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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전례 영성: 전례주년 - 한 해를 주기로 펼쳐지는 파스카 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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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영성 – 전례주년] 한 해를 주기로 펼쳐지는 파스카 신비
전례주년은 그리스도의 신비
전례는 물레방아와 같다. 흐르는 시간 속에 빙글빙글 돌아간다. 매일, 매주, 매년의 일상을 찧으며 끊임없이 반복해서 돌아간다. 그날이 그날 같고, 그해가 그해 같던 평범한 날들은 전례라는 물레방아에 찧어지고 빻여져 주님의 시간으로 변화된다.
매일은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는 날, 매주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하는 새 창조의 주간, 매년은 “강생과 성탄에서부터 승천, 성령 강림 날까지, 또 복된 희망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펼쳐진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가 된다.
전례주년이란 이렇게 “한 해의 흐름을 통하여 지정된 날들에 하느님이신 자기 신랑의 구원 활동을 거룩한 기억으로 경축하는 것”(전례 헌장, 102항)이다. 그중에서도 “주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은 전례주년 전체의 정점으로 빛난다.”
또한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로마 미사 경본」,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8항).
전례주년의 정점, 파스카 성야
부활 대축일 전례에서도 특히 파스카 성야 예식은 “모든 장엄한 예식 가운데 가장 드높고 존귀하다”(「로마 미사 경본」, ‘파스카 성야’, 2항). 파스카 성야의 “모든 예식은 밤에 거행한다”(3항). 이 밤은 ‘파스카 찬송’에서 노래하는, 그리스도께서 “저승에서 부활하시어 온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대낮같이 밝은” 밤이기 때문이다. 밤을 강조하기 위해 성당 불은 다 끈다. 성당 바깥도 한처음 창조의 순간처럼 어둠에 덮여 있다.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기고 창조의 첫날이 지났던 것처럼(창세 1,1-5 참조), 사제는 새 불에서 파스카 초에 불을 댕기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빛으로 오시도록 기도한다.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님, 이 빛으로 저희 마음과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소서”(14항).
파스카 초의 행렬이 시작되고 교우들은 그 뒤를 따른다. 모두가 성당에 들어오면 파스카 찬송이 울려 퍼진다. 이어지는 말씀 전례는 “주님께서 한처음부터 당신 백성에게 하신 놀라운 업적들을 묵상하는”(2항) 시간이다. 구약의 마지막 독서가 끝날 때까지 제대 초에는 불이 켜지지 않지만,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음이(요한 1,9 참조)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파스카 성야의 정점, 세례식과 성찬례
“모든 밤샘 전례의 어머니인 파스카 성야”(「로마 미사 경본」, ‘파스카 성야’, 20항)의 정점은 “부활의 날을 맞이하여 교회의 새 지체들이 새로 태어나는 세례식”(2항)이다. 새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신앙의 빛 속으로 받아들여진다(히브 6,4; 10,32 참조). 세례의 빛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성사들과 성령을 받을 자격”(「어른 입교 예식」, 24항)을 갖춘 새 신자들은 마침내 모든 신자와 함께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로,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하라고 당신 백성에게 마련해 주신 식탁에 참여한다”(「로마 미사 경본」, ‘파스카 성야’, 2항).
새 신자들은 이날 처음으로 영성체를 하며, “성찬은 그리스도교 입문의 절정이며 그리스도인 삶 전체의 중심”(64항)임을 깨닫는다.
3일에 걸쳐 거행하는 파스카 성야
교회는 파스카 성삼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성금요일), 묻히셨으며(성토요일), 부활하신(부활 대축일) 주님을 특별한 예식으로 기념한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은 “손에 등불을 밝혀 들고 주인을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있도록 깨어 있는 밤”(「로마 미사 경본」, ‘파스카 성야’, 1항)과 비슷하다. 이 ‘밤’의 시간은 벌거벗은 제대가 상징하듯, 아직 주님과 함께 식탁에 앉을 준비가 안 된 때이다. 혼인 잔치에 신랑이 함께 있지 않는, 곧 신랑을 빼앗긴 ‘긴 밤’이다(마르 2,20 참조).
따라서 이 두 날에는 “오랜 관습에 따라 교회는 고해성사와 병자 도유를 제외하고 모든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로마 미사 경본」, ‘주님 수난 성금요일’, 1항).
그 대신, “기도와 단식을 하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린다”(「로마 미사 경본」, ‘성토요일’, 1항). 특히 성금요일은 의무이고 가능하면 성토요일까지 이어지는 파스카 단식은 성삼일 예식에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을 드높여 주님 부활의 기쁨에 이르도록”(「로마 미사 경본」, ‘파스카 성삼일’, 1항) 돕는다. 그리하여 “장엄한 파스카 성야 예식을 거행한 뒤에야 부활의 기쁨이 찾아오고, 이 기쁨은 50일 동안 넘쳐흐를 것이다”(「로마 미사 경본」, ‘성토요일’, 2항).
주일,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요한 20,1) 제자들에게 찾아온 부활의 기쁨은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요한 20,26) 있을 때 찾아 왔다. 여기서 “여드레 뒤”, 이른바 제8요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 곧 주일의 기원이 되었다. 창조의 첫날인 일요일이 새 창조의 첫날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일은 창조의 7일을 벗어난, 해가 지지 않는 영원한 날의 상징이다.
이렇게 7일을 일곱 번 보내고,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50일째 되는 날, 곧 성령 강림 대축일에 교회는 부활 시기를 끝맺는다.
“주간마다 주일이라고 불린 날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또 일 년에 한 번 주님의 복된 수난과 함께 이 부활 축제를 가장 장엄하게 지낸”(전례 헌장, 102항) 교회는 부활 시기 50일 전체를 마치 부활 대축일 하루처럼 여기며 이 전체 시기를 통틀어 “대(大) 주일”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일은 최초의 근원적인 축일”이며 “전례주년 전체의 토대이며 핵심”(전례 헌장, 106항)이라 말한다.
전례주년 전체를 비추는 파스카 신비
전례주년에는 파스카 축제 말고 성모 마리아와 다른 모든 성인의 축일들, 그리고 대림, 성탄, 사순 같은 전례 시기들도 포함되지만, 사실 이 모든 기념은 “파스카라는 단 하나의 신비가 지닌 다양한 측면이 전개되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71항). 그래서 “빛의 근원인 파스카 성삼일에서 시작하여 부활의 새로운 시기는 전례주년 전체를 찬란히 비춘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68항).
파스카 만찬인 성찬례를 한 해의 중심(파스카 성야)이요, 한 주의 중심(주일 미사)이자, 하루의 중심(매일 미사)으로 놓고 살아갈 때, 전례주년은 참으로 “주님의 은혜로운 해”가 되고, 매주, 매일이 “구원의 날”, 매 순간은 “은혜로운 때”(2코린 6,2)가 된다.
* 최종근 파코미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은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원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10월호, 최종근 파코미오] 0 5,659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