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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사회와 공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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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09 ㅣ No.208

[김명현 신부의 사회교리] 사회와 공동선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1서 12장 12-31절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신국론 22장에서 사회를 올리브 나무에 비유하였다. 즉 사회는 올리브 나무에, 개인은 올리브 나뭇잎에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는 것이다. 유기체인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는 개인이며, 개인들간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사회는 그 구성요소인 인간을 목적으로 삼으며,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사회가 인간을 위해 인간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특정한 어떤 인간을 목적으로, 특정한 어떤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행복과 선을 목적으로 삼고 구성원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구성원 전체의 행복과 선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는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이며, 사회가 공동선을 추구해야 하는 것을 공동선의 원리라 부른다.

 

 

1. 공동선이란?

 

공동선(common good)이란 개인들의 이익의 단순한 합계, 즉 개인들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선의 총계는 아니다. 공동선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완성을 더욱 충만하게, 더욱 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생활의 모든 조건을 포함”(어머니와 교사, 69)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공동선이란 “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더 완전하고 더 용이하게 자기 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생활상 여러 가지 조건의 총체”로 구성되는 인간의 선익(bene humane, human good)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동선을 교황 요한 바울로 2세는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사회적 관심, 38)으로 표현하면서 공동선은 “개인적 이익들의 합계가 아니라, 결국 균형 잡힌 가치 질서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개인들의 성숙한 평가와 조화를 포함하는 것”(백주년, 47)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공동선은 첫째, 모든 이가 공동선의 혜택을 누려야 하며, 둘째, 개인들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사익에 대한 공동선의 우선

 

사익이 먼저인가 공동선이 먼저인가? 일반적으로 사익보다 공동선이 앞선다. 이는 사회가 개인의 이익만을 강조할 때 사회질서가 무너짐으로써 유기체로서의 사회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사익보다 공동선이 우선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은 탄생·성장·사멸하지만 사회인 마을과 도시, 민족과 국가는 여러 세기를 걸쳐 존속한다. 개인을 시·공적으로 초월하여 존재하는 사회의 공동선이 개인의 선익에 우선하여야 한다.

 

㉯ 한 유기체의 각 부분은 서로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유기체에 봉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지체인 각 구성원들은 서로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적·도덕적 질서의 통일체를 형성하고 사회 전체에 봉사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선익보다 공동선이 우선한다.

 

㉰ 유기체는 자신의 지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양하며 보존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위급할 때만 전체를 구하기 위하여 일부의 지체를 희생시킨다. 마찬가지로 사회는 자신의 지체인 구성원들을 착취할 것이 아니라 돌봐야 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유지를 위해 지체들이 희생하여야 할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전쟁이 일어날 경우 병사들은 전체로서의 공동체의 존재를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야 한다.

 

 

3.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

 

공동선이 사익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인의 인격적 자유와 존엄성을 부정하는 화를 초래하게 된다. 비록 사회를 유기체에 비유하여 사익보다 공동선이 우선함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사회와 유기체는 각각 종류를 달리하는 두개의 존재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유기체에서 개별세포는 전체를 위한 봉사에 몰두하나 인간은 사회전체를 위하여 희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회의 기초이며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공동선 때문에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 개인은 인격체를 갖춘 실제적인 존재이지만 사회는 하나의 실제적인 관계(relatio realis) 및 질서의 통일체이다. 따라서 사회는 개개인을 떠나서 또 그와의 관계없이 존재할 수 없기에 공동선을 위해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을 침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사익에 대한 공동선의 우선은 오직 구성원인 개인이 사회 구성체에 의무를 지고 있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즉 모든 개인은 자신의 사익보다 자신이 속한 가정·본당·마을·회사·조국 등의 공동선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조직체의 공동선을 위해 사익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 사회는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모든 사회성의 최종적 의미는 인격성의 완성이다. 만약 사회가 개인의 인격을 침해한다면 구성원들의 인격적 완성을 방해하는 것이 되기에 사회는 자신의 최종적 의미를 스스로 파괴하게 된다. 결국 “사회는, 인간이 그것을 자기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고 또 사용해야 하는 하나의 자연적 수단이다. 그것은 인간사회는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며,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비오 11세, 회칙 Divini Redemptoris, AAS XXIX. p. 79).

 

 

4. 공동선을 위한 권위

 

한 사회에서 공동선을 효과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권위가 필요하다. 이 권위는 사회에서 지도력 또는 정치력으로 표현된다. 사회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의 의무와 권리는 공동선의 수호와 관련이 있다. 모든 사회에는 구성원들의 공동선 실현을 위한 단일한 권위가 필요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의 공동선 실현을 위해서는 단일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 사실 사회의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특수한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사회는 존속할 수 없게 된다. “하나의 집합체는 한사람이 나서서 전체의 복지를 돌볼 때만 하나의 사회로서 존립할 수 있다. 하나의 집합체(무리)는 그 자체가 많은 목표를 추구하나. 한사람은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한다.”(Thomas Aquinas, S-Th.,Ⅰ.96. 4). 따라서 권위는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가 안전하게 존립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한 사회에서 권위가 올바르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 의해 통제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권위를 통제하고 비판하는 기준은 곧 공동선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학교, 교회나 국가를 막론하고 제도적 성격을 띤 모든 권위에 대한 지나친 비판은 사회를 건전하게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신뢰를 파괴하고 대화를 단절시킴으로써 사회를 파괴할 수도 있다.

 

 

5. 글을 마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동선의 원리를 망각한 현상들이 너무나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일명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 현상과 연일 터지고 있는 각종 게이트가 그러하다. 공동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혐오시설이기에 자신의 집 주변에는 결코 안된다는 생각은 사회의 공동선과 발전을 저해하는 집단이기주의이기에 배척되어야 한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각종 게이트는 주어진 권위를 공동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익을 위해 사용한 것인데 이는 제대로 된 통제와 비판의 부재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공동선의 원리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우리는 가정과 본당을 위시하여 각종 단체·회사·지역공동체·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각자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공동선을 진작시키려는 노력을 하면서 사회 조직체의 권위가 올바로 사용될 수 있도록 감시하여야 한다. 공동선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빛의 역할이며, 권위의 올바른 사용을 감시하는 것은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소금의 역할이다.

 

[월간 빛, 2002년 3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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