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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칼럼: 안식일 - 소비사회에서 생태적으로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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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23) 안식일 : 소비사회에서 생태적으로 살기
‘소비’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문제점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자본주의 경제는 필연적으로 소비사회를 만들어낸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물적 성장과 여기에 필요한 생산의 지속적인 증가를 요구하며, 이것은 다시 소비의 지속적 증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소비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 비례한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바우만의 지적대로, 쇼핑몰은 오늘날 사람들의 성전이 되었다. 사람들은 물건으로 가득한 거대한 쇼핑몰을 거닐며 순례한다.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사람들은 소비에 몰두한다. 아니, 장악되었다.
소비주의의 만연은 심각한 생태적 오염과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다. 생산과 소비의 증가는 폐기물의 증가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만 쓰고 버린 일회용 종이컵은 무려 230억 개다. 재활용 비율은 1%에 그쳤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은 대략 2~3년 주기로 교체하도록 제작된다. 그만큼 자주 전자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연간 배출되는 전자 쓰레기는 2000~5000만 톤에 달한다. 이미 전 세계의 바다 여기저기에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만들어졌다. 태평양에는 한반도의 여섯 배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집인 지구가 점점 더 엄청난 쓰레기 더미”로 변하고 있다.(「찬미받으소서」 21항)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는 생활양식과 폭력의 관계를 꿰뚫어 보았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소박한 자급자족의 생활양식은 비폭력적 삶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반면, 국제 교역을 통한 지나친 풍요의 추구는 갈등과 폭력의 위험을 늘린다. 미국을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기간제를 비롯한 비정규직의 확산은 이제는 사람도 “사용하다가 그냥 버리는 소모품”에 속하게 되었음을 알려준다.(「복음의 기쁨」 53항)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다고 하셨고, 피조물들이 번성하라며 축복해주셨다(창세 1장). 그러나 인간이 만든 소비사회는 전 세계에 파괴적 영향을 끼치며 창조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강박적 소비주의”, “집착적 소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소비의 자유를 누리는 한” 자유롭다고 착각한다(「찬미받으소서」 203항).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할수록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불안과 위기의식이 고조된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자신을 몰아 부친다. 기약도 없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노예가 되고 있다.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독려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소비사회의 흐름을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활동의 의미를 일할 때가 아니라 일을 멈출 때 비로소 제대로 깨닫는다. “관상하는 안식”은 세상을 “일구고 돌보는” 노동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 맹목적이고 “공허한 행동주의”와 “배타적 개인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끝없는 탐욕과 고립감”을 막아준다.(「찬미받으소서」 237항; 창세 2,5 참조). 안식일에 소유와 소비를 위한 활동을 멈춤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벗어나 밖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우리는 땅을 쉬게 하고, 땅의 결실을 사회적 약자들과 나눌 수 있게 된다.(71항) 이렇게 안식일은 소비사회의 파괴적인 영향을 극복하는 생태적 회개의 발판이 될 것이다.(217항) 그래서 안식일은 우리 모두에게 거룩한 축복의 시간이다.(창세 2,3 참조)
[가톨릭신문, 2018년 1월 7일, 조현철 신부(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0 86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