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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을 살리자: 무엇이 무의미한 연명의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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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공동 캠페인 생명을 살리자] (6) ‘무엇이 무의미한 연명의료인가?’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에게 임종시기만 늦추는 연명치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계단에서 가슴통증을 느끼며 쓰러진 40대 염 루카씨. 역무원은 황급히 역 내에 있던 심장제세동기 전원을 켜고 염씨의 가슴에 패드를 붙이기 위해 단추를 풀었다. 그런데 가슴에 조그맣게 ‘나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새겨진 문신을 발견했다. 제세동기를 사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경우 심장기능을 되살리는 것이 ‘무의미한 연명의료’일까?
40대 이 데레사씨는 5개월 전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최근 통증이 심해 정신을 잃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입원을 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주치의는 지난주에 이미 이씨와 그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도 전달했다. 이른 새벽, 데레사씨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급기야 심정지가 왔다. 비상벨이 울리고 의료진들이 몰려들었다. 이 경우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염 루카씨를 위한 심폐소생술은 즉각 실행해야 한다. 그는 임종기 환자가 아니며, 갑작스럽게 응급상황과 맞닥뜨렸을 뿐이다. 이 데레사씨는 말기암으로 인해 임종기에 이르렀다는 의학적 진단을 받은 환자다. 사망에 임박한 단계에서 임종과정의 기간만 연장하게 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시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사전에 해 둘 수 있다.
연명의료 시범사업 시작
정부가 10월 23일부터 ‘연명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면서 연명의료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법적 개념과 취지 등에 관해 올바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 각계에서는 자칫 생명경시현상이 악화될 우려도 표명하고 있다.
이 사업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을 앞두고 실시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2016년 2월 제정,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 2월부터 본격 시행한다. 시범사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과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 등 2개 분야로 나눠 진행한다.
이에 관해 우선 분명하게 인식해야할 부분은, “이 문서들은 죽음을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실행하거나 실행하지 않을 의료행위를 판단할 때 의료진이 고려해야할 환자의 의향을 명시하려는 것”이다.
‘연명의료’는 의학적 처치로는 회복할 수 없어 사실상 임종을 연장하는데 쓰이는 처치를 말한다.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는 ▲ 심폐소생술 ▲ 인공호흡기 착용 ▲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 등이다.
특히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 행위와 영양분 및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을 중단해선 안 된다.
또 법에서 사용하는 ‘임종과정’이라는 용어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자”이다.
대상과 방법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밝힌 통계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2009~2013년 우리나라 말기암환자의 97.7%가 임종 직전까지 완치를 위한 ‘적극적 치료’에 갖가지 노력을 쏟아 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치료할 수 없는 임종기 환자에게까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실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 서류들은 보건복지부에 정식 등록해야 법적으로 유효하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등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해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을 말한다.
생의 말기에 실행하거나 실행하지 않을 의료행위는 ‘균형적 의료행위’와 ‘불균형적 의료행위’로 구별한다. ‘균형적 의료행위’란 환자의 상태에 비추어 환자에게 도움이 되며 과도한 부담이나 부작용을 동반하지 않는 적절한 의료행위를 가리킨다. 하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땐 각종 의료행위들이 균형적이 될지 불균형적인 것이 될지 미리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교회는 “상태가 위중해지기 전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도록 담당의사에게 요청할 것”을 권고한다. 의료행위의 무익성을 결정해야 할 때 의료인이 지식과 양심을 통해 진실되게 행동하는 부분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원장 정재우 신부는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행위인지를 식별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담당의사가 서로 대화하고 적절한 돌봄이 이뤄지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말기환자의 생명권을 실현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환자를 죽이지 않고, 불필요하고 무익한 의료행위를 고집하지도 않으며, 환자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
연명의료에 관한 개인 의사를 밝히기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 수용하는 노력이다. 용어 사용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0월 23일 시범사업이 시작되면서 일반 언론 매체들은 너도나도 ‘존엄사 가능해졌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웰다잉법’, ‘존엄사법’ 등은 올바른 개념도 올바른 표현도 아니다. ‘존엄사’라는 표현이 문제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존엄사’는 ‘안락사’와는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존엄사’의 경우, 명칭과는 달리 “환자를 죽게 만드는” 내용을 종종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죽음은 어떤 사람이 살아온 순간을 반성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으로서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며, 선물로 받은 생명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사건으로서 하느님과 맺어온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2017년 생명주일 담화) 또한 “생명권은 말기환자가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권리”(「의료인 헌장」 119항)다. 죽음은 생명의 탄생과 늙어감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현상으로서, 그 자체로는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참된 의미의 존엄한 죽음이란 자신에게 다가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을 시행하고 호스피스 제도화 및 활성화 등에 힘을 싣는 것도 ‘잘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한’ 지원이다.
특히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겸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동익 신부는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고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으로서, 실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며 늘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수용하는 교육과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위령성월을 지내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조언한다.
[가톨릭신문, 2017년 11월 5일, 주정아 기자] 0 991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