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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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짝퉁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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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7 ㅣ No.479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24) 짝퉁 성인

 

 

Q. 제 대모님은 아주 열심한 신앙인입니다. 기도와 봉사를 많이 하십니다. 대모님은 순교자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며, 당신이 즐겨 묵상하는 구절은 마르코복음 8장 35절에 나오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왠지 사람들이 저희 대모님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고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저 역시 대모님을 멀리서 뵈면 존경스러운데 가까이서 지내다보면 마음에 부담을 느낍니다. 이런 제 마음이 마귀의 유혹 때문에 그런가요?

 

 

A. 어느 종교이건 아주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본당 기둥 역할을 하는 귀한 분들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왠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상태가 건강하지 못한 탓에 그런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 증상이 도덕적 자학증(moral masochism)입니다. 도덕적 자학증에 걸린 분은 세상의 짐을 자신이 다 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늘 입버릇처럼 “인생은 숙제이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고행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분들과 식사할 때는 맛있게 먹는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왜냐면 온종일 세상 걱정을 해서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을 웃지도, 맛있게 먹지도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생각이나 말만으로 그치지 않고, 늘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만을 위해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줄 것이라면서 힘든 일은 도맡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로부터 노력한만큼 인정받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분들 무의식 안의 생각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무의식 중에 희생을 대가로 애정을 갈구하고, 희생함으로써 자신이 상대방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때로는 희생하는 자신 삶의 무게를 상대방에게 씌움으로써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마음은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멀리서 존경은 하는데 편치않은 감정을 느끼면서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덕적 자학증이란 자기희생을 함으로써 남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고 남들이 자신을 필요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분을 일컬어 ‘짝퉁성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짝퉁성인의 삶을 오랫동안 하면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무리해서 병이 나기 쉽습니다. 따라서 이분들은 자신 삶의 내용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 생물학적 리듬을 수용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의 리듬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 중에도 정신이 느슨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는 분들은 자신의 이런 리듬을 게으른 증거라고 하면서 스스로 채찍질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한순간 정신이 번쩍 들 뿐 시간이 가면서 더 지쳐가고 나중에는 파김치가 되고 맙니다. 이런 신체 리듬에 저항하기 보다는 이 구조를 내면화하고 수용하며 그런 가운데 나름 최선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두 번째는 목숨 걸고 신앙생활 하려는 분들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데,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건전한 자기 인정이 필요합니다. 건전한 자기인정이란, 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잘하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일컬어 ‘기능적 평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능적 평가를 하다 보면 과소평가하기 쉽고 무력감에 빠져 자기 비난만 거듭하는 삶을 살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존재 자체가 창조적 존재입니다. 왜냐면 창세기에서도 언급됐듯 사람은 하느님 모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적인 분이시기에 그 모상인 사람 역시 창조적 존재입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존재 자체가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삶을 살고 성숙해갑니다.

 

세 번째, 무슨 일이나 그러하듯 지나치게 무리를 하는 것은 부작용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나름 체력을 갖고 있고 체력에 맞춰 운동하듯, 신앙생활 또한 등급에 맞춰 무리하지 않게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약이 되는 삶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도 과용하면 독이 되듯, 신앙생활 역시 지나치면 자신에게 해가 되기도 합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09년 10월 18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doban87@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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