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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미국의 세 수녀회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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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8

[세계 교회는 지금] 미국의 세 수녀회의 참회

 

 

2000년 12월 3일 대림 첫주, 한국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쇄신과 화해’라는 짧은 문헌을 발표하였다. 같은 날, 미국 가톨릭사에서 가장 일찍 세워진 수녀회에 속하는 나자렛 애덕 수녀회와 로레토 수녀회, 성 카타리나의 도미니코 수녀회는 3,466만 명(2000년 인구조사)의 아프리카계 형제 자매에게 노예를 소유하면서 범한 잘못과 불의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참회 예식을 가졌다. 이 수녀회들은 1812년(앞의 두 수녀회)과 1822년에 창립한 이래 입회자들이 지참금의 일부로 데려온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 참회 예식을 준비하면서 이런 고백으로 인해 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더 이상 전례에 참여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흑인들은 이런 일들을 겪은 당사자로서, 백인들은 가해자로서 이미 모든 것을 알 만큼 알고 있었다. 미국의 국민에게 부족했던 것은 그런 불의한 사실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 알고 있는 불의를 극복할 정의로운 결단이었는데, 이 세 수도 공동체는 미국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빠져 없었던 것 가운데 하나인 이것을 미국 역사에,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선물하였던 것이다.

 

이 수녀회들이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축적된 ‘역사의 교육’에 순응하여 마침내 고백하기에 이른 이 ‘사회죄’를 당시 주류 교회는 어떻게 보았을까?

 

1839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매우 단호하게 노예화와 노예 매매를 단죄하였다. 그러나 정의를 향한 교회의 이 위대한 행군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교들이 미국 가톨릭 교회에 있었다. 예컨대 남캘리포니아 찰스턴의 존 잉글랜드 주교(백인)는 이 선언은 노예제도와는 무관한 것이라면서 즉시 이렇게 논박한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신학자들은 이 제도를 본래적으로 사악하고 자연법과 신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단죄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볼티모어의 마틴 스펄딩 대주교(백인)는 노예제도를 “커다란 사회악”이라고 말하면서도, 노예 해방은 “나라를 파괴하고 가난한 노예들 자신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는 괴변을 당당히 늘어놓으면서 반대하였다. 뉴욕의 존 휴즈 대주교(백인) 역시 “신자들은 신적인 스승(예수를 가리키는 표현)과 그분의 교회가 가르쳐온 현명하고 훌륭한 옛 길을 포기하도록 결코 설득당하지 않아야 하리라.”면서 노예제 폐지론자들을 “칼을 씌워 옥살이를 시키거나 정신병동에 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선언을 통하여 전달된 하느님의 정의의 목소리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폭력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당대에는 이런 폭력이 오히려 정상적인 사회 현실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1802년에 120만 명이던 흑인 노예가 노예 해방 전쟁이 시작되기 바로 전 해인 1860년에는 오히려 400만 명으로 증가한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착취 뒤에 바로 그리스도교의 왜곡된 인간 이해와 문명 이해가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미국 주교들이 그레고리오 교황의 노예제 폐지 호소에 정면으로 역행하였던 것은 바로 이런 백인 중심의 그리스도교 우월사상에서 비롯된 역사적 죄과를 단적으로 증거하는 일련의 사례들이다.

 

실제로 콜룸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마치 정복자가 국기를 꽂듯이 그 땅에 십자가를 꽂는 일이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을 스페인이나 포르투칼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소개하였다. 유럽인들이 선교를 한다며 예수 그리스도를 팔면서 자행하던 약탈과 착취와 살상을 직접 목격한 라스 카사스 주교는 이러한 만행에 신음하던 원주민들이 “아, 그리스도인들, 저 악한 자들, 저 잔인한 자들.”이라고 절규하였다고 전한다. 이 절규는 물론 아프리카 흑인들의 입에서도 그대로 흘러나왔다.

 

라스 카사스 주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 현장을 체험한 이후 회심한 1514년 이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자행한 파괴와 살상을 참회하고 이를 배상하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이러한 폭력과 파괴와 살상에 대한 정직한 참회와 배상이 없이는 하느님 앞에서 유럽 정복자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을 길이란 없다고 말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가해진 불의를 올바로 배상하지 않고 어떻게 교회가 예수의 제자 공동체일 수 있는가? 이런 회심 없이는 미국이 내세우는 하느님께 ‘축복받은 나라’라는 말은 자기 도취에 빠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그런 고백과 용서 청원과 그에 맞갖은 사랑의 실천 없이는, 죄 위에 쌓아놓은 것을 누리는 그런 행태로는 미국의 구원이란 없다. 오늘, 여전히 인종 차별과 경제 지배를 획책하는 이런 행태로는 미국의 구원이란 없다.

 

켄터키 주의 세 수녀회가 고백한 노예제의 불의와 이에 대한 용서 청원의 의미는 바로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라스 카사스 주교의 참회와 배상 호소에 대한 매우 뒤늦은 응답이라고 할 것이다. 성 카타리나의 도미니코 수녀회 총원장 조안 스캔런 수녀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타인의 과오를 용서할 능력을 갖고 있지만, 자신들 스스로를 용서할 수는 없다면서, 노예제도에 편승하여 저들을 희생시켰던 죄를 용서해 줄 것을 청한다고 하였다.

 

이 수녀회들은 이미 20세기에 들어서 흑인과 유색인종의 참정권을 위하여 투쟁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을 통하여 이들을 의식화하고, 인종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헌신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들은 소수 인종들을 위한 장학 재단을 만들어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이를테면 이런 배상의 정신으로 다져진 자기 성찰 능력으로 저들은 자신들이 범한 과오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러면서도 이들은 지금 가장 두려운 적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저들에게 가장 커다란 위험은 이 참회 예식이 또 다른 한 공허한 전시 행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건전한 영성을 갖고 살아온 수녀회들이 마련한 참회 예식이니만큼, 그렇게 쉽게 공허한 말잔치로 끝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은 지금까지 시도해 온 배상의 노력 이외에도 미국의 역사에서 착취와 차별의 불의 속에 소외당해 온 사람들의 미래를 돌보는 데 헌신하고자 세 수녀회 공동으로 재단을 결성하면서 이 참회 예식을 마감하였기 때문이다.

 

이 수녀회들의 용감한 자기 성찰과 배상 정신이 참으로 하느님의 정의 안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나라’로 거듭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빈다.

 

* 황종렬 레오 - 미국 뒤케인(duquesne) 대학 신학부 박사 과정. 「한국토착화 신학의 구조」, 「신앙과 민족의식이 만날 때 -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관한 신학적 응답」 등의 책을 썼다.

 

[경향잡지, 2001년 5월호, 황종렬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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