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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17: 폭력을 낳는 불평등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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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08 ㅣ No.651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7) 폭력을 낳는 불평등은 안 된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들이밀 것인가?

 

 

지난해 12월에 국내 산업 현장의 노사분쟁을 다룬 신문 기사 내용의 일부를 옮겨본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 씨앤앰 해고 노동자 2명이 올라 49일째 고공 농성을 하며 먼지와 소음, 전자파, 빛 공해 등에 시달리고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혹한의 추위에 또다시 평택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해고 노동자 복직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굴뚝에 오른 것이 아니다.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라왔다.’”

 

 

불평등은 폭력을 부른다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사는 중동 지역의 분쟁들, 다민족 사회의 인종 간 갈등들, 부족 간의 문제 혹은 종교 문제로 인한 아프리카 대륙의 내전과 갈등들, 산업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리 해고 등의 문제는 이 시대의 불안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의지만 있다면, 그 내용을 쉽게 훤히 알 수 있다. 과학 기술과 통신 매체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온 세상의 소식을 안방에서 접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말로 온 세상을 한 마을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차이가 있고, 어떤 곳은 위험해서 아예 발길을 끊고 사는 곳도 있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폭력의 불씨를 지니고 도처에 남아 있기에 그렇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큰 분쟁으로 번질 기세이다. 이 시대의 평화와 안정은 그렇게 위협받고 있다. 폭력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교황은 말한다. ‘불평등’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그리고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 노정된 배척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폭력이 뿌리째 뽑힐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못 사는 민족들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비난을 받지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온갖 형태의 공격과 분쟁은 계속 싹을 틔울 토양을 찾고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입니다”(59항).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다른 곳에서는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53항).

 


불평등을 양산하는 사회 경제 제도

 

교황은 사회 경제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폭력을 낳는 불평등을 배태하고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언제나 분열을 조장하고 죽음으로 반대 세력을 몰고 가는 사회 구조는 악한 것이기에 개선되어야 함을 분명히 한다. 지속 가능하고 평화로운 발전의 조건이 마련되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을 인간의 삶의 터전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가 아니라, 약자와 힘없는 사람에게도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고, 더 큰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아흔아홉 섬 가진 부자가 백 섬 채우기 위해 한 섬 가진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는 사회는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 운영 체제는 무분별한 소비 지상주의와 결합하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60항). 백 섬 채운 자가 이를 자랑하고 빼앗긴 자는 나락으로 떨어져 폭력에 의존하게 되는 형국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저속하고 비열한 문화는 계속 이런 사회를 조장하고 광고하여 영웅주의와 패배주의의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소비지상주의 지양해야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경제 운영 체제는 무분별한 소비를 부추기고, 그 결과 걷잡을 수 없는 소비 지상주의가 불평등과 결합되어 사회 조직을 이중으로 손상시키고 있습니다”(60항). 

 

소비주의(consumerism)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비자 주권주의’ 혹은 ‘소비 지상주의’라는 말로 번역된다. 서로 다른 의미이다. 소비자 주권주의는 소비자가 최우선이라는 의미로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1960년대 이후에 사상적 정치적 기반이 확립되었다. 소비자의 4가지 권리, 즉 안전할 권리, 알 권리, 자유 선택의 권리, 의사 반영의 권리를 바탕으로 한다. 

 

반면에 ‘소비 지상주의’는 소비를 미덕으로 부추기는 문화를 일컫는 말이다. 교황이 권고문에서 사용한 용어의 의미이다. 소비를 마치 행복의 기준인 양 권장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제 체제와 사회를 말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본가는 소비자의 욕망과 욕구를 부추기는 광고와 선전을 통해 소비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 양 선전한다.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온갖 종류의 소비를 장려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별력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의 무분별한 카드 발행과 신용불량자의 양산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소비 지상주의의 폐해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경제 활동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불평등한 조건으로 소비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의 처지는 더욱 비참하게 된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배태된 폭력의 씨앗이 소비 지상주의의 문화 속에서 쉽게 발아해 어둠과 폭력과 죽음의 문화를 양산해 내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5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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