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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4: 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성교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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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7 ㅣ No.1452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4) 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성교육인가?


미디어가 전하는 ‘성의 환상’…들춰 보면 ‘잔혹 동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청소년 성문제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지난해 서울 여고생 2043명을 대상으로 성 건강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성병 고민이 있다는 응답도 9.9%에 달했다.”(경향신문 2013년 8월 2일 자 기사 중에서)

 

여고생의 10%가 성병 고민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여고생 중 최소 열 명 중 한 명은 성관계를 하고 있음을 뜻한다. 성병을 의심하는 상황을 보면, 파트너가 여럿일 가능성이 높다. 백의 하나, 천의 하나가 특정 행동을 하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다. 그 아이 하나만 잘 가르치고 돌보면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열의 하나가 특정 행동을 한다면 이것은 문화의 문제, 구조의 문제다. 이는 콘돔을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 뿌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접근해야 하는 중대 사안이다.

 

“청소년 상담 최다 고민은 여친 임신 여부. 고민 상담의 80%는 여학생인데 가장 많은 상담 내용이 원치 않는 성관계 요구에 대한 대처법이다. ‘사귄 지 넉 달이 됐는데 사랑하면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다른 커플들은 다 한다’라며 압박을 준다는 고민이다.”(동아일보 2016년 1월 6일 자 기사 중에서)

 

상담 기관에 여친의 임신 사실을 털어놓은 남자 중고생들이 많다는 사실과 여친에게 성관계를 강요하는 남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사귄 후 한 달 정도면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성을 배워 버린 세대에서 쉽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연애=성관계”, “이성 교제=성관계”는 성을 상품화하는 상업적 영상물이 청소년들 무의식에 각인시킨 성적 가치관이다. 이런 생각이 말과 행동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성관계 문턱을 넘는 청소년들이 이전의 인쇄문화 시대와 비교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그 결과 청소년들 사이에서 임신, 낙태, 미혼모, 성범죄 등의 사건이 급증하는 것은 당연한 인과율(因果律)이다.

 

 

피임 교육이 정답일까

 

이런 병리 현상에 대해서 상당수 언론은 성교육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청소년 피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는다. 학교 보건실에 콘돔을 국가 예산으로 구입ㆍ비치하고 보건교사가 그것을 무료로 나눠 줘야 한다는 뜻이다. 피임(避妊), 책임을 피하는 기술을 가르치면 정말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 피임 교육은 표층적인 대증요법(對症療法)이지, 절대로 근원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청소년 성 문제가 왜 이렇게까지 악화되었을까? 이는 우리 사회의 사회, 문화, 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것이 원인이다’라고 하나를 특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해서 무엇이든 잘 흡수하고 내면화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성을 쾌락 일변도로만 주입하는 미디어에 큰 원인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먼저 줄 일이 아니다. 미디어에 그 원인이 있기 때문에 미디어에 근거한 성교육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처방이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성교육이란? 

 

그래서 필요한 대안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미디어가 참말을 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를 잘 분별해서 참말이면 받아들이지만, 거짓말일 경우에는 그것이 왜 거짓인지 현실과 비교ㆍ대조하여 비판하고, ‘진실은 이것이다’라고 주체적인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교육이 바로 이것이다. 이를 성교육으로 가져오면 ‘영화, 드라마, 뮤직 비디오, 광고, 포르노에서 보여 주는 대로 연애하고 성관계까지 하면 정말로 그런 상업적 영상물이 보여 주는 것처럼 낭만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따져보게 하는 교육이 미디어 리터러시 성교육이다. 생물학적 성교육이 아니라 인문학적이며 통합적 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친이랑 하기로 했어요. 피임 방법 좀요. 전 16살 여잔데요, 제가 긴 고민 끝에 남친이랑 그걸 하기로 했는데욥, 저 처음인데 야동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면 되나요? 괜찮겠죠? 좀 무섭긴 해요. 그리고 콘돔 말고도 피임 방법 좀 자세히 알려 주세요!”

 

포털 사이트 10대 성 고민 게시판에 가면 이런 글들이 수두룩하다. 중3 여학생은 글을 쓴 후 남친과 성관계를 했을까? 필자의 교육 경험상 이 여학생은 성관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성관계 이후 이 여학생은 남친과 신혼생활 같은 깨가 쏟아지는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성관계 후에 여학생에게는 지옥문이 열린다. 피임해도 ‘임신일까? 아닐까?’ 한 달에 한 번씩 엄청 불안해할 수밖에 없고, 또 남친은 지속적으로 성관계만 강요하지 여친과 고민을 나누면서 책임을 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학생들은 이런 진실을 잘 모른다. 왜 모를까? 가르쳐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에서는 성관계 수백 번을 해도 절대 임신하지 않는 행복한 모습만 보여 주고, TV의 피임약 광고나 피임 교육 단체들이 하는 성교육은 콘돔 피임약만 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환상을 반복해서 주입하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받기가 상당히 어렵다.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데, 피임 일변도의 편향된 이야기만 듣고 등 떠밀리듯이 성관계 문턱을 넘고 나서 고통의 바다에 빠지는 여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많이 예상했어요. 임신한 거 아닌가, 계속 걱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딱 보니까 테스트기에 딱 두 줄이 나오는 순간 진짜 그걸 보고 막 울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짜 많이 울었어요. 애를 지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공부도 못하고, 진짜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 그 시간이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나와서 멍하게 있으니까 혼자 있는 느낌, 그냥 세상에 저 혼자 있는 것 같고. 진짜 뭐하고 살아야 하나?”(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강요된 낙태편 중에서)

 

고3 여학생의 절절한 고백인데, 예능 위주로 편성된 방송에서는 이런 진실을 잘 보여 주지도 않고, 황금 시간대를 피해서 밤 11시에 방송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볼 수도 없다. 

 

서울 도심에 자동차를 몰고 나가면 쉽게 주차할 곳이 있을까? 거의 없다. 드라마 주인공은 어떤가. 그들에게는 주차할 곳이 항상 있다. TV가 보여 주는 세상과 실제 세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청소년들에게 분명히 인식시켜주는 교육이 꼭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영상물이 성을 극심하게 왜곡하기 때문에 성교육에 미디어 리터러시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상업적 영상물이 보여 주는 성과 실제 성이 다르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려 주는 교육이 피임 교육보다 우선돼야만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25일, 이광호 베네딕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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