은 개인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품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닌 사람답게, 사회는 소유나 권력에 따른 지배와 억압, 죽음 같은 경쟁이 아니라, 섬김과 나눔, 일치와 화해로 모든 인간이 살 맛 나는 인간사회답게 만들어 가는 제반 사회생활의 조건들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특별히 국가가 공동선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910항 참조). 오늘 한 농민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의 현실과 국가 권력의 현주소를 직시하게 합니다. 살리기 위한 죽음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간 작은 한 사람과 살기 위한 죽임의 길을 비겁하게 뒤쫓는 큰 무리 가운데 우리는 과연 누구입니까?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16일,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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