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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경 속 생명 이야기23: 생명의 어머니 마리아 (3) 마리아,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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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05 ㅣ No.1170

[성경 속 생명이야기] (23) 생명의 어머니 마리아 III


마리아,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묵시 12,4): 악의 세력들이 위협하는 생명

요한 묵시록에서 ‘여인’의 ‘큰 표징’에는 ‘또 다른 표징’ 즉 “크고 붉은 용”(묵시 12,3)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 용은 사탄, 개인적인 악의 힘과 아울러 역사 안에서 활동하며, 교회의 사명을 공격하는 모든 세력을 표현합니다.
 
이 점에서도 마리아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 빛을 비추어줍니다. 악의 세력이 지닌 적대감은 교활한 저항으로서, 예수님 제자들 곧 교회를 직접 공격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향합니다. 당신 아드님을 위협으로 여겨 두려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아드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리아는 요셉과 아기와 함께 이집트로 피난을 가셔야만 했습니다(마태 2,13-15 참조).

그러므로 마리아는 교회로 하여금, 생명은 언제나 선과 악 사이의, 빛과 어둠 사이의 엄청난 투쟁의 핵심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용은 “해산하기만 하면”(묵시 12,4 참조) 삼켜 버리려고 합니다. 그 아기는 “때가 차자”(갈라 4,4) 마리아께서 낳아주신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모든 시대에 더욱더 많은 백성을 그분께 봉헌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 아기는 모든 사람들, 특히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모든 힘없는 아기들의 형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자께서는 사실 당신의 강생으로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 안에서 당신을 계속 계시하시며, 우리들과의 형제애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에 대한 거부는,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실제로는 그리스도께 대한 거부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시는 진리이며, 그분의 교회가 꾸준히 선포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천사는 다음과 같이 안심시키는 말로써 마리아에게 잉태를 예고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0.37). 실로 동정 성모님의 전 생애는 하느님께서 당신 가까이에 계시며, 그분께서 섭리로 보살펴 주신다는 확신으로 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해 두신 처소”(묵시 12,6)를 발견합니다. 광야는 시험의 장소이면서 또한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합니다(호세 2,16 참조). 마리아는 죽음과 싸우는 교회에 위안을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이십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성자를 보여줌으로써, 그분 안에서 이미 죽음의 세력들은 패배하고 말았다는 것을 보장해 줍니다. 생명과 죽음의 싸움에서 돌아가신 생명의 주님께서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부활의 광채 속에 당신 수난의 표시를 간직하신 채 살아계십니다. 그분 홀로 역사의 모든 사건의 주인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역사의 ‘봉인’(묵시 5,1-10 참조)을 떼시며, 시간 안에서, 시간을 초월하여 생명의 힘이 죽음보다 강함을 선포하십니다. 인간의 역사가 나아가는 목적지인 새 세상, “새 예루살렘”에는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4).

그리고 순례하는 백성, 생명의 백성이며 생명을 위한 백성인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에 대한 확신 속에서,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이신 마리아를 바라보며 나아갑니다(생명의 복음 104-105항).

[평화신문, 2014년 8월 3일, 지
영현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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