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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유럽 성지순례: 벨텐부르크, 플랑크슈테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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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83

[유럽 성지순례] 벨텐부르크, 플랑크슈테텐 수도원


전통 이콘화법으로 성모마리아 일생 담아 장식

 

 

1. 벨텐부르크 수도원 전경. 도나우강 협곡에 있는 이 수도원은 바이에른주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2. 벨텐부르크 수도원 성당 중앙 제대에 설치돼 있는 미카엘 천사 기마상. 황금 갑옷을 입고 있는 이 천사 기마상을 보려고 연간 50여만명의 순례자들이 이 곳을 찾고 있다.


3. 플랑크슈테텐 수도원 성당에 설치돼 있는 피에타상.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과는 달리 이 피에타상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이며 아들의 죽음을 절규하는 성모 마리아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4. 플랑크슈테텐 수도원 경당에서 순례단이 함께 한 김연범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순례단은 이 미사에서 화해하고 일치를 이루었다.

 

 

아이히슈테트에서 도나우강 협곡에 자리잡은 벨텐부르크 수도원으로 향했다. 617년에 세워진 이 수도원은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벨텐부르크 수도원은 1720년경 아삼 형제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새로 건립된 수도원 성당에 설치돼 있는 미카엘 천사상의 중앙 제대로 유명한 곳이다.

 

요한 묵시록 12장의 내용을 형상화한 중앙 제대는 미카엘 천사가 말을 타고 용을 무찌르며 죽음의 위험에 처한 한 여인을 구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중앙 제대를 보기 위해 연간 50여만명의 순례자들이 이 수도원을 찾아온다고 한다.

 

유서깊은 이 수도원을 방문하기 위해 순례단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알트밀 국립공원을 지나 도나우강 협곡을 따라 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목가적 분위기의 전원도시를 지나 눈 덮힌 숲속에서 먹이를 찾는 산짐승들을 뒤로 하고 도나우강 협곡으로 접어들었다.

 

무리를 지어 강 위에 떠있는 오리들 모습이 무척 평온해 보였지만 제법 물살이 셌다. 버스 기사는 "도나우강은 봄이면 산에서 녹은 눈 때문에 자주 범람을 하는데 이상 기온으로 2월인데도 날씨가 따뜻한 날이 많아 순례단이 방문하기 1주일 전에도 홍수가 났다고 했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도로도 해빙 탓인지 곳곳에 낙석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입구 정류장에 버스를 세워두고 안전을 위해 10여분을 걸어서 수도원으로 갔다.

 

수도원에 들어섰을 때 순례단을 안내하기로 한 리오 폴 수사 신부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반갑게 맞아준 폴 신부는 제일 먼저 수도원 성당으로 순례단을 안내했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면에서 금빛 찬연한 광채가 눈을 자극했다. 바로 중앙 제대에 설치돼 있는 성 그레고리오 기마상에서 비치는 빛이었다. 난생 처음 기마상으로 된 제대를 본 순례단은 기도하는 것조차 잊고 제대 주변으로 몰려가 한참을 쳐다보았다.

 

몇번의 헛기침으로 순례단의 시선을 돌린 폴 신부는 신자석에 앉으라고 했다. 우리는 촌티(?)를 보인듯 해 얼른 자리에 앉았다. 무안해 하는 순례단의 모습을 본 폴 신부는 빙그레 웃고는 "이 곳을 찾아오는 순례단 모두가 여러분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폴 신부는 "방금 본 제대는 요한묵시록 12장의 내용을 묘사한 것이며,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1492년 콜롬부스와 함께 성마리아호에 승선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던 성베네딕도 수도회 수사들을 그린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또 "천장화는 수도자들이 세속적 가치와 우상숭배, 자만을 거부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이 있는 천상교회를 갈구하는 모습을 표현 것"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설명을 하면서 폴 신부는 환영의 뜻으로 그레고리오 성가 2곡을 불러주었다. 순례단도 성가곡 '주 하느님 크시도다'를 부르며 화답했다.

 

순례단은 마지막 순례지로 도나우강변 줄츠 계곡 위에 세워진 플랑크슈테텐수도원을 방문했다. 1129년 그뢰글링과 돌른슈타인 두 백작이 아이히슈테트 교구장 직속 수도원으로 설립한 이 수도원은 오늘날 유럽 교회에서 '개혁 수도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벨텐부르크 수도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순례단을 위해 한 노(老) 수사 신부가 마중나와 있었다. 두 개의 둥근 종탑이 있는 수도원 성당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기둥), 고딕양식(제단), 바로크 양식(천장화)이 혼합돼 있었다. 

 

- 플랑크슈테텐 수도원 성당 지하 경당 내부.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그린 이콘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성당 지하 경당은 유럽 여느 수도원과 대성당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이콘화'로 장식돼 있다. 동방교회의 전통 이콘화법 그대로 성모 마리아 일생을 그려놓은 이콘화는 우리말로 '마음에 그리는 상'이라는 뜻 그대로 성스러운 느낌을 전해주었다.

 

노 신부는 "850여년 전부터 수사들은 이 곳 수도원에서 자연과 하나되어 하느님을 찬미해 왔고 지금도 하느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와 대화하며 생태계를 살리는 생명의 교향곡을 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노 신부는 "현대 사회의 요청을 직시해 창설자인 성 베네딕토의 수도정신을 다시 새롭게 찾아 구현해가기 위해 플랑크슈테텐수도원은 1990년부터 직업학교 등을 폐쇄하고 '환경과 유기농'에 뛰어드는 개혁을 단행했다"며 "여러분도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선 지금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채워라"고 조언해 주었다.

 

수도원을 둘러본 후 순례단은 경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다. 제대 주위로 둘러 서서 서로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노래하고, 얼싸안으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린 꼬마들은 엉엉 소리내면서 울었다. 눈물의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 '화해'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화해'. 미사는 순례단 모두를 변화시켰고 화해하게 했다. 누가 잘잘못을 해서가 아니다. 모두에게 아낌없이 자기를 베풀고 상대를 그대로 받아주는 화해였다.

 

평화신문이 주최한 첫 유럽 수도원 순례는 그렇게 순례단 모두가 하나되는 화해의 예식으로 끝났다.

 

[평화신문, 2004년 4월 25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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