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김대건안드레아 사제......20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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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7-01 ㅣ No.760

 

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 순교자 대축일

(7월5일은 1925년 79위 시복일)

              2역대 24,18-22     로마 5,1-5     마태 10,17-22

      2006. 7. 2. (주일). 무악재-축일이동

주제 : 본보기가 된다는 것

찬미 예수님!

2006년 한 해의 절반을 지내고, 나머지 남은 시간을 어제부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달력을 보거나 셈할 때에는 후반기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만, 실제 느낌에서는 새롭다고 하는 것이 별 감흥없디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7월 첫째주일을, 우리 교회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로 지냅니다.  그래서 무더운 시기이기는 합니다만, 이번 주간에는 부제서품식과 사제서품식이 있습니다.  우리 본당에는 해당자가 없어서 그 분위기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만, 우리 공동체에도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와 정성을 모아야 할 일입니다.


처음에는 별 의식 없이, 자신의 삶에 성실하게 살았던 것이 훗날 사람들에게 커다란 본보기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기억하는 사제 김대건 성인의 경우가 그 일에 해당할 것입니다.  1821년에 태어나 20살도 되기 전에 머나먼 유학길에 올라서 10여년의 공부를 하고, 사제가 된 다음에 겨우 1846년 9월 순교할 때까지 1년 남짓 사제로 살았던 사람이 바로 김대건이었습니다. 


삶의 길이로 계산한다면, 그 1년 동안 김대건 사제가 당시 조선교회를 위해서 남긴 흔적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김대건안드레아보다 늦게 되기는 했습니다만, 20여년간을 활동하다 땀의 순교자가 되었던 ‘최양업 토마’사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물론 교회조차도 그를 성인이나 복자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쩌면 1등만을 기억하고 2등이나 그 다음 사람들은 기억에서 잊어버리거나 지우려고 하는 일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1등이 의미있는 것은 2등이 있기 때문인데, 현실은 오로지 1듬만 기억합니다.


신앙생활이 쉽지는 않습니다.  지난 4월 하순부터 6월 하순까지 두 달에 걸쳐서 우리 본당 공동체의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환영해준 집도 있었지만, 차갑게 냉대한 집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가정방문을 오지 말라고 거부한 가정도 있었고, 내가 알아서 잘할텐데 신부가 우리 집에 무엇때문에 오느냐....관심가질 필요 없지 않느냐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숫자가 많기에 다양한 생각을 만날 수는 있지만, 예상외의 모습을 많이 본 것이 이번 가정방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듯이, 신앙을 순수하게 드러내려는 사람들 앞에는 많은 고난이 따라옵니다.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실현하려는 일에는 반드시 ‘악한 세력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숨겨진 본성인 마각(馬脚, =one’s true character)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습이 본래 그런 것이려니 하는 생각으로 물러설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지금 당장은 악한 세력이 판을 치는 것 같아도 그 악의 세력이 선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오늘 복음의 끝에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십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 성실히 하는 삶에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은 구약의 세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쳤던 즈카르야 사제는 바로 성전 마당에서 하느님을 안다는 사람들,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 들어봤을 사람들의 손으로 던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거부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훗날 다가온 삶의 결과는 국가의 멸망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 역사의 초창기에 다가왔던 박해와 신앙탄압의 결과는 결국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 종으로서, 노예로서 삶이 바뀐 것과도 비슷한 일입니다.   부정적인 삶의 결과를 말씀드리는 일이 마음 편하지는 않아도 그것은 현실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드러내는 자세는 어떤 결과를 맺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인으로 합당하게 가져야 할 삶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다.  모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변화는 내가 참여하는 데서 바뀔 수 있습니다.  내가 좀더 낫게 살 수 있다면, 우리가 드러내는 노력에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자세가 당장 내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설명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똑같지 않은 삶에 다른 사람이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그 일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의 수호 성인에게 기도하고 도우심을 청한는 날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서 청원하는 기도가 어떤 결과를 맺을지는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삶에서 우리가 갖는 작은 희망에서부터 우리 삶은 달라집니다.  세상 삶에서 성실하게 살았기에, 지금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에 함께 하실 성인들에게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시라고 청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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