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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외국인과 우리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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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93

외국인과 '우리'로 살아가기

 

 

1. 한국인과 외국인

 

한국은 지난 한일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수백만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와,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치며 열정적으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였다. 붉은 악마들이 지펴 놓은 작은 불씨 속에 민족 전체가 뛰어들어 거대한 활화산으로 타오르는 엄청난 광경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나의 '우리'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이 땅에 터잡고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일체감을 확인하고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보여 주는 이러한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왜 한국인이 이토록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열광적으로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인 스스로도 자신들의 모습에 때때로 어리둥절해 하였다. 

 

우리가 한국인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한국인이 아닌 무수한 외국인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한국인과 외국인을 비교하여 '한국인은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곧바로 '외국인은 저렇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국인과 외국인은 동전의 앞뒤처럼 엮여 있는 까닭에 한국인의 모습을 통해서 외국인을 이해하고, 외국인의 모습을 통해서 한국인을 이해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외국인은 무려 200개가 넘는 나라들에 사는 63억에 가까운 사람들을 말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은 인종, 국적, 문화, 풍속, 지위, 처지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온갖 사람들을 포함하는 외국인을 하나로 싸잡아 어떠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외국인이 친절하다', '외국인은 불친절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소수 외국인에 대한 경험으로 전체 외국인을 규정하는 것으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국인과 외국인을 비교하는 일에 이끌리는 것은 외국인과 친구나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은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인종, 국적, 문화, 풍속, 지위, 처지, 친소 등에 따라 대우를 크게 달리한다. 한국인은 외국인을 친구와 이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적과 남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한국인은 어떤 외국인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고, 어떤 외국인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쌀쌀하다. 우리는 국가 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일한 거스 히딩크에게 보여 준 한국인의 태도가 상황에 따라 극도로 달라진 것을 잘 알고 있다. 히딩크 감독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낼 때에는 그의 이름을 '오대영(5:0)'으로 빗대며 싸늘하게 대하다가, 월드컵에서 16강, 8강을 거쳐 4강까지 올라가게 되자 이루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극진히 대하였다. 이 두 모습 가운데 어느 한 모습만을 진정한 한국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2. 외국인에 대한 태도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한국인과 외국인의 접촉이 잦아지고, 친구와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많아지면서였다. 일부 한국인이 외국인을 무례하게 대하거나, 외국인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일을 하게 되자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따져 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인이 외국인과 접촉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인이 외국으로 나아가 현지인인 외국인들을 접촉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인이 국내에서 현지인으로서 외국인들을 접촉하는 경우이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지자 1990년대 초부터 사업이나 여행을 목적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 나들이를 하였다. 일부 방문객이 상대국 문화를 무시하는 무례한 언행으로 현지인들의 반감을 사는 일이 자주 생겨났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지는 태국, 필리핀, 베트남, 중국 등을 관광하는 경우에 자주 그러한 일이 발생하였다. 특히 연변 지역처럼 해외 동포가 많이 몰려 사는 곳에서는 한국 방문객이 자그마한 무례를 저질러도 동족을 무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최근에는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방문 예절에 대해서도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한국에 들어와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이다. 1990년대 초부터 한국인이 3D 업종에 취업하는 것을 꺼리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메우기 시작하였고, 이로써 외국인 노동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대거 한국으로 몰려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20만을 넘어서면서 일부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시, 차별, 착취하여 물의를 빚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현지인인 한국인과 방문자인 외국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불법 입국, 불법 취업, 부당 노동 등 첨예한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해와 해결이 쉽지 않은 특징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대두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인이 유별나게 외국인을 차별하는 민족은 아니다. 현지인이 낯선 외국인에게 얼마간 텃세를 부리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일이다. 현지인이 외국인을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언제나 시간과 노력이 따른다. 일찍부터 문호를 개방하여 외국인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고 하는 유럽 같은 곳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끊임없이 문제 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유럽 여러 나라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를 하나로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크게 보면 우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인이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하는 일을 흔히 보는 것은 단순한 치사나 꾸밈이 아니다. 한국인은 외국인을 손님으로 받아들여 친구나 이웃으로 생각하면 대단한 호의를 베푼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은 비교적 문화적 편견이 적은 민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종교적 다양성을 바탕에 깔고 있어 각양각색의 종교를 갖고 있는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유리하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서 종교 차이로 문화적 갈등이 심하게 빚어지는 일들을 많이 보아 왔다. 또한 한국인은 일찍부터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인 편이었다. 한국 문화를 살찌우기 위해서는 선진의 외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한국인은 개항 이후로 서구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외래 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매우 높다.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무례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외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외국인에 대해서만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그러하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인의 무례하고 부당한 태도를 문제 삼을 때에도 한국인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인 노동자라 할지라도 힘을 갖지 못한 경우에는 무례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전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우리' 만들기

 

흔히 한국인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민족으로 불린다. 지난 6월 25일 한국과 독일의 축구 경기가 벌어지던 날, 7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온통 붉은 물결을 이룬 것은 좋은 사례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인은 '나'라는 하나의 개별자로서 살아가기보다는 '우리'라는 전체에 속하는 낱낱의 부분자로서 살아간다. 한국인은 '나'와 '너'의 만남보다 '나'와 '너'가 포함된 '우리'로서의 만남을 더욱 좋아한다. 이에 따라 한국인은 '나'의 근거가 되는 '우리'를 매우 중시하여 '우리'와 '남'을 엄격히 구분한다. 한국인이 '우리'에 대해서는 친구와 이웃으로 여겨 대단한 온정을 베풀지만, '남'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다. 

 

한국인에게 '우리'는 경계가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확대와 축소가 가능한 유동적인 집단이다. 한국인은 동일시를 통해서 '나'를 '우리'로 확장하거나 '우리'를 '나'로 축소하는 것이 자유롭다. 사람들이 '나의 마누라'를 '우리 마누라'라고 부르고, '나의 남편'을 '우리 남편'으로 부르는 것은 '나'라는 개체와 '우리'라는 집단(가정)이 동일시되는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 결혼하기 이전의 애인도 '나의 애인'으로 부르지 않고 '우리 애인'으로 부른다. 반면에 한국인은 '나'와 동일시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우리들'이라고 하여 '우리'와 구분한다. 사람들은 '나의 마누라'와 '나의 애인'을 '우리 마누라'와 '우리 애인'이라고 말하지만 절대로 '우리들 마누라'와 '우리들 애인'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와 '우리들'이 구분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우리'로 확대되고 '우리'가 '나'로 축소되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인이 동일시를 통해 '나'를 확장하고 축소하는 것은 가정과 같은 일차 집단의 범위를 벗어나 학교, 회사, 국가와 같은 이차 집단으로 확대된다. 사장과 사원의 관계는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비슷하고,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형과 아우의 관계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서 이차 집단을 일차 집단처럼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면 한국인에게 볼 수 있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전통은 국가와 학교라는 이차 집단을 가정이라는 일차 집단으로 환원한 것이다. 한국인이 임금과 스승을 아버지처럼 여기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이차 집단은 존재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님'으로 부르는 것은 통치자들이 '우리'에 기초한 군사부일체의 전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이다. 

 

동일시를 통한 '나'의 확대와 축소는 한국인의 소유 의식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나'와 '너'가 모여 하나의 '우리'가 되면 '나의 것'과 '너의 것'의 구별이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우리 것'으로 통합된다. 한 예로 부부는 생활과 자녀를 통해서 하나인 '우리'를 형성하는 까닭에 '나의 것'과 '너의 것'의 구별이 없어진다. 남과 남이 결혼을 통해서 부부를 이룸으로써 모든 것을 하나의 '우리'로 통합하는 것을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말한다. 이러한 것은 부부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될 수 있는 모든 집단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우리' 속에서 '나의 것'과 '너의 것'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너'의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라는 집단 속에 편입시켜 버리면 그때부터 '너'의 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있고, '나'의 것이 '너'의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음식점이나 술집의 계산대 앞에서 서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다투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들이 다투는 이유는 지불해야 할 돈에 관한 한 '너'의 돈과 '나'의 돈의 구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불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 '나'와 '너'가 서로 자기의 책임을 다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다툼이 벌어지게 된다.

 

 

4. 정(情)의 세계

 

한국인은 '나'와 '너'가 만남을 통해 하나의 '우리'를 만드는 관계의 끈을 정(情)이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정의 끈을 통해서 '나'와 '너'가 하나의 '우리'가 되어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이런 까닭에 한국인은 싫음과 좋음을 떠나, 정 때문에 '우리'로 더불어 살아간다고 말한다. 따라서 정의 끈이 형성되지 않으면 '우리'의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기 어렵다. 이러한 '우리'의 세계는 '나'와 '너'의 성격에 따라 천지만물이 모두 포함될 수도 있고, 인간과 자연이 포함될 수도 있고, 가족, 민족, 부자, 군신, 부부, 형제, 붕우, 사제 등이 포함될 수도 있다. 

 

정의 관계가 전제되는 '우리'의 세계는 '너'와 '내'가 만남으로써 구체화된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서 정을 들여야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을 예로부터 인연이라고 말해 왔다. 인연에 따른 '나'와 '너'의 만남은 특히 불교나 무속에서 강조되어 왔다. 사람은 정을 주고받는 가운데 어려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간다. 

 

정의 내용은 '우리' 속에 있는 '나'와 '너'가 정을 주고받으며 이룩한 '우리'로서의 정서적 공감대를 말한다. 이러한 공감대는 '나'와 '너'가 '우리' 속에서 정서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는 공집합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정이란 '우리'라는 형식 속에 들어 있는 실질적인 알맹이를 말한다. 정이 들어간다는 것은 정서적 공감대의 영역이 형성되어 가는 것을 말하고, 정이 깊어 간다는 것은 이러한 공감대의 영역이 확대되어 간다는 것을 말한다. '나'와 '너'가 구성한 정서적 공감대의 영역이 '우리'의 영역과 완전히 일치하게 되면 그것이 곧 일심동체(一心同體), 물아일체(物我一體), 대동(大同) 등의 세계이다.

 

'우리'가 형성한 정서적 공감대는 구체적으로 사랑과 미움 등에 관한 일치된 정서적 반응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감대는 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정서적 반응들, 곧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정서적 공감대 속에는 좋은 것과 함께 좋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고운정과 미운정은 이러한 정서적 공감대 속에 고운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음을 말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정서적 공감대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기쁨과 즐거움만 제공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랑과 미움, 좋아함과 싫어함, 친함과 소원함 등은 정으로 표현된 정서의 구체적 내용이다. 따라서 정이라는 관계의 끈이 사랑과 미움이라는 구체적 감정을 앞선다. 정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한 구체적 감정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과 미움이라는 구체적 감정은 정을 들이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이 깊어지면 사랑과 미움이라는 일상적 감정을 초월할 수 있다. 흔히 40-50대의 부부는 정 때문에 사는 것이지 사랑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사랑과 미움이 정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나'와 '너'가 개별자로서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가능할 때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다. 개별자들은 사랑하면 결합하고 미워하면 헤어진다. 그러나 전체의 일부인 '부분자'(部分者)들은 정으로 묶여 있어 미워한다고 헤어지고, 사랑한다고 결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부분자들 사이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모순이 벌어지게 된다. 

 

한국인에게 정의 끈이 끊어지는 것은 헤어짐을 의미하는 동시에 '남'과 '남'의 관계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어지면 남남'이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한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인은 부분자로서의 역할 관계가 설정되지 않거나 해소된 사람, 곧 '남'에 대해서는 인정을 느낄 수도 없고, 또한 사랑과 미움의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정 관계로 이어진 끈은 완전한 청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지면 쉽게 복원된다. 이런 까닭에 한국인은 결혼 전의 애인을 만나는 것을 거북해 하고, 이혼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로서 정이 되살아나 과거의 관계가 되살아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 외국인 노동자 문제

 

한국인은 오랫동안 외국인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채, 고립적으로 살아왔다. 개항 이전에 조선 왕조는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외국인이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는 때때로 오가는 외교 사절에 국한되었다. 이 때문에 일반 백성들이 외국인을 친구나 이웃으로 만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일반 백성들이 외국인을 대량으로 접촉한 것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대규모 전쟁을 통해서였다. 

 

개항 이후에도 한국인은 외국인을 친구나 이웃으로 만나기보다는 침략자로 만나는 일이 많았다. 한국인은 제국주의 침략을 일삼는 열강들에게 시달리다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어쩔 수 없이 일본인과 더불어 살아야 했다. 한국인은 침략자인 일본인과 함께 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또한 한국인은 해방이 되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한 가운데 외부 세력에 의해 국토가 분단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고, 곧이어 한국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 다양한 외국 군인들과 접촉하며 생존을 구걸해야 했다. 휴전 이후에 한국인은 다수의 미군들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우월적 지위에 있는 미군과 친구나 이웃으로 함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인이 외국인을 진정으로 협조자나 동반자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 대외 무역과 대외 진출로 경제 발전을 추진하면서였다. 한국인은 외화를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지구촌 어디에든지 달려가 외국인을 친구와 이웃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로써 다수의 사업가와 노동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해외로 진출하였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다수의 국민들이 이민을 떠났다. 그러다가 1990년대로 접어들어 한국의 경제 위상이 크게 높아지자, 지금까지의 상황이 역전되어 외국에서 대량의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날 국내에서 발생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외국인 중에서도 주로 단순 노동에 종사하며 저임금을 받는 특수한 신분의 사람들에 관한 문제이다. 외국인 취업자 가운데서도 고급 두뇌로서 경영 분석, 고급 기술, 외국어 교육 등에 종사하며 고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전혀 차별이 문제 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인을 친구와 이웃으로 삼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현재 문제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단순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 조건과 생활 환경, 인종 그리고 문화적 편견 등은 물론이고 불법 입국, 불법 취업과 같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따라서 각각의 원인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한국인은 외세에 시달려 온 경험 때문에 외국인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한국인은 언제나 부강한 나라와 어깨를 겨루어,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강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 대해서는 같아지고 싶은 심정에서 쉽게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 대해서는 달라야 한다는 심정에서 쉽게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인은 사정이 좋지 못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례한 언행으로 차별할 수도 있다. 

 

둘째,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이 3D 업종을 기피하는 것은 임금과 환경이 열악한 탓도 있지만, 단순 노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단순 노동에 대한 편견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노는 한이 있어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인이 제도 교육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고학력자로서 정신 노동을 하는 직종에 종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은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례한 언행으로 무시할 수도 있다. 

 

셋째, 한국인은 익숙하지 않은 문화나 종족에 대해 거리감을 갖는다. 이것은 다른 민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은 익숙해져야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남'으로 남겨 둔다. 한국인은 일찍부터 서양을 배우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백인 중심의 서구 문화에는 매우 익숙하여 서구인을 쉽게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제까지 접촉이 적었던 비서구 문화에 대해서는 많은 거리감을 갖고 있어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비서구 문화권에서 온 노동자들을 꺼려할 수도 있다. 

 

이에 더하여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는 불법 입국, 불법 체류, 불법 취업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까닭에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로 받아들여 친구와 이웃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단순히 외국인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행복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친구와 이웃이 어려우면 나 또한 편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조국에 우리의 기업인이나 사업가들이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주는 대로 받는다"라는 속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수백만이 넘는 동포들이 해외에서 다른 민족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내 형제의 일과 다름없다. 그러니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를 정으로 끌어안고 사랑으로 감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끝으로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갖고서 한국인 전체를 몰아서 '한국인은 차별적이다', '한국인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나라이고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와 더불어 생활한 기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 현재 한국인은 빠른 속도로 외국인 노동자들과 친구와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다. 또한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라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종교 단체나 시민 단체들이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앞장서고 있으며, 정부 또한 문제 해결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어느 한 쪽을 두둔하기 어려울 뿐이다.

 

[사목, 2002년 8월호, 최봉영(한국항공대학교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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