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2년 제10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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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1-31 ㅣ No.22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2002년 세계 병자의 날 담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요한 10,10)

 

 

1. 교회는 루르드의 성모 발현을 기념하는 2월 11일에 중요한 행사인 세계 병자의 날을 여러 해 동안 함께 거행해 왔습니다. 2002년은 세계 병자의 날 거행 열 돌이 되는 해이고, 그 행사는 인도 남부의 유명한 성모 순례지로서 ‘동양의 루르드’(1988년 7월 31일, 삼종기도)로 알려진 바일란카니의 건강의 성모 순례지에서 거행될 것입니다. 수많은 양떼들이 자신의 절실한 요구를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틀림없이 들어 주시리라 확신하면서, 깊은 신심과 신뢰를 가지고 야자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벵갈만 해변의 이 조용한 순례지를 찾아갑니다. 바일란카니는 그리스도인 순례자들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신자들, 특히 힌두교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서, 그들은 건강의 성모님에게서 고통받는 인류를 돌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인도와 같이 종교심이 깊고 오래된 나라에서, 하느님의 어머니께 바쳐진 이 순례지는 서로 다른 종교의 신자들에게 진정한 만남의 장소이자 종교간 화합과 교류의 뛰어난 모범이 됩니다. 

 

세계 병자의 날은 병고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진실한 기도로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연대를 표현할 것입니다. 그 연대는 우리가 고통의 신비를 깨닫고, 또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에서 그 고통이 차지하는 자리를 인식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병자의 날은 특히 개인과 사회의 위험한 선택이나 인재 때문에 날로 증가하는 인간 고통의 세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들려 주어야 할 대답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연구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의료 시설과 병원, 보건 종사자의 역할과 임무를 재검토하는 이러한 성찰을 통하여 그들에게 영감을 줄 참된 그리스도교 가치들을 강조하고 재확인할 것입니다. 병자의 날 성찰 주제처럼,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요한 10,10) 오신 거룩한 치유자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생명의 문화를 확고히 지키고 임신[受精]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생명 수호에 온전히 투신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고통을 줄이는 새롭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은 정당한 탐구이지만, 그럼에도 고통은 여전히 인간 생활의 근본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고통은 인간 자체만큼이나 심오하고,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구원에 이르는 고통"[Salvifici Doloris], 3항 참조). 의학 연구와 치료는 고통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도, 완전히 없애 주지도 못합니다. 이 심오하고 다양한 형태의 고통을 단순한 육체적 차원을 넘어서는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의 여러 종교들은 언제나 고통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고자 노력해 왔으며, 고통받는 모든 사람에게 동정과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종교적 신념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 제도가 생겨났으며, 여러 종교 역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체계적인 병자 간호가 실시되어 왔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고통에 대한 비그리스도교적 해석에도 타당하고 훌륭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이 위대한 인간의 신비에 대한 교회 자체의 해석은 독특합니다. 고통의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계시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구원에 이르는 고통", 13항). 고통의 의미에 대한 의문에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구원에 이르는 고통", 13항). 그리하여 원죄의 결과인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되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521항 참조). 십자가 위의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악을 이기셨으며 우리에게도 악을 물리칠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이 그분의 고통과 일치될 때 그 고통은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됩니다. 하느님이시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심으로써 그분 안에서 인간의 고통은 구원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이러한 결합을 통하여 고통은 선을 낳고 악을 물리칩니다.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연대를 표시하며 저는 세계 병자의 날 거행이 그들에게 삶에 새로운 의미의 지평을 열어 주는 섭리의 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안에서 고통의 궁극적 의미를 찾도록 배웁니다. 고통과 시련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대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신”(사도 10,38) 예수님의 삶과 활동에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재촉받는 교회는 병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비의 실천이 아니라 배려와 헌신적 봉사로 이어지는 연민과 관심에서 우러나는 행위입니다. 이는 결국 다른 이들, 특히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헌신적인 자기 증여를 필요로 합니다("구원에 이르는 고통", 29항 참조).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복음의 비유는 고통 속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만난 사람이 보여 준 고귀한 마음씨와 반응을 매우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어려움을 살피고자 가던 길을 멈추는 사람은 누구나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3. 여기서 저는 보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세계의 의료 기관 관리자, 원목, 의사, 연구원, 간호사, 약사, 진료 보조원, 자원 봉사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저는 세계 곳곳의 교회를 수없이 방문하면서 다양한 의료 종사자들, 특히 장애인과 말기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 에이즈와 같은 새로운 질병의 확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여 주는 놀라운 증거에 깊이 감동받아 왔습니다(36항). 세계 병자의 날 거행을 통하여 교회는 의료 활동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명합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에서 힘과 영감을 얻어, 병자와 고통받는 사람, 죽어 가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핍니다. 최후 만찬 때 주님께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하신 명령은 빵의 나눔을 일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몸과 흘리신 피를 가리킵니다(루가 22,19-20 참조).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라는 암시입니다. 이러한 자기 증여는 병자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봉사에서 특히 의미 있게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성찬례 안에서 언제나 더욱더 새롭게 아낌없이 내어주라는 자극제와 그 힘의 확실한 원천을 찾을 것입니다. 

 

4. 병자와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갈 때에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졌고, 하느님께서 주신 존엄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아시아 교회", 33항) 인간을 정확하고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따라서 교회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도덕적으로도 언제나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원칙을 주장합니다. 최근의 의학 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 어떠한 단계나 조건에 있든 언제나 귀중한 선물인 생명에 대하여 최대의 책임을 지도록 요구합니다. 우리는 생명에 미칠 수 있는 온갖 폭력과 억압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소유주가 아니라 관리인입니다. …… 인간 생명은 임신 순간부터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포함되며, 생명의 원천이시고 유일한 목적이신 창조주와 영원히 특별한 유대를 맺게 됩니다.”("아시아 교회", 35항).

 

사랑 안에 굳게 뿌리박고 있는 그리스도교 의료 기관들은 약자와 병자를 돌보는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생명의 문화를 선포하고 보장하는 곳인 이 기관들은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병자의 나음이신 성모님께서 육신과 영혼에 상처 입은 모든 사람을 계속해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또한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위하여 전구하여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우리가 기쁜 희망을 안고 안전한 아버지의 집으로 나아가는 동안, 우리의 고통을 당신 아드님의 고통과 일치시키도록 성모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빕니다. 

 

카스텔 간돌포에서,

2001년 8월 6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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