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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사목] 2003년, 한국 노인이 선 자리에서 노인학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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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109

2003년, 한국 노인이 선 자리에서 노인학대를 말한다

 

 

'노인'이라는 말이 한 인간이 살아온 긴 시간에 대한 존경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시난고난했던 삶 그 끝에서 한껏 여유롭게 기다림과 끌어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혜를 담은 사람들을 '노인'이라고 여기던 때도 있었다. 노인의 경험은 젊은이에게 산 교훈이었고, 노인의 오래된 시간은 그 자체로 인생이 빚어낸 정금 같은 결실이었다.

 

'사오정'(사십오세 정년)과 '오륙도'(오십육세에도 일하고 있으면 도둑)라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오늘, 물 건너 이웃 나라에서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 삼십대부터 '명예' 퇴직 신청을 받는다 하니, 이제 긴 시간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경험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살아온 세월의 기득권을 주장하기엔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너무나도 숨가쁘다.

 

노인 됨으로써 누렸던 것들, 내 손에 물 안 묻히고 '차려주는 밥' 먹기, '어른이 말씀하시는데…'로 해결되었던 독점적인 의사결정권, '노인' 속으로 녹아버려진 여자, 며느리로서의 종속성, 이런 것들이 이제는 '노인'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 되면 덜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삶의 무게들이 여전히 노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2003년 한국의 노인들은 사회나 가족이 대신해 줄 것이라 믿었던 생존의, 생활의 문제를 낯설게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학대가 근래 들어 사회문제로서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하게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 학대라면, 평생을 이리저리 치이다가 이제는 큰소리치고 살 것 같은 '노인'이 '학대'를 당하는 상황이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느 막돼먹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는가? 학대당하는 노인들은 또 얼마나 자식을 잘못 키웠으면 늙어서 자식한테 학대받고 사는가 하는 생각에 노인학대는 쉽게 남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과연 노인학대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2003년 현재 한국사회 전체 인구의 7.2%가 65세 이상 노인인구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2세, 여자가 80세를 넘었다. 앞으로 30년을 넘기기 전에 4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 되는 고령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사회에서 '노인'은 이제 더 이상 소수(minority)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인가? 사회의 뼈대는 빠르게 고령사회로 변해가는데, 사회 구성원의 가치, 태도, 그 밖의 사회제도적 장치들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틈 사이에 노인학대가 있다. 이제 '노인'은 먼 미래의 내 모습도 아니고, '노인학대'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시대, 2003년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1. 노인학대의 특성

 

1)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무엇보다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해야 한다. 일반인들은 신체적 학대와 같이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증거가 있는 상황을 학대라고 인식하는 데 반해, 당사자인 노인들은 정서적, 심리적 학대나 방임에 학대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노인학대에 대한 더욱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저지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노인은 정서적으로 학대당한다고 여기지만 이를 학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노인의 정서적 지지를 위한 사회적 서비스가 개발, 전달되기는 쉽지 않다. 또한 가시적이지 않은 부분은 학대로 인지하지 않음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대 또는 잠재적 학대가 해결되지 않고 악화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노인학대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2) 노인학대의 복합성

 

노인학대는 하나의 원인에 의해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작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잠재적인 위험 요소들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학대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돌출되는 경우가 많다. 

 

노부모 가운데 한 분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경우 간병은 누가 할 것인지, 병원비는 누가 낼 것인지, 퇴원하면 누가 모실 것인지, 앞으로는 어디서 어떻게 사실 것인지, 상황이 나아질는지, 이 모든 것을 둘러싼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족간의 갈등은 쉽게 증폭된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는 평소의 가족관계,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경제적 상황, 사회적 체면 등 모든 것이 매우 민감하게 작용한다. 잘하는 것은 보이지 않고 서로에게 섭섭한 것만 드러나는 상황에서 쉽게 큰소리가 오갈 수 있다. 자신 때문에 자녀들이 서로 큰소리 내며 싸운다고 생각하면 누워계신 어른은 스스로 비참해지면서 본인이 자녀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경제력이 뒷받침된다든지, 어른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다면 상황은 좀 더 호전될 수도 있겠지만, 노인 부양 책임이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겨져있는 현 상황에서 이와 같은 갈등이 학대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노인학대를 이해하고 사회복지적으로 접근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노인학대 상황을 둘러싼 복합적인 관계와 과정들이라 할 것이다. 

 

3) 노인학대의 지속성

 

노인학대의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을 띠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노부모가 건강하였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던 가정이 노부모가 와병상태에 놓이면 여러 가지 잠재적인 갈등 상황이 증폭되는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정성을 다해 모시고 경제적으로도 십시일반 돕는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도 있듯이, 차도가 없고 부담만 쌓여가면 건네는 말 한마디가 냉랭해지고, 통증을 호소해도 "또 저러신다, 노인네가." 하니 누워계신 노인은 섭섭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노인은 노인대로 내 몸이 불편하니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고 원하는 대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엔 섭섭함과 불평이 많아지게 된다. 

 

특히 정서적, 언어적, 심리적 학대는 부양자나 주변의 가족들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비가시적인 학대를 학대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노인학대의 상황은 해결되기보다는 지속되고 악화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4) 노인학대의 은폐성 

 

노인학대의 또 다른 특성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이다. 노인학대의 주된 가해자는 아들 또는 며느리로 직계가족이다. 특히 동거하는 자녀들이 가해용의자일 경우가 많으며, 동거하지 않는 경우 맏아들, 며느리가 가해용의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계가족인 경우 학대 사실이 외부로 노출되기는 매우 어렵다. 가해자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자녀이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학대 행동 자체도 본인이 잘못 가르친 탓이라거나, 잘 못해준 때문이라는 등 학대의 근본적인 원인을 피해자 본인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또 자녀가 노인을 학대하는 가해자라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집안 망신이며, 창창한 아이들 앞날에 먹칠하는 것이고, 본인의 체면이 손상되기 때문에 학대를 당하면서도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외부에서 노인학대 문제로 개입하게 되어도 처벌은 원치 않으며, 외부 개입이 가져올 보복 또는 가족 내부에 미칠 영향 때문에 노인학대 피해자들은 친족관계인 가해자를 선뜻 신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학대를 접근할 때에는, 이와 같은 특징을 염두에 두고 다각적이며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다만, 이러한 모든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노인학대는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며,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대 상황을 학대로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학대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해자를 격리하거나 처벌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안전과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자원을 이용하여 학대 상황을 완화하고 재발을 막는 것은 노인학대 해결에서 매우 중요한 접근이다. 이를 위해 다각적이고 지속적인 개입과 사후 처리가 필요하다.

 

 

2. 노인학대의 원인

 

'노인학대는 왜 일어나는가? 무엇 때문에 노인을 학대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먼저, 노인의 개인적 특성을 들 수 있다. 노인의 성격적 특성, 예를 들면 옹고집이라든지,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라든지 하는 성격적 특성과 정신 장애, 알코올 중독, 무기력감 등 정신 건강적인 측면도 학대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둘째는 노인의 의존성을 들 수 있다. 노인이 장애, 질병, 치매 상태 등으로 의존적일 때 노인학대의 위험성이 증가한다. 곧 노인의 독립성 약화가 노인학대의 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셋째, 노인의 개인적 특성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개인적 특성도 노인학대의 원인이 된다. 가해자의 성격적 특성, 정서 장애, 정신 장애,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등이 원인이 되어 학대가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노인 배우자나 성인 자녀의 알코올 중독과 관련된 가정폭력은 학대 대상이 다른 모든 가족 구성원이라는 점, 또한 가정폭력이 세대를 넘어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

 

넷째, 부양자의 부양 스트레스 또한 노인을 학대하게 하는 원인이다. 부양자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또는 부양 능력의 결여 때문에 학대가 일어나기도 한다.

 

다섯째, 가정 환경적 요인으로 가족간의 경제적 문제, 불신, 갈등과 반목, 재산 문제, 힘의 갈등 때문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이 노인학대가 일어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 요인을 들 수 있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요인이 가장 심각하다고 여긴다. 곧 자본주의 산업사회로서 한국사회가 갖는 연령 차별주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의 변화, 그러나 여전히 가족을 복지의 일차 담당자로 여기는 사회보장제도와 노인 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 결여, 노인복지의 사회 안전망 미비 등이다. 

 

이제 가족만이 노인을 부양하는 시대는 지났다. 가족은 이미 사회 안으로 깊숙이 편입되어 노동력이라는 매개로 많은 부분 사회화되었는데, 유독 노인 부양에 관해서만큼은 어떤 사회적 책임 없이 가족에게만 그 부담을 떠맡기는 오늘의 현실이 노인학대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이다.

 

55세에 뇌졸중으로 입원하였던 한 아주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인한 아들과 살고 있다. 두 아들을 두었는데 다들 사는 게 넉넉하지 못하다. 같이 사는 아들도 형편이 어려워 내외가 다 일하러 나가는 터에 이 아주머니는 뇌졸중으로 수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는 많이 어렵지만 노동력이 있는 두 아들이 있어 흔히 말하는 수급권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퇴원하여 집에 왔으나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또 끼니조차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정 도우미의 도움이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수급권자가 아니니 그것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3년이 지난 지금 아주머니의 상태는 많이 악화되었다. 뇌졸중으로 마비된 몸은 재활치료를 받지 못해 굳어만 가고, 그나마 보건소에서 지급하는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하고, 부실한 식사에 당뇨까지 겹쳤다. 이 어르신은 나이도 경제력도 최하층이 아니라, 다만 '차상위층'이라 집에서 이렇게 사회적 방임을 당하면서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것이다. 

 

이분의 자녀들에게 어머니를 방치했다고 노인학대의 가해자라 해야 할까? 시간이 더 지나 이 아주머니가 정신을 잃거나 다른 기능이 악화되어 다 일 나간 쪽방 한 칸에서 똥오줌을 못 가릴 때,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 손녀가 할머니 냄새를 싫어하면서 할머니를 구박할 때, 우리는 이 아이들을 노인학대의 가해자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노인학대는 그것이 학대로 드러날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복합적으로 엉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그럼 노인학대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3. 노인학대에 대한 정책적 대안

 

이제 더 이상 노인학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인간의 성정이나 태도가 돌변하지 않았을 테니 학대라고 불릴 수 있는 행위는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오늘 2003년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노인학대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이젠 학대당하는 상황을 팔자나 운이 없어서라고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조망하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곧 내가 못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 자식만 특별히 못되서 내가 당하고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는 아니나 사회적 약자인,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노동력을 상실하고 생산성이 없는 존재로 낙인찍힌 노인들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때이다. 이제 노인문제는 더 이상 노인만의 문제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회구조 자체가 고령사회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노인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확보하려면 몇 가지 시급히 진행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1)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

 

무엇보다 노인이 학대받고 있는 상황을 학대라고 규정할 수 있도록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곧 노인학대란 무엇인지, 무엇이 노인을 학대하는 것인지, 노인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학대의 사회적 인식 확산에는 억울하고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는 노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들고 나와 사회적으로 이슈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노인학대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노인학대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학대받는 노인의 실상은 일회성 가십이 아닌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진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노인학대상담 센터 사업이 추구하듯이 노인학대의 개별사례들을 외부로 끌어내어 이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또 이렇게 축적된 사례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 노인학대의 특성을 분석하고 유형을 분류함으로써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2) 연령 차별주의의 철폐

 

나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연령 차별주의(Ageism)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노인이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연령 차별주의는 근대 산업사회가 형성되고 자본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뿌리내려진 사회적 가치이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노동력이고 노동력은 생산성으로서만 가치가 측정될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나이든 개인은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그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이등 시민으로 취급받게 되는 것이 연령 차별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한국 노인의 자화상이다. 사오정, 오륙도가 이야기되며, 실제 직장인이 체감하는 퇴직 연령이 37세에 못 미친다는 2003년 한국사회에서 65세 노인은 살아있는 것이 치욕이다. 인간을 치욕스럽게 만드는 것이 연령 차별주의라면 당연히 철폐되어야 하지 않을까?

 

노동시장과 고용구조의 유연화라는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가야겠지만 계급별 연령 상한 등과 같이 연령 차별을 제도화하는 장치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법적 제도적 재정비와 아울러 노인도 이등 시민이나 반쪽 인간이 아닌 온전한 한 인간으로 보려는 시각이 노인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필요하다. 

 

노인들도 그동안 노인으로서 누려오던 기득권에 대한 아득한 향수에만 매달려 있을 것이 아니라, 변하는 사회에 앞서나가는 유연한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손발이 멀쩡한데도 며느리가 시아버지 밥도 제대로 안 차려주고 나다닌다고 호소하는 노인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연령에 따른 부정적인 차별도 없애야 하지만, 연령에 따른 어떤 특권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자기 부양의 최소한의 의무나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3) 노인의 독립적 삶을 유지해 주는 사회안전망 확보

 

몸이 조금 불편하여도, 돈이 조금 없어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끝끝내 혼자 버텨보려 하지만, 당장 내 몸 누일 방 한 칸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말자는 다짐은 공허하기만 하다. 

 

치매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에게 월 15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노인전문병원은 꿈꿔볼 수도 없는 부담이다. 그렇다고 좀 떨어져 있는 치매 주간 보호 센터에서는 이곳까지 모시러 올 수 없다 하고,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배회하는 증상이 더욱 심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 오는 날 어머니 방에 밥 한 그릇 들이밀고 문을 밖에서 잠그고 나가야 하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노인을 감금했으니 노인학대 가해자라고 몰아붙일 수 있을까? 

 

치매 중풍 주간보호, 단기보호 등 지역사회에서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을 지원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시급히 확충되어야 할 것이다. 보건소를 통한 가정간호제, 가정도우미 파견사업 등 각종 서비스들을 현재 시행하고 있는 수급권자에서 점차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차상위 빈곤층, 더 나아가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에서 가족이 사회의 도움을 받아 노인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서구사회에서 고령노인의 문제를 시설화(institutionalization)로 해결하려 했던 데서 비롯한 여러 가지 폐해들, 시설에서의 학대, 비인간화, 시설 운영에 따른 경제적 부담 등을 사전에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안을 바탕으로 노인과 함께 사는 가족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부양에 따라 제기되는 갈등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가 노인학대로 발전되는 안타까운 상황은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양한 재가복지 서비스 개발, 기존 서비스의 확충과 더욱 긴밀하고 체계적인 서비스 전달은 가장 시급하고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노인학대를 위한 정책적 대안일 것이다.

 

4)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책임

 

또 하나 꼭 지적하고 싶은 안타까운 점은 상담 센터나 또는 다른 노인복지기관이 현재 학대받고 있는 노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곧 이웃이 학대받는 노인을 위하여 신고를 해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노인학대상담 센터와 같은 제삼자는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따라서 노인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최소한 의무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면담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학대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임에는 틀림없다. 노인학대를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공유할 수 있는 피해 노인들의 자세와, 노인학대가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임을 공감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인학대 사례들이 발굴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발굴된 사례들에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노인학대 사례에 대한 사회적 개입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개입은 학대받는 노인의 가정을 해체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대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원인을 완화시키거나 없앰으로써 노인이 좀 더 질적으로 보장된 삶을 살게끔 하는 것이다. 부양자의 입장에서도 부양의 부담이나 본인의 어려움 등을 토로하고 외부에 도움을 청함으로써 가족간의 갈등, 특히 끝이 안 보이는 노인 부양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가 개입함으로써 가정을 화목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노인학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학대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노인과 성인 자녀, 그리고 사회의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목, 2003년 11월호, 김은주(노인학대상담 센터 서울북부지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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