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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비정규 노동자 문제의 원인과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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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98

비정규 노동자 문제의 원인과 대책

 

 

최근 하루에도 몇 건씩 보도되는 자살사건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펼쳐들 때마다 끔찍한 생각이 앞선다. 생활고를 못 이겨 자녀들까지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부모, 눈덩이처럼 커진 빚 때문에 고민하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하는 가장 ……. 

 

빈곤이 빈곤을 양산하는 우리의 사회구조는 '2만 달러 시대'라는 노무현 정권의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심각하다. 무분별한 카드 사용이나 대책 없는 주식투자와 같이 '개인'의 책임 모두를 무조건 '사회화'할 의도는 없지만, 벼랑 끝으로 몰린 사람들을 받아줄 사회안전망이 구멍 난 상황에서 불가피한 최후의 선택으로 행하는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부르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타살'에 몰린 사람들 가운데에는 비정규 노동자들도 많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이른바 특수고용직이라 불리는 화물운송 노동자 13명이 '다단계 알선과 낮은 운임'의 굴레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노동현장인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울산에 살던 건설노동자 고(故) 이종만 씨(42세)는 지난 1월 작업 도중 허리를 다쳤는데, 공사금액이 2천만 원이 안 된다는 이유로 산업재해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자 혼자서 치료비와 수술비, 가족의 생활비와 양육비 등을 감당하다가 5월 29일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또한 지난 2월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지하철 이용 승객뿐 아니라 용역업체 소속으로 청소 일을 하던 여성노동자 3명도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죽음보다 더 서글픈 것은 비정규직인 그들에 대한 차별이다. 대구지하철공사는 이들이 공사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사가 마련한 합동분향소에 고인들의 영정조차 설치하지 않았고, 보상 대상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들 가족에게 주어진 것은 용역업체에서 준 '위로금 50만 원'뿐이었다.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비정규 노동자 

 

빈곤과 소외,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자는 우리나라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현재 전체 임금 노동자 1,363만 명 가운데 정규직은 599만 2천 명으로 43.4%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은 770만 8천 명으로 56.6%에 달한다.

 

임금 노동자 10명 가운데 6명 가량이 비정규직이란 말인데 '그렇게 많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비정규직이 존재하지 않는 직업군은 거의 없을 정도다.

 

"진로문제 때문에 교수님과 상담하고 싶어서 수업이 끝난 뒤 잠시 커피 한잔 마시자고 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던 교수님은 다른 학교에서 곧바로 수업이 있다며 바삐 걸어가신다. 약간 허탈해하며 녹음 짙은 교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지런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아까 무심코 담배꽁초를 버린 일이 생각나 괜히 미안해진다. 수업이 없는 틈을 타서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아침 겸 점심으로 햄버거와 콜라를 사 먹었다. 그러고 나서 아직 등록금을 내지 못한 관계로 은행에 들러 대출을 받았다. 상냥한 직원이 '이 돈 갚으려면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해 누워계신 아버지 대신 보험설계사를 하며 가계를 꾸려가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잊지 않고 매달 용돈을 보내주시는 어머니께 고맙다는 편지를 썼다. 날마다 이메일로만 의사소통을 하다가 오랜만에 볼펜을 꾹꾹 누르며 편지를 쓰니 어색하기도 하다. 빨간 우체통에 쏙 집어넣고 우체부 아저씨가 어서 배달해 주기를 바라며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가상으로 작성해 본 어느 학생의 일기다. 이날 학생이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우선 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바삐 다른 학교로 가서 수업을 해야 하는 이 교수는 시간강사로 보통 각 학교와 1학기 또는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임시직이다. 2001년 민주당 설훈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교수 가운데 전임교수는 43,214명에 불과하고 비(非)전임교수 10,463명, 시간강사 52,620명으로 비정규직 교수가 정규직보다 2만 명 정도 더 많다. 이들은 학교 안에 번듯한 연구실 하나 갖지 못하고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떠돌며 수업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신세를 비꼬아 비정규직 교수들은 흔히 자신들을 '보따리 장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진로상담을 해줄 시간이 거의 없다.

 

교정이나 각 건물에서 청소를 하거나 전기, 수도, 보일러 같은 시설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다.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지정해 준 학교나 건물 등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근로시간은 대개 하루 12시간이지만 최저임금 수준인 월 52-55만 원, 많아야 70-8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등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이다.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인사하고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파트타임이나 계약직 신분으로, 매상이 줄거나 지배인 눈에 들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신세다.

 

은행에서도 비정규 노동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은행에서 만나는 직원들 가운데 적어도 30% 이상은 비정규직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강제합병, 부실기업 퇴출 등 금융권 구조조정으로 은행 수나 점포 수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정규직이었던 직원을 내쫓고 그 자리를 50-60%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계약직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생 어머니의 직업인 보험설계사 역시 비정규직이다. 보험설계사는 학습지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자신의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아가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회사의 업무지시를 받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면서도 형식상 '개인사업자'라는 이유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요즈음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우체국을 통해서 편지를 보내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카드 대금서나 각종 홍보물, 서류 등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들은 흔히 만날 수 있다. 집배원들은 정보통신부 소속 공무원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상시위탁 집배원들도 많다. 이들 역시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는데 정규직에 비해 임금은 낮고, 여차하면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할 수 있다.

 

병원에서도 흔히 비정규직을 만날 수 있다. 엑스레이를 찍는 방사선과 직원이나 물리치료사 같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간호사들 중에도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계약직들이 있다. 심지어 제주도의 어느 병원은 개업 당시부터 계약직으로만 간호사를 채용한다고 한다. '계약해지'라는 무기로 순종하는 직원을 길러내고 노동조합 활동까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공장에도 비정규직들이 많다. 라인 작업을 하는 자동차 공장의 경우, 한 라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정규직이 한 작업을 마치면 그 뒤를 이어 비정규직이 다음 작업을 하고, 그 뒤에는 또 정규직이 바통을 이어받는 방식이다. 

 

이처럼 비정규 노동은 정규 노동이 아닌 고용형태를 말한다. 정규 노동의 기본 특성은, 첫째, 기간을 정하지 않은 상용(permanent) 고용으로 노동법상의 해고 제한 등을 통한 고용관계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둘째, 노동시간은 전일제(full-time)이며, 셋째, 단일한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을 한 가지 이상 충족하지 못한 경우, 곧 기간을 정한 임시적인 고용계약을 체결하고(임시직, 계약직, 일용직, 촉탁 등), 정규직보다 노동시간이 짧거나(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고용주가 아닌 다른 사용자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간접고용(파견, 용역, 도급, 사내 하청 등)이나 형식상 사용자와 노동자의 중간형태이면서 실제로는 종속적인 고용관계에 있는 특수고용형태(레미콘 지입차주,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등은 모두 비정규직에 포함된다. 

 

 

비정규 노동자의 증가 원인과 실태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비정규직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하지만 1991년 44.8%, 1993년 41.2%, 1995년 41.9%, 1997년 45.9% 등 1990년 초반부터 비정규직 규모는 40%대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1960-1970년대에도 비정규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회대학교 신원철 교수가 쓴 "1960, 70년대 임시공 제도의 실태와 노동운동"(월간 「비정규 노동」 22호, 2003. 6.)에 따르면, 1974년 8월 기준으로 한국노총 전체 조합원 641,561명 가운데 약 9.7%인 6만 2천여 명이 임시직 노동자였다. 그리고 이들의 임금수준은 미숙련공 평균임금보다 낮고 숙련공 임금의 약 3분의 1정도였다. 

 

한국노총 위원장을 했던 박인상 민주당 국회의원도 1960년대 중 후반 금속노조 조선공사지부 활동을 할 때 임시공 신분이었다. 박 의원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시 임시공들은 1년을 조금 남겨두고 짤렸다. 그리고 이듬해 신정이 지난 뒤 일주일 가량 있다가 다시 임시공으로 계약이 된다. 3-5년 가량 계속 그런 식으로 임시공인 사람도 있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부존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후발 자본주의화를 강행하고자 국가주도형 개발 모델에 따른 수출주도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고 운영할 자본과 기술, 자원 역량 등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기본적으로 요소가격의 저렴화에 따른 경쟁을 추구해야 했다. 이는 곧 노동자의 저임금, 나아가 배제와 억압을 불러왔다. 그러나 요소가격 저렴화에 기반한 가격경쟁력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이 급속히 산업화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제외한 경쟁우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생산력 기반은 단지 중위 수준에 불과한 상태였다. 

 

그런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의 고용은 취약한 자본주의의 기제를 보완하는 자본의 전략으로 적극 채택되었다. 기업들은 1960-1970년대부터 주력 핵심 노동자층과 주변부 노동자층을 구분하면서, 주변부 노동자층을 자신들의 축적기제의 보완요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1990년대 이후,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확산되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기업의 수량적 고용 유연화 전략이 앞으로 더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IMF 사태를 계기로 현재 한국 자본주의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은, 이른바 '시장 만능주의'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즘 들어 이슈가 되는 비정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그들이 늘 빈곤과 차별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은 182만 원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52.9% 수준인 96만 원에 그쳤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은 평균 77만 원으로, 정규직 전체 평균의 42.3%에 불과하다.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받는 노동자는 정규직의 경우 14.3%(85만 명)인 반면, 비정규직은 58.3%(448만 9천 명)나 되었다. 정규직은 5명 가운데 1명 미만이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3명 가운데 2명꼴로 100만 원도 못 받는 셈이다. 더불어 현재 적용되는 최저임금(월 514,150원)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보면, 정규직은 0.5%에 불과했으나 비정규직은 18.8%에 달했다.

 

주당 노동시간을 보면, 정규직은 44시간인데 비정규직은 45.5시간으로 더 길었다. 또 정규직의 평균 노동시간을 100으로 볼 때 일반 임시직은 114, 파견근로는 108.8, 용역근로는 114.3이나 되었다. 

 

이처럼 비정규 노동자들은 대체로 정규직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도 절반 가량의 임금을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규직과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불리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간호사의 경우, 한 병동에 배치된 정규직 간호사와 똑같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환자들을 돌보지만 임금은 60-70% 수준이고, 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경우 심지어 정규직의 3분의 1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일하는 한 비정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즈음 동일노동 동일임금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는 동일시간이라도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정규직과 똑같이 야근을 하잖아요. 똑같이 2시간을 일해도 정규직은 4시간 일한 것으로 쳐주고 우린 2시간만 일한 것으로 봐요. 안 그래도 임금 차이가 큰데 일한 시간도 고무줄처럼 늘려주니 임금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죠."

 

기업 사회복지에서도 비정규직들은 배제되어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적용비율이 정규직은 각각 92.2%, 94.6%, 79.1%인데, 비정규직은 21.5%, 24.8%, 23.2%로 아주 낮다. 법정 퇴직금을 받는 비율도 정규직은 93.2%이지만 비정규직은 고작 13.8%이다. 상여금을 받는 비율도 정규직(92.5%)에 비해 비정규직(13.9%)이 훨씬 떨어졌고, 연장근로 수당을 받는 사람도 정규직은 76.7%인 반면 비정규직은 10%에 불과하였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또 다른 고통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언제 그만두라고 할지 모르는 상시적인 고용 불안정성이다. 통계청의 2002년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임금 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4년 5개월이지만, 상용직은 7년 4개월인 반면, 임시직은 2년 1개월, 일용직은 10개월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비정규직들이 대부분 여성, 저학력, 청년층과 노년층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비정규 노동자 가운데 여성은 51.3%이고, 남성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46.7%인 반면 여성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70.7%로 압도적이다. 

 

연령별로 보면, 19세 미만 청소년은 90%가 비정규직이다. 그러다 점점 줄어 25-34세 때 48.1%로 떨어졌다가, 다시 55-64세 71.7%, 65세 이상에서는 92.4%로 늘어난다. 

 

학력이 낮을수록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학력별 비정규직 비율을 보면, 대졸 이상은 28%, 전문대졸은 53.3%, 고졸 이하는 60.1%이며, 중졸 이하는 81.5%에 이른다. 중졸 이하는 5명 가운데 4명이 비정규직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성(性)과 학력 등에 따른 차별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과, 비정규 노동이 사회적 약자 계층을 더욱 주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

 

1990년대 이후 노동입법과 판례의 동향을 보면 좀 우울하다. 갈수록 해고의 자유와 노동 유연화만 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근로기준법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고 했지만, 1998년 2월 '경영상의 사유'에 대해서는 해고의 자유를 부여해 IMF 사태 이후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인력감축을 위한 법적 지원장치가 되었다. 또한 2002년부터 폭넓게 허용될 예정이었던 기업 내 복수노조 설립이 5년 더 금지됨으로써 명월관 노조와 같이 기존 정규직 노조에서 가입을 받아주지 않는 비정규직 독자노조가 '복수노조 금지' 조항에 걸려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단결체를 통한 자기 권리 찾기조차 방해받고 있는 셈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파견법')이다. 1998년 7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제정 당시 음성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파견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였지만 '2년 이상 고용시 사용업체 직접 고용'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근속기간 2년이 되기 직전에 계약을 해지하여 파견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판례의 입장도 갈수록 보수화 경향을 띠고 있다. 고용계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고 경제적 조직적으로 종속된 상태에서 일을 하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대부분 부정하고 있다. 검찰은 여기에 한술 더 떠 합법적으로 3년 동안 노조활동을 해온 재능교육 교사 노조에 대해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상 노조로 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서울행정법원은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인 경우, 불법파견 근로 제공 기간과 파견법상 허용 업무 여부를 떠나 파견법상 2년 이상자 직접 고용 의무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라고 판결함으로써 오히려 불법파견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합리한 법제도가 오히려 비정규직의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비정규직 보호 입법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가시적인 조치는 아직 없다. 또한 지난 7월 25일 노사정위원회 본위원회를 거쳐 정부로 이송된 '공익안'은 현존하는 각종 차별과 노동권 침해를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꼭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데도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차별받는 것을 고치기 위해 근로기준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해야 한다. 상시적인 업무인데도 임금을 적게 주거나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게 하려고 계약기간을 정해서 사람을 뽑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 '계약직'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다음 세 가지로 제한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출산 육아, 질병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둘째, 계절적 사업인 경우, 셋째, 일시적 임시적 고용의 필요가 있어 노동위원회 승인을 얻은 경우이다.

 

형식적으로는 사업자 등록증을 갖고 있지만 실제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나 '사용자' 정의를 확대해야 한다.

 

고용과 사용의 분리로 생기는 중간착취의 위험성과 파견근로자의 인권유린이 늘 따를 수밖에 없는 근로자 파견제도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직접고용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파견법을 폐지하고 직업안정법상의 근로자 공급사업으로 규율해야 하며, 직업안정법 개정을 통해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인 경우, 직접고용으로 간주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다. 바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추구권이다. 누구도 이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정규직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투표권도 보장받지 못했고, 버스나 기차에서 또는 스낵코너에서조차 앉고 싶은 자리에 마음대로 앉을 수 없었던 흑인들처럼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장 존중되어야 할 인권마저 빼앗기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봇물처럼 일었던 시민불복종 운동, 곧 유색인종이 그들의 '특별석'을 거부하고 백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자리'에 '동등한 인간'의 자격으로 앉고자 투쟁하거나, 투표권을 확보하려고 하루 일을 포기하고 긴 줄을 늘어서야 했던 것처럼 비정규직들의 '인간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만약 정부와 정치권이 빠른 시일 안에 제대로 된 비정규직 보호 입법을 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들은 다시금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를 쓸지 모른다. 다음의 얘기가 그 조짐을 충분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1월 29일, 설날을 앞두고 한국통신산업개발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설 선물로 받은 김 선물 세트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달한 '일'이 있었다. 같은 회사 정규직들은 1인당 550만 원 가량의 상여금을 받은 반면 자신들은 덩치만 큰 김 상자만 지급받자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이 폭발하여 '차별의 단적인 예'로 김을 전달키로 한 것이다.

 

이들은 보도자료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등이야 있겠지만, 차등이 지나치게 심화되면 차별이 되고, 차별이 가시화되면 탄압이 되며, 탄압이 심화되면 인권 말살이 된다."라고 항의했다. 그리고 인수위원회 앞에서 외쳤다.

 

"새로운 정책과 새로운 법을 마련하기에 앞서서 이러한 불합리한 점을 개선해 달라고 시커먼 '김'을 보냅니다. 비정규직의 새까만 마음과 같은 '김'을 보냅니다."

 

[사목, 2003년 9월호, 이정희(월간 "비정규 노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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