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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루아흐,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을 잇는 생명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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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4 ㅣ No.1524

[생태신학으로 성경 읽기] 루아흐,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을 잇는 생명의 고리

 

 

구약성경은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을 전일적이고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관점을 제공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루아흐(ruah)’이다. 바람, 공기, 숨, 영 등 다양한 의미가 히브리어에서는 루아흐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루아흐는 본래 바람 소리나 숨 쉬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다.

 

 

바람 또는 숨

 

루아흐는 우선 바람을 가리킨다(코헬 1,6; 1열왕 18,45; 2열왕 3,17; 시편 148,8; 예레 49,36; 에제 37,9 참조). 이 대기를 움직이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분께서 바람을 곳집에서 끌어내시고(시편 135,7; 참조 예레 10,13) 바람의 무게와 물의 양을 정하신다(욥 28,25-26 참조). 이는 비의 법칙과 뇌성 번개의 길을 정하시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처럼 뇌우를 동반하는 바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팔레스티나처럼 건조한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곡물 생산과 과일 재배는 겨울 우기 때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의 습윤한 대기가 만들어 내는 강우량에 온전히 의존한다. 루아흐가 일차적으로 대기의 흐름이나 바람을 가리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대기를 숨으로 들이마신다. 생명이 루아흐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무엇보다 창세 2,7에 잘 나타난다. “주 하느님께서 흙(아다마)의 먼지(아파르)로 사람(아담)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너샤마 하이임)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시편은 생명의 원리인 루아흐를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적용하여 언급한다(시편 104,29-30 참조). 그러나 하느님께서 당신의 숨결(루아흐)과 입김(너샤마)을 되돌리시면 모든 육체는 죽어가고 사람은 먼지(아파르)로 돌아간다(욥 34,14-15; 참조 시편 146,4). 죽을 때 루아흐는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 돌아간다(코헬 12,7 참조).

 

이처럼 대기의 바람과 동물의 숨을 가리키는 루아흐는 하느님의 존재와 활동을 드러내는 탁월한 장소이다. 루아흐는 하느님에게서 왔고(민수 11,31 참조) 하느님의 신성을 담고 있다. 루아흐는 인간이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거룩하다. 그래서 루아흐는 하느님의 바람 또는 ‘주님의 바람’(호세 13,15)이라고 불린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콧구멍(‘아프’를 성경은 ‘노호’라고 번역함)에서 나오는 루아흐로 물을 모으고(탈출 15,8 참조) 루아흐를 일으키시어 바다가 그들을 덮치게 하셨다(탈출 15,10 참조). 주님의 루아흐가 이스라엘을 바다에서 구원한 것이다.

 

한편 루아흐는 우기에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뇌우의 바람을 가리키기도 한다(시편 107,25 참조). 이런 대기 현상은, 하느님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장해 준다. 그것은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활동을 드러내는 주요한 표지였다.

 

 

하느님의 루아흐

 

창세 1,2에 의하면, 하느님의 루아흐가 심연 위를 감돌고 있었다. 여기서 루아흐는 자연 현상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존재와 활동을 가리키는 신성한 것이다.

 

루아흐가 본시 대기 현상인 바람과 이를 호흡하는 숨결을 의미하였으나, 창세 1,2의 경우처럼 영(spirit)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한다. 흠정역 성경(KJV), 개정 표준역 성경(RSV), 루터 역 성경(LUT), 그리고 한국 천주교 공용 《성경》은 창세 1,2의 하느님의 루아흐를 하느님의 영으로, 새개정 표준역 성경(NRSV)과 예루살렘 성경(FBJ)은 하느님의 바람으로, 불어 공동번역 성경(TOB)은 하느님의 숨결로 번역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뽑은 이들에게 사명과 말씀을 주시고자 루아흐를 보내는 경우에는 영으로 번역한다. 판관(판관 3,10; 6,34; 11,29; 13,25), 메시아(이사 11,2; 61,1), 예언자(이사 42,1; 44,3; 48,16; 59,21; 63,11; 에제 2,2; 3,12.14.24; 8,3; 36,27; 요엘 3,1.2; 미카 3,8; 하까 2,5; 즈카 4,6; 6,8; 7,12)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루아흐는 모두 영으로 번역한다.

 

 

인간의 루아흐

 

루아흐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숨결 외에도 영, 마음, 정신, 기, 용기, 노기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창세 41,8; 45,27; 탈출 6,9; 35,21; 민수 5,14; 11,17.25; 14,24; 16,22; 27,16; 신명 2,30; 34,9; 여호 2,11; 5,1; 판관 8,3; 15,19; 1사무 1,15; 30,12; 1열왕 10,5; 21,5; 이사 19,3; 25,4; 31,3; 33,11; 예레 3,14; 10,14; 에제 3,14; 37,5; 하바 2,19; 즈카 12,1; 시편 31,6; 32,2; 34,19; 76,13; 104,29; 욥 6,4; 7,7; 코헬 7,9 등). 인간은 숨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숨을 바탕으로 영, 마음, 정신, 기, 용기, 노기로 표현되는 현실을 경험한다. 대기로서의 바람과 공기, 이를 호흡하는 숨결의 결과로 이어지는 내적 상태에 이르기까지 루아흐는 매우 통합적인 현실을 지칭한다.

 

이처럼 성경은 루아흐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하느님도 자연의 대기 현상도 그 공기를 마시고 사는 인간 생명과 다른 생명체도 다함께 루아흐를 통해 연결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공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다른 생명체와 전혀 다를 바 없다.

 

루아흐는 무분별한 인간 중심주의를 거부한다. 인간과 동물은 루아흐를 지닌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우리는 하늘 아래 살아 숨 쉬는 모든 살덩어리에 속하기 때문이다(창세 6,17; 7,15 참조). 루아흐에는 영과 육의 경계가 딱히 없다. 살들의 숨이 곧 살들의 영이다(민수 16,22 참조). 루아흐는 육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몸의 생기 그 자체이다. 하느님께서 루아흐를 주고 유지시키시기에 루아흐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루아흐이다. 그래서 창세 6,3은 “사람들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 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침에 마시는 공기는 늘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무가 많은 신학교의 산책로에서 들이마시는 아침 바람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이 신선한 바람을 들숨과 날숨으로 몸에 넣어 통과시키면 밤새 죽어 있던 몸이 눈부시게 깨어난다. 몸이 깨어나면서 시들했던 몸에 생기가 돋고 영도 함께 깨어난다.

 

전문가들은 지구의 대기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경고해 왔다. 조속히 개선되지 않으면 지구 생명체에 미칠 영향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한다. 성경은 공기와 우리의 숨결/영, 그리고 하느님의 숨결/영이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루아흐의 다양한 어법을 통해 보여 준다. 우리가 대기를 맑게 유지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도 우리와 뭇 생명의 루아흐, 그리고 하느님 생명의 루아흐가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서다.

 

* 백운철 신부는 1985년에 사제품을 받고 대방동 성당 보좌를 역임한 뒤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97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3월호(통권 444호), 백운철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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