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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알코올 중독: 알코올, 폭력의 씨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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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요] 알코올, 폭력의 씨앗
술에 취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밀치자 어머니는 저만치 넘어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분을 삭이지 못한 아버지는 집안 물건을 내팽개친다. 자녀들은 이를 두려운 눈동자로 바라본다. 승자는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녀들도 정신적인 외상에 사로잡힐 뿐이다.
소란스러운 밤을 보냈을지언정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만나는 남편은 온순하기 그지없다. 울분을 토해내는 쪽은 피해자인 아내이다. 아내의 곁에서 고개를 떨어뜨린 남편은 오히려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모두 다 내가 잘못 입니다. 뼈 속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며 그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것이고, 죄책감 탓에 얼마간은 누구보다 좋은 남편으로 행세할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또 술에 취해 그동안 쌓아두었던 불만까지 폭발시키겠지요. 이제 남편의 모든 말이 가식 같고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라며 말이다. 왜 평범한 아버지들이 가정폭력의 가해자로 변해버리는 것일까. 왜 악순환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술은 가정 폭력의 씨앗이다
술 문제로 비롯된 가정폭력을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사건으로 인식하면 오산이다. 가정폭력은 흔히 벌어지고 있고,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그 씨앗이 뿌려진다.
가족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면 씨앗이 자라는 토양이 조성된다. 사실 어느 집안이든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가족일지라도 서운하고 속상한 일이 없을 수 없다. 지혜로운 부부는 대화를 통해서 오해를 풀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부부간에는 이심전심이라면서, 정작 속 깊은 대화를 회피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사실은 껄끄러운 대화가 싫어 마음의 간극을 방치하고 봉합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억압된 감정들은 곪고 썩어 오해가 되고 원망이 된다.
여기서 만약 ‘가족은 내 마음을 몰라주고, 대화도 되지 않는다’면서 술에 의지하면 가정폭력의 그림자는 성큼 다가온다. 술에 의지하는 행위는 갈등을 성숙하게 극복하고 해소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있다. 술은 뇌를 마비시키고 뇌기능을 저하시킬 뿐이다.
올바른 정신의 뇌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 하면 제때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뇌의 깊숙이에 있는 변연계 (limbic system)같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술로 인하여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전두엽 (frontal lobe)의 기능마저 저하된다.
술에 취해 전두엽과 변연계의 균형이 깨지면 이성적인 마음은 사라지고 온갖 무의식적인 분노와 충동은 춤을 춘다. 그 순간 가족에게 느꼈던 작은 섭섭함이 원한으로 바뀌고 말로 해결될 일이 폭력적으로 표출된다.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음주를 했을 때 폭력행동의 위험성이 무려 11배 이상 높았다. 가정폭력으로 입건된 10명 가운데 7명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년 남성 3명 중 1명은 ‘고위험 음주군’이라니 많은 가정에 가정폭력의 씨앗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소통보다 술에 취해 주정을 하는 것이 진심에 가깝다고 착각하는 사회 문화는 분명 문제가 있다. 진심은 이성과 감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상태로 상대의 감정을 헤아려가며 상호적인 대화를 할 때 드러난다.
술잔을 내려놓고 멀쩡한 정신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대화를 자주 나누어야 가정폭력의 씨앗을 제거할 수 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을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당(酒黨)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나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한 번도 가족을 때린 적도 없고, 물건을 부순 적도 없으니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며 항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주당의 아내가 술을 즐기는 남편의 버릇 때문에 노이로제가 생겨 결국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으로 치닫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술에 취해야만 당당하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고, 평소에는 나 몰라라 입을 닫아버리는 남편을 대하는 아내는 미칠 노릇이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술을 먹고 들어오려나? 행여 모진 말로 내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라며 자신의 신세를 하소연한다. 육체적 폭력뿐 아니라, 가족에게 정서적 고통을 주는 일 또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녀들은 또 어떠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사회생활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귀가할 때마다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면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있긴 하신가 속이 상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와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당은 자녀들과 관계가 원만치 못 하고, 자녀들이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는 경우도 많다. 자녀에게 주어야할 사랑을 술에게 주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당의 자녀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분노는 낮은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나중에 대인관계나 가정을 꾸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흔하다. 게다가 아버지의 술 문제를 대물림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술 문제는 유전성이 매우 높은데다가 인생의 고비에 아버지를 모델링 하게 되고, 사람에게는 아버지의 싫은 모습을 닮으면서 고통을 회피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술 문제나 가정폭력에 더 이상 관대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음주와 가정폭력은 집안 내의 문제라면서 방치하여 왔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가정폭력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술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 다음에야 치료를 받는 우리와 달리, 문제가 커지기 전에 조기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 부부문제와 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다. 화근을 없애고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대처 방법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폭력에 허용적인 인식의 변화, 가정폭력 관련 법 체계 및 지원서비스의 확립, 주취 폭력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 학교에서 아동기부터 폭력 예방교육 실시, 경찰의 신속한 개입 등이 필요할 것이다. 각 가정에서는 술 문제와 가정폭력의 문제에 있어서는 작은 불씨도 예사로 넘기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내 된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에페 5,21-33).
주님을 섬기는 마음가짐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주님을 대하듯 배우자를 섬기고 가족과의 소통하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마시는 술잔이 가족의 눈물은 아닌지 한 번쯤은 돌아볼 때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3월호, 하종은 테오도시오(정신과 전문의,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0 935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