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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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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11 ㅣ No.1448

[인권주일 특집]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


아직도 한센인에게 다가가기 힘든가요

 

 

“죄송한데 방이 없습니다. 숙박예약을 취소하겠습니다.”

 

“저희 가족들이 다른 투숙객들에게 아무런 불편이나 해가 되지 않는데요.”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성라자로마을 원장 한영기 신부와 제주도의 한 호텔 직원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한센인에 대한 편견 아직도 여전

 

성라자로마을에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노약한 한센 병력자 29명이 요양하고 있다. 성라자로마을 ‘가족’으로 불리는 한센 병력자들이 난생 처음으로 올해 10월 17~19일 여행을 떠났다. 가슴 설레는 여행이었다. 출발을 앞두고 호텔에 숙박 예약을 먼저 했다. 예약 후 한영기 신부가 고민 끝에 “저희가 한센병을 앓았던 분들을 모시고 갑니다”라고 호텔 측에 얘기하자 “죄송하게 됐습니다.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이 이미 예약을 다 했는데 업무상 착오가 있었습니다. 성라자로마을 숙박예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라는 겉으로는 친절한 듯하지만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한 신부는 전남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 병력자들이 줄곧 이용해 온 제주도의 다른 펜션으로 숙소를 다시 정해야 했다. 

 

성라자로마을 가족들의 제주도 여행은 행복과 환희가 넘치면서 세인들의 편견과 차별이 교차하는 순간도 곳곳에 숨어 있었다. 어느 식당에 들어갔을 때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찌개를 시켰다. 식당 주인은 한센 병력자들이 일행 중에 포함된 것을 알아보고 한 신부 몫으로 찌개를 따로 내오려 했다. 한 신부가 “찌개를 작은 그릇에 담으면 금방 식어서 맛이 없어요. 우리 가족들 다 같이 먹을 테니 큰 그릇 하나에 담아 주세요”라고 요청하고 나서야 식당 주인은 찌개를 큰 그릇에 모아 내왔다. 

 

성라자로마을 가족들의 제주도 여행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한센인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은 편견과 차별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집약된다. 편견은 차별을 키우고 차별이 다시 편견을 키우는 역사가 수천 년을 이어왔다.

 

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마을 가족들이 올해 10월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의 모습. 성라자로마을 제공.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집을 찾으셨다

 

한 신부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에서 교회와 사회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센인을 ‘아웃사이더’로 고착화시키는 데에는 교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과거 오랜 세월 ‘나병’으로 불리던 병명은 이제는 의학계에서 학술용어로만 남아 있을 뿐 의학계를 제외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한센병’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아 널리 쓰이고 있다. 나병이라는 용어가 지닌 편견과 차별적 요소가 너무나 뿌리 깊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인류 최초로 1873년 나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사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1841~1912)의 이름을 딴 새로운 병명으로 부르게 됐다. 

 

그러나 성경에는 ‘나병’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을뿐더러 나병이 던져주는 성경적 이미지는 참혹함과 격리, 멸시와 저주, 한 마디로 ‘하늘의 벌’, ‘천형’(天刑)이다. 구약 역대기 하권 26장 20절에 등장하는 ‘아자르야 수석 사제와 모든 사제가 그를 돌아보다가 이마에 나병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재빨리 그를 그곳에서 내몰았다. 우찌야 자신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주님께서 그를 치신 것이다’에서 나병을 하느님의 처벌 곧 천형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약 여러 곳에서 한센병에 대한 일관된 인식이 발견된다. 

 

신약에도 나병은 곳곳에 등장하지만 구약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예수님이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는 말로 나병 환자를 깨끗이 낫게 해준 기적(마태 8,3)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젊은 시절 한센병을 앓다 완치된 60대 초반의 한 신자는 “예수님이 나병을 낫게 했다는 기적의 결과만큼 이 성경구절 앞 대목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는 장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놓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전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고착화된 통념을 파괴하는 행위다.

 

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마을 가족들이 올해 10월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의 모습. 성라자로마을 제공.

 

 

국내 한센인은 대부분 치유된 ‘한센병력자’

 

예수가 나병 환자의 집을 찾아간 때로부터 200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한센인들은 얼마나 되고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약 시대를 살고 있을까? 신약 시대를 살고 있을까?

 

한국한센복지협회와 성라자로마을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국내 한센사업 대상자는 1만402명이고 이 가운데 치료를 받고 있는 ‘양성 한센인’은 9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99% 이상은 한센병이 치유된 ‘음성 한센병력자’다. 거주형태별로 보면 국립소록도병원을 포함한 성라자로마을, 산청성심원, 다미안의집 등 생활시설 7군데 888명, 전국 정착마을 87개소 3301명, 재가(在家) 6213명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74세로 한센병은 한국에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1년 동안 발병하는 한센인은 평균 10명 안팎이다. 이마저도 리팜피신 등 치료약을 투약하면 단기간에 완치되고 전염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 한센병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센병은 제3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는데 한영기 신부는 이에 대해 “쉽게 말하면 이제 한센병의 위험성이나 전염성은 감기보다도 못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풀이했다. 

 

한센병의 의학적 치료는 완료단계에 진입한 반면 사회적 치료는 첫 발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신부는 “한센인들이 사회에서 오늘날에도 비한센인들로부터 분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은 교회라고 다를 바가 별로 없다”며 “이성으로는 가깝게 다가가려 해도 한센인들 앞에서 몸이 움츠러드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나사업연합회장 오상선 신부


“우리가 도움을 받았듯 중국 · 동남아 한센병 치유에도 관심 갖길”

 

한국가톨릭나사업연합회 회장 오상선 신부(작은형제회)는 “우리나라에서 한센병은 완치 단계에 들어왔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지만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은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한센인 요양시설 산청성심원 원장과 시설장으로 2009년부터 최근까지 9년간 일하며 한센인들의 인권과 생활 향상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는 “산청성심원 원장으로 일할 때 한센인 병력자들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는데 가톨릭교회가 한센인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한센인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이웃이라는 사실을 교회가 나서서 홍보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과거 우리가 가난할 때 이탈리아 등 외국이 우리나라 한센병 치유에 원조를 했던 것을 기억하고 우리 사회와 교회도 중국과 동남아 등의 한센병 치유를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2월 10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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