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3-0120...연중2주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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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1-19 ㅣ No.1337

연중 제 2 주일 (다해)

이사야 62.1-5             1코린토 12.4-11        요한 2,1-11

2013. 1. 20.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사람의 속마음을 알기란 매우 힘들다는 뜻)’는 말을 쓰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 본보기를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아도, 자기 생각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대하면서, 그 사람이 드러내는 삶의 결과가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고 안타까운 결과를 맺을 때 우리는 그런 말을 쓸 것입니다.

  세상을 살만하고 기쁜 곳으로 만들려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좋고, 짜증내는 것보다는 웃는 모습이 좋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아는 상식입니다. 이론은 그렇습니다만, 이렇게 아는 이론대로 세상의 모습이 움직이는 경우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늘은 연중2주일입니다. 오늘, 연중둘째 주일의 복음말씀은 인륜대사(人倫大事,=혼인/장례등)를 축복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가나촌 혼인잔치 기적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으로 기억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은 사람들의 삶에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그 의도를 드러내신 일이면서도, 세 번째 공현이라고 말하는 기적입니다. 공현대축일은 지났습니다만, 공현(空弦)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들어와 관련을 맺으시는 사건들이라고 알아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관련된 것이었고, 둘째는 지난 주일에 기념한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오늘 세 번째 공현사건이라고 기념하는 가나촌의 혼인잔치는,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참석하셨다가, 잔치에서 사람들의 흥을 돋워주는 포도주가 모자라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하느님도 인간의 삶을 축복하신다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의 삶에 술은 발걸음을 흥겹게 하는 아주 좋은 물질입니다. 물론 이렇게 좋다고 칭송할 수 있는 술도 정도를 지켜야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혼인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에는 상황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는 그저 여인으로 불리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어머니가 혼인잔칫집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이야기는 가나혼인잔치가 첫 번째 기적이라고 나옵니다만,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잔칫집의 곤란한 상황을 알린 것은,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다른 체험이 있었거나, 예수님이라면 그 곤란한 상황을 충분히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놀라운 믿음이 함께 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씀에서 그런 신뢰를 읽을 수 있고,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말에서 예수님의 자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주 맛있는 포도주로 바뀐 물을 맛보고 나서야 신랑을 불러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셨군요!’하고 감탄한 과방장도 있습니다만, 올바른 신앙인이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졌던 놀라운 자세를 기억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론은 그렇습니다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정신을 기억하고 애쓰기는 합니다만, 우리 등촌3동의 신자들만 해도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산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움직이시는데,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읽으면서 올바로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시라도 과도한 욕심을 갖고, 제풀에 지쳐 혼자 쓰러지며, 하느님은 나를 위하여 기적을 베풀지 않는 것을 보니, 나를 잊어버리셨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내 삶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분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는 않을까요?

  하느님께서 사람의 삶을 대하실 때, 예수님을 통하여 행동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대할 때, 또한 내가 하느님을 대할 때 우리가 바라보는 눈을 순화(純化)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려고 하는 마음자세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아주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다른 대상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신앙인으로 산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그 방법을 아직까지 배우지 못했다면, 우리는 올바른 삶의 눈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상황이라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서는 구약의 히브리백성을 보시면서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 나와 혼인한 여인이라는 특별한 애칭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삶을 다정하게 부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을 이용하여, 우리는 세상에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힘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세상에 살아가는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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