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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신자유주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노동자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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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96

신자유주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노동자의 인권

 

 

1.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등장시기에 대하여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를 보인다. 시기에 대하여는 대체로 일치하지 않지만, 이 사상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시장경제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경제적 관계에 최대한 종속시킴으로써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려고 하는 정치적 이념이자 운동"1)이라는 면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듯하다. 우리에게는 신자유주의가 IMF 관리체제 아래서 자주 듣게 된 자유화, 탈규제, 민영화, 사유화, 유연화, 개방화 등의 구호로 더 익숙하다. 

 

이 기간에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하나의 사상에 그치지 않고 경제, 노동, 정치,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경험하였다.2) 

 

이 글에서는 이런 신자유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형태로 경험되었는지를 노동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가톨릭 사회교리의 관점에서 숙고해 보고자 한다. 

 

 

2. 신자유주의에 관심을 갖는 이유

 

1970년대 중반에 세계 자본주의는 역사상 세 번째 위기를 맞는다. 이 구조 위기의 원인을 경제학자들은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로 진단한다. 그리고 이 결과는 케인즈주의적 정책의 유효성 상실로 이어져, 친(親)콘체른적 탈(脫)조절 정책과 반노동자 정책, 그리고 생산과 시장의 유연화 정책 등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이 발전을 추구하다 오히려 위기를 경험한 중남미 국가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고,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도 거의 같은 수준의 위기로 경험되었으며, 현재도 이들 나라들이 이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 제3세계 국가들은 위기 탈출을 위해 선진국 자본으로 구성된 IMF와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았다. 국제금융기구들은 이들 국가들을 지원하는 대가로 통화주의적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개방화, 자유화, 민영화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충격요법을 실시하라는 진단을 내렸고, 사실상 강제로 이 요구를 관철시켰다. 세계시장에 적응하거나 거기서 생존한다는 명목으로 해당 국가들은 이들의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억압과 배제를 심화시켜 왔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신자유주의를 살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신자유주의 전략이 한국에 미친 영향 

 

IMF 관리체제에서 우리나라는 국제 금융기구들이 요구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SAP)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외관상으로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실행이 조기에 위기 탈출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면에서 보면 가히 파괴적인 영향력이라 할 만큼의 손실을 초래하였다. 특히 노동에 미친 영향은 매우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이 기간에 사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은 감시 대상이 되었고, 알짜 기업들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경영권이 넘어갔으며, 이익을 남기고 있는 국영기업들은 민영화 압력을 받고 있다. 각 기업에서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하였고, 부실기업들도 연쇄 파산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대도시 도심의 지하도로 몰려들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이전 시대에 거의 볼 수 없었던 노숙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회안전망이라는 말도 이때에야 비로소 듣게 되었고, 실제 이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가정의 해체, 생계비관형 자살이 늘어나는 것을 보아왔다. 

 

한국의 유수한 자동차 회사들 가운데 두 곳이 자신의 회사 이름에 외국회사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머지않아 자국 회사 이름이 떼일 처지에 놓여있다. 금융 자본 자유화의 결과 수많은 초국적 기업의 금융, 투자, 보험회사들이 진출하여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고, 낙후된 경영기법을 가진 국내 기업들은 부실과 적자로 인수 합병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결과는 소비주의의 확장에서 잘 드러난다. 신용카드 발급의 남발, 능력 이상의 소비로 개인 파산자가 수백만 명이고, 카드 빚을 갚으려고 강도, 납치, 살인 행각을 벌이는 모습이 일상처럼 된 것을 보면 가히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폭력적인 수준이다. 

 

노동계에서는 경제자유구역법, '지방과학기술진흥법안'도 사실상 경제 특구와 같이 인권 침해를 불러올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전 국토의 경제자유구역화를 통해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하나같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규제 완화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투자유치 정책, 동북아 중심 국가 논리 모두 국가가 기업가가 되어 자본유치에 내몰린 형국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론에 입각한 정책들이 이행된 결과 우리나라는 돈으로 쌓아가는 초고층 아파트와, 가난한 이들의 주거지인 움집(반지하)과 노숙인이 기거하는 대도시의 지하도로 양극화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50층이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빌딩들의 건설 붐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어느 건물은 한 가구의 집값이 30억이 넘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름도 궁전이고, 입주자들은 수입이 한국의 상위 0.5%에서 1%에 드는 이들로 최고 엘리트 기업의 엄정한 선별기준을 통과한 우리 시대의 귀족들이라고 한다. 집 값이 이 정도이니 이들의 재산은 얼마나 될 것인가? 

 

이에 반해 한쪽에선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고 있다. 이들의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생계가 어려워 목숨을 포기하는 이들이 절반을 차지한다. 불과 얼마 전 가장이 가출하여 생계가 막연한 어느 부인이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던져 죽이고 자기도 투신하여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러고 보니 IMF 관리체제 이후에 우리나라에선 이런 죽음이 끊이질 않았다. 노숙인들도 이전에는 낯선 말이었으나 이제 대도시에서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넘을 수 없는 장벽과 건널 수 없는 차별과 불평등의 계곡이 더 깊고 넓어지는 것이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4.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자의 인권 

 

앞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특히 노동자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지구적 표준(global standard) 전략이 미치는 영향이다. 과거 국내에서만 최고를 추구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유수한 세계기업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은 자국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지만, 반대로 기반이 약할 경우 경쟁에 패배하고 파산 위험에 직면하게 만든다. 

 

또한 WTO 뉴라운드 편입, OECD 가입, 각종 투자 및 자유무역협정으로 세계 표준인 지구 제일의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유연성의 증가를 경험하게 된다. 당연히 이 정책은 노동자들의 기본권리들을 약화시킨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러한 자유 시장경제 영역이 확대될수록 국가가 부유해진다고 국민을 속이고,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을 국가경쟁력의 강화로 정당화하고 있다. 

 

두 번째로, 정보통신혁명의 기술적 성과도 노동현장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CALS(Commerce At Light Speed), 로봇공학, CAM(Computer Aided Manufacturing)으로 대변되는 생산현장의 자동화(FA)가 노동력에 의존하던 기존 생산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노동자 해고, 신규 고용의 축소를 통해 노동자의 노동권을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때 노동자가 사라지는 이른바 '노동의 종말'을 예고한 바도 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하튼 기술혁신과 노동자가 모순관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생산현장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을 놓고 노사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전자감시(electronic surveillance)를 일상화하여 노동강도를 높이고, 불만세력을 통제하려는 이 시도 역시 노동자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세 번째로,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정부, 언론, 기업주들은 노동운동을 여전히 사회주의 경향으로 간주하고 이를 적대시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를 정당화하고 있다. 또는 일부 노조들을 노동귀족으로 몰아감으로써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지는 것이나 교섭권이 높아지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은 성정모의 말대로 "인간은 더 이상 역사적(의식적) 주된 주체가 아니고 대신에 시장경제가 진정한 주체로, 슈퍼맨으로 등장"3)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마지막은 유연적 축적(flexible accumulation) 논리로서 핵심 인원을 조직의 중심에 두면서도 불황에 대비하여 부차적인 기능은 일용직이나 임시직, 부분 고용이나 하청 노동 등으로 대체하여 조직을 경량화하는 시도가 낳는 문제이다. 

 

나아가 "유연적 축적은 자본 순환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시장으로 변형시키고 국가의 벽을 허물어 자본의 흐름을 지구화한다. 이에 따라 노동력은 지구적 차원에서 핵심적 노동력과 주변부 노동력으로 분화되고, 핵심 노동력으로 분류되는 층은 '여피'의 형태로 경제적, 문화적 풍요를 누리는 반면, 주변부 노동력들은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골화된 착취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자본은 더욱 순응적인 노동력을 찾아 지구를 떠돌게 된다."4) 

 

특히 경제특구, 자유화 지역은 이 순응적인 노동력 확보와 연결되는 것이기에 자국 노동자들의 권한 축소, 노동자 간 빈부격차,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하락, 비정규직의 증가에 따른 불완전 고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결국 세계시장에 적응한다는 명목으로 추구하는 정책들이 결과적으로는 자본의 무제한적인 이윤추구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비극적 시도가 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5. 교회의 가르침

 

교회가 신자유주의를 직접 비판하는 가르침은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를 비판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이른바 인간 존엄성의 원리는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교회의 가르침의 근거가 될 만한 가르침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영향력이 1980년대에 제3세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므로, 이들 지역의 가톨릭 교회 특히 중남미 지역 대륙 주교회의의 가르침과 해방신학 이후의 가톨릭계 경제신학은 사회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개별 국가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면에 비추어볼 때, 국제 경제질서에 대하여 분명한 윤리적 지침을 제공하고 있는 「민족들의 발전」(1967년)과 이 회칙 반포 20주년을 기념하는 「사회적 관심」(1987년)은 신자유주의를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한 식별의 근거를 제공한다. 

 

1999년에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세계무역기구 밀레니엄 라운드에 낸 제안서인 "무역과 개발과 빈곤퇴치"5)도 신자유주의를 사회교리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여기서는 노동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은 반복하지 않고, 지구화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 국제경제질서에 대한 가르침만을 검토하고자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선진 북반구와 개발 도상의 남반구 사이의 격차가 항속적일뿐더러 흔히는 갈수록 확대일로에 있다. 이러한 지리학적인 용어는 어디까지나 지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실상 부유와 빈곤의 경계는 선진사회든 개발도상의 사회든 동일한 사회 속에서도 엄연히 가로지르고 있는 현상"(14항)이라고 갈파하였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돌파하려고 취하는 선진국의 조치들이 결과적으로는 개발도상국가들에게 폭력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이기에 이러한 구조적 메커니즘의 죄성을 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메커니즘은 "인간들에 의해서 조종됨에도 흔히는 거의 자율적으로 움직이다시피 하며 소수의 부를 강화하고 나머지의 빈곤을 아울러 악화시킨다. 이 메커니즘은 직접 간접으로 선진국들에 의하여 조종이 되는 것으로 그 기능 자체가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도모한다. 그러나 결국은 저개발 국가들의 경제를 질식시키거나 좌우하기에 이른다"(16항). 

 

이미 「민족들의 발전」에서부터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메커니즘을 고발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현상을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본다면 "만인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분배가 잘못되어 있는 불의"(「사회적 관심」, 28항)라고 할 수 있다. 

 

회칙 「백주년」을 통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자유시장 논리에 대하여도 "국제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개별적 국가들에게 자유시장은 재원을 배치하고 다행하게도 욕구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지불능력이 있는, 구매력을 가진 욕구에 대해서만 그리고 시장에 판매될 수 있는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재원에 대해서만 그렇다."(34항)고 함으로써 이미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였다. 

 

이처럼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보면 신자유주의는 선진 북반구와 개발도상의 남반구 사이에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빈부격차를 영속화하려는 시도 가운데 한 가지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지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가난한 이들의 불평등을 지속시키고, 이들의 존엄성을 위협한다는 면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상으로 보아야 한다. 

 

밀레니엄 라운드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적 현상에 대하여 더 분명한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안서 형식이기는 하지만 이 문서는 사회교리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 제안서에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는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모든 나라가 인간 존엄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한다. 기존 사회교리의 노선에 따라 국제노동기구(ILO) 제86차 정기총회 선언의 기조를 지지하면서 이를 권고의 방향으로 제시한다. 그 한 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기술 이전과 지적 소유권 영역에서 제기되는 최근의 문제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린다. "자유 무역 자체가 광범위한 발전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그러한 발전은 오직 개발도상국들의 인력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장기간의 정치적 사회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고 폭넓고 통합적인 인간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개발전략에 바탕을 둔 무역협상은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다"(5항). 

 

이 판단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세계 무역시장 안에서 조건의 불평등이 결국 남반구, 이른바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 제안에는 「민족들의 발전」에서 「백주년」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교회의 사회윤리적 가르침이 잘 드러나 있다. 자유무역, 시장개방이라는 것이 개발도상국가들에게 미칠 파괴적 영향력을 우려하고, 동시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과학발전에 대하여도 이 문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대희년 부채탕감운동 파견단에게 한 연설, 곧 "과학 발전의 열매가 모든 인간 공동체를 위하여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과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심화하거나 심지어는 영국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널리 이용되는 일이 잦다."를 인용하여 비판하고 있다. 이때 동원한 사회교리는 이른바 사유재산의 사회적 저당권이다. 

 

지적 소유권과 지식에도 이 사회적 저당권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면에 서구 지배의 영속화 논리가 숨어있고, 이 영속화의 수단으로 정보와 지식, 과학기술이 이용되는 것을 감안할 때, 이 가르침은 적절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저당권과 같은 윤리적 요청이 선진국에 수용될 때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에 대하여도 교회의 가르침은 명백하다. 세계시장이 이미 불공정한 경쟁상태에 있으므로, 시장개발, 무역자유화, 관세철폐, 독점 금지법 시행에 대한 낮은 의지 등은 결국 약소국들의 목줄을 죄는 조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역시 전통적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외에도 제안서는 국제관계에서 쟁점이 되는 주요 사안들에 대하여 명백한 윤리적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르침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는 국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6. 교회의 과제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자유주의는 "여러 사회적 관계들을 '시장경제적 관계'의 우위 속에서 재구성하려는 논리이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구호들은 역사적 투쟁을 통해 형성된 피지배계급의 '권리'들과 빈자의 생존권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배제적이고 반민중적인 논리"6)의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요소들을 적지 않게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자본우위의 사상과 정책기조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왔던 노동의 우위, 이른바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흐름과 충돌한다. 

 

최근 언론과 정부가 노조의 행동에 대해 보이는 입장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불온한 시도이고,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논리인데 신자유주의 사상의 본질과 이 사상이 기능하는 맥락을 보면 편파적이다. 더욱이 교회가 일관되게 비판해 왔던 비윤리적 요소들은 간과한 채 노동자와 노조에 대해서만 일방으로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분명하다. 가장 어울리는 일은 신자유주의가 갖는 비윤리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곧 인간의 권리, 특히 노동자와 배제되는 계층의 권리를 제약하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한 방향이다. 여기서 사회교리는 매우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세 정권에 걸쳐서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특히 IMF 관리체제 아래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연해진 노동시장은 노동자의 권리를 현저하게 약화시켜 왔다. 노동자의 주변화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온 것이다. 이런 시기에 교회 사업장에서 일어난 노사분규로 말미암아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것은 유감이다. 

 

현재의 노동운동이 교회가 과거에 옹호했던 방식이 아니라는 시각도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어 이 또한 걱정스럽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대한 시각이 비판적으로 변하는 현상은 현 시기에 교회가 취해야 할 선교사목 정책방향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외적인 노력도 중요하겠으나 교회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시급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국제화로 말미암은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의 증가는 기존 노동자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이미 중간층화된 가톨릭 교회와 거리를 더 크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하여는 국력에 상응하는 교회의 역할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적어도 노동사목의 외연을 아시아 지역까지 확대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시대의 교회의 진정성(authenticity)을 시험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리라는 것이 명확하므로 교회는 노동자와 주변화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교회에 제기되는 이러한 도전을 감당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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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 연대,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문화과학사, 1998년, 61-62면.

2) IMF 관리체제 이전부터 문민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진해 왔다. IMF 관리체제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파괴적 영향력을 집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에 흔히들 신자유주의가 1990년대 말에 파생한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지, 역사가 그리 짧은 것은 아니다. 

3) 성정모, 「인정 없는 경제와 하느님」, 가톨릭 출판사, 1995년, 58면. 

4)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 연대, 앞의 책, 219면. 

5)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21호(1999년). 

6)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 연대, 앞의 책, 211면.

 

[사목, 2003년 9월호, 박문수(가톨릭 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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