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1-0814.....삶의 자세와 결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8-13 ㅣ No.1074

연중 제 20 주일 (가해 )

이사야 56,1.6-7 로마 11,13-15.29-32 마태 15,21-28

2011. 8. 14. 등촌3.

주제 : 삶의 자세와 결과

삶은 소박해야 하지만, 꿈과 이상은 높게 가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소리는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좀 더 오래산 사람이 주는 삶의 지침이고 격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꿈과 이상을 높게 갖는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행동은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이겠는지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삶에 대해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표현에 담겨 있는 의미가 좋은 것은 아니라고도 합니다만, 사람의 관심사와 그로 인해서 맺는 결과를 함께 생각한다면 그 소리가 근거 없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사람이 갖는 자세와 세상사물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삶의 결실이 아주 달라진다고 하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은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이 나누고 구별하는 그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질문하면서 동시에 다르게 대할 수는 없는지를 묻는 말씀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쉽사리 하는 편 가르기가 정말로 좋은 일인지를 생각해보라고 하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이방인지역으로 알려져 있던 티로와 시돈으로 가셨는지 알지는 못합니다. 분명히 무슨 목적은 있었을 겁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유와 목적이 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유대인이라는 전통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방인들이 주로 살았던 지역과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한 의미가 있었던 시돈과 티로 지방에서 예수님은 간절한 기적을 청하는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라면 아무래도 친근하게 반응을 보이셨을 예수님이었지만, 오늘 읽고 들은 마태오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드러내는 감정이 매몰찹니다. 전혀 상종하거나 어울리거나 말을 나누어서는 안 될 사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이런 감정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 다가왔던 가나안 여인은 토라지지도 않고 마음과 발길을 돌려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왜 감정을 앞세우고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자존심을 앞세운 감정의 승리는 거둘 수는 있어도, 그렇게 했다가는 자기가 간절하게 드러냈던 처음의 그 청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미리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드러내면서 삽니다. 그러면서 자기 삶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발 벗고 자기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주변 사람들이 행동하면, 삶이 힘겨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기 삶만이 중요한 것을 드러내는 자세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자세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의미 없는 소리에 불과하게 만들고 맙니다.

 

내 삶이 중요한 것이라면, 남이 내 삶을 귀중하게 봐 줄 것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삶도 살피고, 내 삶에 필요한 것을 올바로 자세로 알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 등장한 가나안여인은 자신을 강아지에 비유하는 모욕(?)도 거뜬히 이겨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꼭 필요했던 것을 얻습니다.

 

복음보다 먼저 들은 이사야예언서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도 이방민족으로 구별된 사람에 대한 대우가 달라도 좋은지에 대한 말씀을 전해줍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민족들을 먼저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그것을 삶으로 드러내는지 그 결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이사야예언자의 선포였습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민족의 구성원으로 출발했던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닿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 탓도 있지만, 이방인들이 드러낸 순종의 자세가 있었다는 것도 강조합니다.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과 내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상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든지 하느님의 마음이든지 우리가 제대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이 사람의 마음처럼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의 결과는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비도 어느 정도 그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무더운 때로 바뀐다고 하는 이때, 신앙에 대한 자세도 바르게 가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1,06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