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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대사9: 브라질 한인 가톨릭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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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03 ㅣ No.118

[격동의 현대사 - 교회와 세상] (9) 브라질 한인 가톨릭 이민


1963년 첫 발... 1965년 5월 상파울루에 공동체 형성

 

 

- 한인 신자들과 함영상 신부가 한인 본당 설정 이듬해인 1976년 본당을 찾은 상파울루대교구장 동 에바리스토 안스 추기경을 영접하고 있다.

 

 

1963년 2월 12일. 브라질 상파울루 주 남동부 산토스 항. 세계적 커피 수출항이자 브라질 전체 수출입 화물의 60%를 소화하는 항구도시 산토스 항에 배 한 척이 입항한다. 이 배엔 당시 한국 정부가 추진한 제1차 한인 영농이민단 17가구 92명이 타고 있었다. 인구 430만 명의 도시는 이들을 말없이 품에 안았다. 이들 중 신자는 고계순(카밀로)ㆍ장상기(스테파노)ㆍ유재선(베네딕토)ㆍ안계승(요셉)씨 가족 등 네 가구였다. 이들은 훗날 탄생하는 '브라질 한인 가톨릭 공동체'의 뿌리가 된다.

 

17가구로 시작한 한인 브라질 이민은 올해로 45주년을 맞는다. 브라질 한인은 체류자를 포함해 현재 5만여 명으로, 대부분 브라질 최대 경제도시 상파울루에 뿌리를 내렸다. 처음엔 농업 이민이었지만, 지금은 상파울루 옛 중심가 봉헤치로와 브라스 지역에서 '의류' 관련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두 지역에만 한인들이 운영하는 매장은 1500여 개로, 여기에 원단 및 액세서리 업체까지 합치면 2000여 개에 이를 정도다. 한인 가톨릭 공동체는 2007년 12월 말 현재 본당 1곳에 공소 5곳, 신자 3885명, 사제 3명에 이르러 브라질 한인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 1965년 5월 9일 한인 가톨릭공동체가 첫 미사를 봉헌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당시 미사를 집전한 요시우라 신부다.

 

 

브라질 한인 가톨릭공동체 탄생

 

1964년 6월께, 브라질 한인 가톨릭 이주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로마에서 브라질 폰타그로사교구장 제랄도 펠란다 주교를 만난 게 계기였다. "한인들이 브라질로 이민을 갈 수 있겠느냐"는 노 대주교의 제안에 펠란다 주교가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상황은 급진전됐다.

 

노 대주교는 귀국하자마자 '한국 가톨릭 이민회'를 조직, 당시 가톨릭노동청년회(JOC)를 통해 이민자를 모집하고 윤을수(인보성체수도회 설립자) 신부를 브라질에 파견, 정착에 필요한 땅을 구입했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 측에서 이민 허가를 미루는 바람에 교회가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이에 교회는 장대익 신부를 가톨릭 이민회 지도신부로 임명, 이같은 어려움을 타개했다. 이민 선발대로 장상락(보나벤투라)씨가 1965년 12월 파견됐고, 이듬해 1월과 6월 장대익 신부 인솔로 김삼용(라우렌시오)씨 가족을 비롯한 69가구 500여 명이 3차에 걸쳐 브라질 남부 파라나 주 파라나과 항에 도착한다. 5차 농업 이민이 바로 가톨릭 이민단의 집단 이주다.

 

한인 신자들은 해발 893m 고원지대 폰타그로사 시 교외 산타마리아농장에 정착한다. 4차에 걸친 농업이민이 이미 실패한 터였기에 제5차 농업이주는 국제가톨릭이주협회와 연계, 파라나 주 1547.11㎢(468만 평) 규모 농장을 구입해 이주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가톨릭 이민단은 1~4차 이주 때와 달리 '영농이민'에 성공한다. 농장 내 목조건물을 개축, 성당을 만든 가톨릭 이주민들 39가구 230여 명은 여기서 미사를 봉헌하며 공동체를 이뤘다. 하지만 정착 이후 농장 토지소유권 문제가 불거지고 입주 시설 및 자녀들 교육여건이 미비해 신자들이 점차 흩어지기에 이른다.

 

- 1966년 산타마리아 농장에 세운 학교건물은 회오리바람에 붕괴되고 말았다. 거의 다 지은 건물을 다시 지어야 했지만, 가톨릭 이민단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농삿일과 양계 사업을 통해 정착에 힘썼다.

 

 

상파울루에 한인 가톨릭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965년 5월 9일의 일이다. 1차 입국자인 고계순씨 가족을 비롯해 신자 44명은 이날 상파울루 조앙 멘데스 광장 뒤쪽 썽 곤잘로스 성당에 모여 일본계 사제 요시우라 신부 주례로 첫 미사를 봉헌하고 공동체를 이룬다.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한 이주 여정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한인들의 브라질 이주는 1960년대로 접어들며 이뤄진다.

 

전쟁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한국 정부는 1962년 2월 해외이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자 해외진출을 꿈꾸며 지구 반대편 남미 여러 나라로 이주를 계획한다. 브라질 이주도 그 일환이었다.

 

'하란을 떠나는 아브람의 이주'를 떠올리며 브라질로 향한 한인 가톨릭신자들은 하느님 부르심에 '의탁하는 삶'을 살고자 공동체를 이룬다. 썽 곤잘로스 성당(1963~68), 노싸 세뇨라 다 빠스 성당(1968~71년), 보아 모르찌 성당(1971~72년) 등 일본ㆍ이탈리아계 성당 곁방살이를 거쳐 공동체 설립 10년만인 1973년 7월 13일 함영상 신부를 영입, 고계순씨를 초대 총회장으로 한인 가톨릭 공동체를 본격 출범하기에 이르른다.

 

본당 설정은 2년 뒤인 1975년 5월 6일에 이뤄졌다. 공식 명칭은 '여왕이신 마리아 한인 본당'

 

당시 상황을 함 신부는 「브라질 한인천주교회 35년사」에서 이렇게 보고한다. "지금까지 한인 공동체는 교회법 상 본당 자격을 갖추지 못해 소수민족 교회단체로만 취급돼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식 본당으로 승격돼 독립하게 됐음을 명심하고 모두 본당 발전에 분발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처음 먹었던 초지를 굽히지 말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비록 영농이민은 10년도 안 돼 무산되고 말았지만 한인 이주민들은 가톨릭 공동체로서 새롭게 태어난다. 1979년 말 신자 수가 322가구에 1587명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사랑으로 하나되어' 뿌린 복음의 씨앗

 

- 1960년대 말 브라질 한인 가톨릭 이민단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당시 폰타그로사교구장 펠란다(가운데) 주교.

 

 

1982년 4월 18일, 상파울루 이삐랑가 구역 아고스칭뇨 고메스 313. 대지 980㎡(296.45평) 공간에 건평 965㎡(291.91평) 규모 성전이 세워진다. 비록 공장 겸 창고로 쓰던 건물을 개축한 성전이지만, 외국 성당에서 곁방살이를 해오던 한인 공동체로서는 경사 중 경사였다. 당시 상파울루대교구장 동 에바리스토 안스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 축복식은 그래서 '눈물의 봉헌식'이 됐다. 이 성당은 20년 뒤 봉헤치로에 새 성전을 짓고 이사할 때까지 한인 복음화의 핵심으로 자리했다.

 

성전 봉헌 이후 브라질 한인본당은 활기를 띤다. 1983년에는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하고, '대건한글학교'를 개설해 신자, 미신자를 가리지 않고 한글을 가르친다. 또 1984년에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행사에 박명순(스테파노)씨 등 대표단 60여 명을 파견해 순교 성인들의 얼을 이어받는다. 아울러 포르투갈어 교육에도 눈을 돌려 한인 이주민들이 언어 장벽을 넘는데도 기여한다.

 

1990년에 접어들며 브라질 한인본당은 또 대건장학회를 설립, 매달 12명에게 미화 100달러를 지원했고, 1991년에는 성당 옆 고물상 부지를 6만 달러에 매입해 청소년전용축구장으로 개방하기도 한다. 또 본당 교우들은 물론 교포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쌀을 400포 가량 구입, 누구든지 원하는 이들은 필요한 만큼 가져가도록 함으로써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로서 위상을 세웠다.

 

지난 5월 선종한 장대익 신부는 2001년에 펴낸 자신의 회고록 「남은 것은 당신뿐입니다」에서 "농삿일도 힘겨운데다 모기와 독충에 시달려 앓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면서 "특히 상파울루 시에 살던 한인 신자들과 함께 주일학교도 만들고 신심단체도 조직해 한인 가톨릭공동체 활성화에 힘을 기울인 게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한 바 있다.

 

[평화신문, 2008년 12월 28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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