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2-1104...연중31주일...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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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11-03 ㅣ No.1325

연중 31 주일 (나해)

신명기 6,2-6      히브리 7,23-28     마르코 12,28ㄱㄷ-34

2012. 11. 4. 등촌3

주제 : 우리 삶에 중요한 것 사랑(?)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것을 찾는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든지, 중요한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든지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서 내가 찾아서 친구로 삼기만 하면,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만사 오케이될 거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주일미사에서 제가 이런 말로 시작했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을 떠도는 것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질문을 바꾸어서 다시 하면, 중요하다고 생각할 어떤 것이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수시로 변합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린 표현으로 다시 얘기하면,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건강하다고 생각할 때는, ‘건강에 관한 문제를 중요한 것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몸의 어느 구석에 고장이 생기고, 생각대로 마음껏 움직이는 일에 위험을 느낀다면 판단이 달라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에 대한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정신이나 신앙의 내용을 중요하게 여길 때는 언제일까요? 굳이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느냐고 물을 분도 있겠습니다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다면 어떤 표현이 가능할까요?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이 잘 될 때에,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는 아닐까요?

 

오늘은 연중 31주일입니다.

전례달력의 한 해는 연중34주일까지 있으니까, 오늘부터 시작되는 주간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28, 4주간이 지나면 우리는 전례력의 새로운 한 해를 말할 것이고, 다시 대림절을 얘기할 것이며, 성탄을 준비하는 일에 대한 얘기를 할 것입니다. 달력으로는 12월에 들어서서 말입니다.

 

그렇게 한해의 끝을 계산할 수 있는 오늘, 연중31주일에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사랑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반복하지 않더라도 사랑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지식으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지식으로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라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는 얘깁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뜻을 자기 입으로 해석하며 말하고 살았을,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자기도 잘 알 법한 지식에 해당하는 질문을 예수님에게 왜 했는지 그 의도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스승님,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계명으로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에는 오늘 복음에서 들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첫째가는 계명과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둘째 계명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율법학자가 알아들었던 계명은 우리가 흔히 얘기할 십계명보다 더 많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실천해야 했던 계명의 개수는 613(365-긍정명령,+,248-부정명령)였다고 합니다. 저도 그 내용을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했을 이 계명들 가운데서, 그것을 말하고 살았던 율법학자가 중요하고 첫째가는 계명으로 여겨야 할 내용을 몰랐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그는 자신이 잘 알고 있었을 내용을 예수님께 왜 질문할 것이겠습니까?

 

사람은 자신이 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나쁘다거나 좋다는 것은 이 자리에서 말할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마음을 갖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올바른 것일까요? 율법학자가 질문한 의도를 아셨을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학자를 칭찬합니다.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를 향하여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선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의미는 무슨 뜻이겠습니까?

 

세상살이에서 우리는 삶과 신앙을 분리하는 때가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성당에 왔을 때나 묵주를 들었을 때는 신앙인으로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세상일을 먼저 생각할 때는 신앙에 대한 판단이나 삶의 기준을 과감하게 내던진다는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전형적인 말을 실천하는 자세입니다. 이 역시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판단은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모세의 말을 전하는 신명기 말씀규정과 계명을 얘기합니다. 그 규정과 계명을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실천한다면, ‘잘되고 번성하게 해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고 싶다면,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이 담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세상에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게 알려주어야 내가 알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일일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서 올바로 사는 사람으로서 얻을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세상에서 올바르게 산 결과가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거나 다른 사람들 이롭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삶에서 다른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선포하는, 히브리서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면, 우리는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가르침을 따라 살며,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드러나야 하겠는지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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